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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미 양적완화, 서민·저소득층 지원해야 효과

등록 2010-11-22 08:30

미국 경기부양 정책의 용도별 구분
미국 경기부양 정책의 용도별 구분
[진단 & 전망] 지지부진한 미 경기 부양
대출금리 인하·상환기일 연장 등 ‘미시정책’ 써야
‘금융위기 주범’ 은행만 배불릴 땐 악순환 되풀이

11월 초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는 앞으로 6000억달러 규모의 국채를 시장에서 사들이겠다고 발표했다. 이 방안이 실제로 경기를 살리는 데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지적과 시중 유동성을 확대시켜 경기 회복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견해가 동시에 존재하는 듯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수조달러의 자금을 투입했음에도 미국 경제가 제대로 회복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분석이 있을 수 있지만, 금융위기 발생의 불씨를 제공한 은행들의 이기적인 태도와 이를 조장한 미국 정부의 잘못된 판단이 미국 경제의 회복을 지연시키는 중요한 원인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은행들이 책임을 지기는커녕 국민들의 세금을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을 덮는 데만 쓰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이번 금융위기는 은행들이 돈 없는 서민들에게 집을 사라고 꼬드겨 과도한 대출을 받게 함으로써 시작된 것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라는 것은 소득이 낮거나 신용도가 낮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주택 구입 자금을 빌려준 대출이다. 은행들은 이런 사람들에게 집을 살 기회를 줬다고 강변하고 있으나, 자신들의 소득으로는 이자도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대출을 해줌으로써 수수료와 이자 수입 챙기기에만 급급했다. 이처럼 가난한 계층을 먹잇감으로 삼아 이득을 취한 미국 은행들의 행태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런데도 주택 가격이 폭락해 금융위기가 터지자 다급해진 은행들은 자신들을 지원하지 않으면 미국 경제가 결딴난다는 논리를 펴, 정부로부터 수조달러의 지원을 받아냈다. 그러나 정작 자신들은 주택 대출을 갚지 못하는 사람들을 지원하지 않고 오히려 집을 압류함으로써 자기만 살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결국, 미국 은행들이 한 것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아주 잠깐 동안 집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준 다음 모든 것을 뺏어버린 것이었다. 집을 뺏긴 사람들은 최극빈층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이는 미국 경제 회복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미국 정부의 잘못된 판단도 사태 악화에 한몫을 했다. 미국 정부는 금융기관을 지원하거나 투자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3조달러 가까운 돈을 투입했다. 반면 집을 뺏길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보호하는 데에는 750억달러라는 쥐꼬리만한 돈을 책정했을 뿐이다. 미국 정부가 금융기관을 우선적으로 보호한 데에는 근본적으로는 은행을 살려놓으면 대출이 정상화되는 등 모든 것이 좋아질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 지원으로 기사회생한 은행들은 대출의 문을 완전히 걸어 잠갔다. 그러고서는 경영자에게 대규모 보너스를 지급하는 후안무치한 행동을 했다. 우수한 인재를 잡아두려면 보너스가 필요하다는 논리였다.

아마 주택 대출을 갚지 못해 집을 뺏기게 된 사람들을 지원해 주었다면 훨씬 좋은 결과가 있었을 것이다. 대출 금리를 낮춰주고 상환 기일을 연장해주는 것만으로도 이 사람들은 집을 압류당하지도 않을 것이고, 소비 위축도 크지 않았을 것이다. 저소득층은 저축할 여유가 없어 버는 돈의 대부분을 소비에 활용하지만 고소득층은 소비를 하고도 상당한 여유가 있어 돈이 더 생겨도 소비가 늘지 않기 마련이다. 미국 정부가 감세를 앞세운 경기 부양 조처를 했음에도 감세로 여윳돈이 생긴 사람들은 저소득층이 아니라 고소득층이기 때문에 소비 회복이 부진한 것이다. 오히려 미국 정부는 저소득층에게는 무리한 대출을 받은 것은 개인의 선택이고 이에 대해 책임을 지라는 식의 자본주의 원칙을 강조하면서 은행한테는 과잉 부실 대출의 책임을 묻지 않고 대규모 자금을 지원하는 비자본주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은행들이 보이고 있는 태도는 미국식 금융자본주의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를 갖게 한다. 가난한 계층에게 집을 사라고 꼬드겨 이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조건의 대출을 받게 해 수수료와 이자를 챙김으로써 미국의 은행들은 결과적으로 부동산 가격 거품을 가져온 최초 원인을 제공했다. 이들은 미국인뿐 아니라 전세계 사람들에게 큰 고통을 안겨줬다. 세계 도처에는 미국발 금융위기가 가져온 경기침체 때문에 영문도 모르고 일자리를 잃으면서 큰 고통을 겪은 사람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러나 이들 미국 은행들은 그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미국식 금융자본주의의 근본적인 수술이 없다면 이런 상황은 주기적으로 반복될 것이다. 그들은 수익을 확대하고 천문학적인 보너스를 받기 위해 또다른 누군가를 먹잇감으로 삼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금융위기를 맞았을 때 정부가 누구를 어떻게 지원해야 하는지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문제다. 지금 미국 정부는 은행에 자본을 확충해주고 채권을 매입해 유동성을 푸는 거시정책만을 사용하고 있다. 이는 민간의 경제활동에 정부가 개입하지 않는다는 미국식 경제철학과도 연관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풀린 유동성이 시중에서 돌지 않고 한곳에 머물러 있다면 경제 회생에 효과가 없다. 게다가 경제가 회생될 때까지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버티기 어렵다면 문제는 점점 더 심각하게 악화될 수 있다. 그보다는 좀더 미시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개인들을 지원하는 방법이 훨씬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


이번 미국 금융위기에서 우리가 배울 교훈이 많겠지만, 특히 미국식 금융자본주의의 폐해와 빈곤층으로 전락한 사람들에 대한 지원 없는 거시적 처방의 한계를 배워야 할 것이다.

전민규/한국투자증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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