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라 경제] 진단&전망 |전세불안과 주거정책
매맷값 상승 전제 안되면 전세제도 유지안돼
서민층 기본적 생존권 위협땐 심각한 문제로
매맷값 상승 전제 안되면 전세제도 유지안돼
서민층 기본적 생존권 위협땐 심각한 문제로
최근 주택매매가격의 안정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전세가격이 높은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국민은행의 전국주택가격 동향조사를 보면, 올해 전국 아파트 매매가격은 3.2% 상승에 그쳤지만 전세가격은 10.6% 상승했다. 서울지역 아파트의 경우 매맷값은 1.7% 올랐지만 전셋값은 13.8% 급등했다. 이로 인해 2008년 말 저점을 찍었던 전세가격/매매가격 비율은 지속적으로 높아져 지난 8월 말 현재 전국 아파트와 서울 아파트의 경우 각각 55.7%, 42.6%에 이르고 있다.
최근의 전세가격 상승은 전세시장 신규공급 둔화와 전세수요 증가에서 비롯되었다. 수년에 걸친 주택건설 부진과 미분양주택의 증가는 전세시장에서 신규주택 공급을 위축시켰는데, 매매가격의 안정화 및 추가하락에 대한 기대심리 등으로 잠재적인 주택구매 대기자들이 전세시장으로 전환함에 따라 전세수요는 오히려 늘어났다. 그런데 이러한 전세시장의 수급 변화는 단지 일시적인 요인이 아니라 우리나라 주택임대차 시장의 중장기적인 구조변화를 알리는 신호탄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좀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얼마 전까지 ‘부동산 불패론’이 널리 회자됐지만, 실제로 통계자료를 들여다보면 우리나라의 주택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해온 것은 아니다. 1980년대 후반 주택가격 급등을 배경으로 정부는 주택건설 200만가구 등 새도시 건설에 주력했고, 이러한 공급증대에 힘입어 1991년을 정점으로 주택가격은 수년간 하향 안정세를 보였다. 분당과 일산 등 1기 새도시가 잇따라 입주하였던 91~96년의 6년 동안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연평균 1.0% 내렸는데, 흥미롭게도 같은 기간에, 서울 지역의 아파트 전셋값은 연평균 6.4% 올랐다. 그 결과 91년 40%에도 미치지 못하던 매맷값 대비 전셋값의 비율은 지속적으로 상승하여 96년에는 50%대 후반으로 상승한 바 있다.
90년대의 사례와 최근의 경험에서 볼 수 있듯이, 전셋값과 매맷값은 반드시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주택 매매가격 안정은 전세주택의 공급감소와 수요증가를 유발함으로써 전세가격을 상승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전세주택의 공급자인 집주인의 처지에서 보면,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것은 전세금이라는 형태로 타인자본을 빌려 지렛대를 활용한 주택투자를 하는 것이다. 전세/매매가격 비율이 100%에 미달하는 한 자기자본이 필요하게 되며, 집주인의 투자수익은 매매가격 상승에 따른 자본이득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주택가격이 제자리에 머무르는 경우에도, 집주인은 주택보유에 따른 세금과 자기자본의 기회비용이라는 측면에서 손실을 보게 된다.
따라서 전세주택의 공급은 매맷값의 지속적인 상승에 대한 기대를 전제로 한 때만 가능하다. 매매가격이 안정되고 추가상승에 대한 기대심리가 사라질 경우, 전세주택의 공급은 빠르게 위축돼 월세로 전환되거나 매매시장에 나오게 될 것이다. 이미 전세시장에 공급되어 있는 주택의 경우 집주인의 전세금 상환 부담으로 월세전환 등이 용이하지 않을 수 있으나, 이는 단기적인 마찰적 요인일 뿐, 전세공급의 위축은 불가피하다.
또한 수요자 처지에서 보면, 최근에 나타나듯이 매매가격 안정에 따른 추가하락 기대감은 잠재적인 주택구매 대기자들이 전세수요로 전환하도록 유발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요컨대 우리나라의 고유한 주택임대차 제도로 알려진 전세제도는, 매매가격의 지속적인 상승을 전제로 해서만 유지될 수 있다. 최근의 주택거품 존재 여부와 대세하락 가능성 등에 대한 논란은 별개로 하더라도, 가계의 과도한 부채부담과 소득대비 높은 가격수준 등을 고려할 때, 향후 매맷값의 추가상승 가능성은 매우 작은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매매가격의 안정기조가 중장기적으로 정착될 경우, 전세가격의 상승 압력이 가속화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임대차시장에서 전세시장이 사라지고 월세 형태로 대체될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대세상승”에 대한 믿음을 전제로 작동해왔던 전세제도는 서민층에게도 마냥 불리한 것은 아니었다. 주택구매를 위해 목돈을 마련할 능력이 없는 경우, 전세제도는 월세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비교적 양호한 주거환경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그러나 향후 전세가격 상승으로 월세제도로 대체된다면, 서민층의 주거비용이 증가하며 주거불안이 심화할 수 있다.
1980년대 후반, 매맷값과 전셋값이 동반 급등하면서 전세금을 마련하지 못한 세입자들의 좌절 등이 사회적 문제로 비화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2000년대 상승기에는 매매가격의 급등에도 불구하고, 전세가격은 상대적으로 안정되었으며, 이로 인해 주택가격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매매가격 급등은 무주택 중산층의 상대적 박탈감을 야기한다는 점에서 사회적인 문제가 되지만, 전세가격의 급등은 서민층의 기본적인 생존권을 위협하는 요인이라는 점에서 더욱 심각한 문제일 수도 있다. 매매가격의 급등락을 억제하는 것도 주택정책의 중요한 목표이지만, 현실적으로 모든 국민이 매매시장의 참여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안정적인 주택금융 기회의 제공 등을 통해 내집마련을 도와주는 것은 물론, 공공 및 민간 임대주택의 활성화 등을 통해 임대차시장의 구조변화 가능성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임일섭/농협경제연구소 연구위원
1980년대 후반, 매맷값과 전셋값이 동반 급등하면서 전세금을 마련하지 못한 세입자들의 좌절 등이 사회적 문제로 비화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2000년대 상승기에는 매매가격의 급등에도 불구하고, 전세가격은 상대적으로 안정되었으며, 이로 인해 주택가격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매매가격 급등은 무주택 중산층의 상대적 박탈감을 야기한다는 점에서 사회적인 문제가 되지만, 전세가격의 급등은 서민층의 기본적인 생존권을 위협하는 요인이라는 점에서 더욱 심각한 문제일 수도 있다. 매매가격의 급등락을 억제하는 것도 주택정책의 중요한 목표이지만, 현실적으로 모든 국민이 매매시장의 참여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안정적인 주택금융 기회의 제공 등을 통해 내집마련을 도와주는 것은 물론, 공공 및 민간 임대주택의 활성화 등을 통해 임대차시장의 구조변화 가능성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임일섭/농협경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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