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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못미더운 달러’ 대체할 ‘미더운 금’이라고?

등록 2010-11-07 20:46

[진단과 전망] 달러위기와 금값폭등
금값폭등, 달러 기축통화체제에 대한 불신 반영
금도 상품일 뿐…‘가격 급등락’의 역사 돌아볼때
금값이 큰 폭으로 오르고 있다. 금융위기가 한창이었던 2008년 10월 온스당 720달러대였던 국제 금값은 최근 1380달러를 돌파하며 2년여 동안 90%에 육박하는 상승률을 보여주었다. 특히 지난 3일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의 2차 양적 완화 발표 직후 금값은 달러 약세 기대감 등에 힘입어 하루 만에 3% 이상 급등하기도 하였다.

정보기술(IT) 거품의 붕괴 뒤, 연준이 연방금리를 1.0%까지 내린 2003년부터 다수의 상품과 자산가격은 저금리와 풍부한 유동성에 힘입어 수년에 걸쳐 상승했다. 그런데 대부분이 금융위기를 전후한 2007~2008년에 고점을 찍은 이후 큰 폭의 조정을 거친 것과는 달리, 금값은 별다른 조정 없이 계속 상승해 왔으며, 경기둔화 조짐이 확산하는 최근 들어 오히려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에 힘입어 금값이 조만간 온스당 2000달러까지 상승할 것이며, 장기적으로는 1만달러를 돌파할 수 있다는 주장마저 제기되고 있다.

금값 상승의 원인으로는 금광의 고갈 등에 따른 생산량의 둔화로 공급이 한계에 달한 점이 지적되기도 하고(‘피크 골드’),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들의 고성장으로 금을 포함한 귀금속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 거론되기도 한다. 또한 금 상장지수펀드(ETF)와 같은 다양한 금융상품의 개발도 금에 대한 투자수요의 활성화에 기여했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금값이 급등한 가장 큰 이유는, ‘최후의 안전자산으로서의 금’이라는 관념의 확산에서 찾아야 할 듯하다.

금 강세론자들은 연준에 의한 대량의 유동성 공급이 달러 약세와 인플레이션의 확대로 이어질 수밖에 없으며, 금은 이에 대비할 수 있는 유력한 수단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과거의 경험을 보더라도, 인플레이션에 대비할 수 있는 금의 능력은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 금값은 1980년 경기침체와 오일쇼크, 지정학적 불안 등으로 830달러까지 급등했다가 다시 폭락했으며, 이후 20여년에 걸쳐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면서 1999년 250달러까지 하락했다. 최근 금값이 급등했다고는 하지만, 물가상승을 감안한 실질가격으로 보면 아직도 1980년의 역사적 고점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이처럼 정치경제적 환경 변화에 따라 급등락을 거듭하고, 이후 장기간에 걸쳐 물가 이하의 상승에 머무르는 금을 안전자산이라고 할 수 있을까?

또한 금 강세론자들에 따르면, 대규모 화폐증발, 누적된 재정적자 등으로 인해 달러 약세가 불가피해지면서 기축통화로서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으며, 이것이 ‘진정한 화폐’인 금에 대한 수요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달러 약세가 문제라면,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이는 다른 통화가 투자대상이 될 수 있는데, 왜 하필이면 금인가? 이는 금 강세론이 단순한 상품이 아닌 화폐로서의 금의 부활, 즉 금본위제로의 복귀 가능성을 전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2008년의 금융위기 이후, 연준은 양적 완화로 대표되는 비전통적인 통화정책을 수행하는 등 미증유의 실험을 하고 있다. 이로 인해 달러의 위상이 흔들리면서 유로와 엔, 위안 등을 아우르는 다극화된 기축통화체제의 가능성이 모색되는 등, 수십년 동안 지속해온 달러 중심의 국제통화제도에 변화 조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를 이유로 금본위제가 부활할 가능성은 매우 낮으며, 동시에 바람직하지도 않은 것으로 보인다.

신용화폐제도 아래에서의 무분별한 신용 팽창이 금융위기의 원인이 되기도 했지만, 금본위제는 금융정책을 통한 거시경제적 불균형의 조정을 힘들게 한다는 점에서 훨씬 더 결함이 많은 통화제도다. 1930년대 금본위제에서 비롯한 통화정책의 경직성은 신용경색에 대응하기 위한 유동성 공급을 어렵게 했을 뿐만 아니라, 보호무역주의를 촉발해 대공황의 장기화를 낳은 요인들 가운데 하나였다. 또한 현재 유로 지역 내부의 불균형을 상징하는 남부 유럽의 재정위기는 단일통화로 인한 독자적인 통화 및 환율정책의 불가능성에 기인한다는 점에서 금본위제와 유사한 문제를 공유하고 있다.

달러 중심의 신용화폐체제에 대한 불신으로 금값이 급등하는 현 상황은, 1928년 아일랜드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가 “화폐의 안정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정부관료의 정직성이나 지성보다 금을 믿는 것이 낫다”고 말한 것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버나드 쇼의 주장은 금본위제 아래에서만 타당하다.

2000년대 들어 저금리와 풍부한 유동성에 힘입어 주식과 부동산, 원유, 원자재 등이 거품의 형성과 붕괴를 겪었는데, 위기 이후 정책당국의 대응은 역설적이게도 또 한번의 대규모 유동성 공급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존하는 화폐체제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하면서, 과거에 화폐였던, 그러나 지금은 상품일 뿐인 금이 다시 화려하게 등장하고 있으나, 이는 우리가 수차례 경험했던 거품들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차이가 있다면, 투기적 충동과 더불어 복고주의적 미망이 거품의 또다른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뿐이다.

임일섭/농협경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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