자동차 사고기록장치(EDR)에 ‘제동압력 센서값’이 기록되도록 제도가 개선된다. 그간 브레이크 작동 여부가 ‘온·오프’(ON·OFF)로만 기록됐는데 운전자가 제동 페달을 밟은 압력 수준까지 표시되는 것이다. 급발진 입증 책임을 자동차 제조사로 전환하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할지 기대를 모은다.
국토교통부 핵심 관계자는 3일 <한겨레>에 “제동압력 센서값이 사고기록장치에 기록되도록 시행규칙 개정안을 마련해 연내 입법예고할 계획이다. 제조사와도 협의가 됐다”고 밝혔다. 규제 영향평가 등 과정을 거쳐야 해 내년께 개정이 완료되고, 실제 출시하는 차량에 적용하는 시기는 제조사와 조율해 결정하기로 했다.
‘자동차·자동차부품의 성능·기준에 관한 규칙’에 마련된 ‘사고기록장치 장착기준’에 총 15가지 항목을 기록하도록 해뒀는데, 여기에 ‘제동압력 센서값’이 추가되는 것이다. 현재 가속페달의 경우 밟은 정도(스로틀밸브 열림량 또는 가속페달 변위량)가 기록되지만, 제동 페달은 작동 여부만 표시된다.
급발진 추정 사고를 당한 운전자들은 주로 제동 페달을 밟았다고 주장하는데, 사고기록장치 상 페달이 작동한 적 없다는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많다. 이를 근거로 제조사는 운전자가 가속 페달을 제동 페달로 착각해 강하게 밟아 사고가 났다고 주장한다. 제동 페달 작동 기록이 남았더라도 페달을 ‘충분히 강하게 밟지 않았다’고 주장하면 반박할 길이 없었다.
제동 페달에 가해진 압력이 기록되면 브레이크 작동 여부에 대한 논란이 사그라질 가능성이 크다. 제동 페달에 연결돼 4개 바퀴에 제동 압력을 전달하는 마스터 실린더에 걸리는 압력 또는 각 바퀴에 창작된 휠 실린더에 걸리는 압력을 측정하는 방식 등이 검토되고 있다.
이는 그간 소비자단체 등이 지속적으로 요구해 온 개선책이지만 반영되지 않다가 지난해 강릉에서 급발진 추정 사고가 발생하면서 개정 논의에 속도가 붙었다. 지난해 12월 강릉에서 급발진 의심 사고로 12살 손자가 숨지고 60대 운전자인 할머니가 크게 다쳤다. 이 사고 영상이 공개되며 논란이 있었고, 급발진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제동압력 센서값 기록 추가 방안이 현재 공정거래위원회가 검토 중인 급발진 입증 책임 전환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공정위는 현재 해당 책임을 소비자에서 제조사로 전환하는 게 타당한지를 따져보는 중이다.
공정위가 검토하고 있는 쟁점은 차량 결함으로 급발진이 일어났다고 볼만한 합리적 기준 마련이다. 마땅한 기준 없이 제조사에 입증 책임을 넘길 경우, 급격한 가속으로 발생한 모든 사고를 제조사가 입증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제조사로 입증 책임을 전환해도 될만한 사고를 추려보려는 게 공정위가 현재 하고 있는 작업이다.
조민제 경찰대학 치안 정책연구소 연구관은 “제동압력을 센싱한 데이터를 사고기록장치에 기록하도록 제도가 개선되면 급발진 추정 사례를 더 엄밀하게 추려낼 수 있어, 입증 책임을 제조사로 전환하는 방향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교통안전공단 자료를 보면, 해마다 급발진 의심 신고는 수십 건에 이른다. 지난해는 15건으로 비교적 적은 편에 속했으나 2015~2017년 3년 동안 모두 50건을 웃돌았으며 2021년에는 39건에 이르렀다. 모두 자동차 제조사는 피해 책임을 피해 갔다.
안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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