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진단과 전망] 글로벌 불균형과 디커플링
최근 미 디플레-동아시아 인플레, ‘탈동조화’ 해석 나와
미국 적자→양적완화→신흥국 물가상승 ‘연계성’ 살펴야
최근 미 디플레-동아시아 인플레, ‘탈동조화’ 해석 나와
미국 적자→양적완화→신흥국 물가상승 ‘연계성’ 살펴야
2008년 금융위기가 본격화되기 이전, 세계경제는 미국 등의 선진국들과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들의 고성장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상당기간 호황을 누렸다. 이러한 호황의 구조는 흔히 ‘글로벌 불균형’이라는 이름하에서 논의되어 왔는데, 이는 미국의 과잉소비와 그에 따른 경상수지 적자가 대미수출 흑자국인 중국 등의 미 국채 투자에 따른 ‘달러 재순환’(리사이클링)에 의해 유지되어 온 양자간의 상호작용 구조를 지칭한다. 국제수지 관점에서 보면 미국(중국)의 경상수지 적자(흑자)가 자본수지 흑자(적자)로 상쇄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처럼 글로벌 불균형은 실물과 금융 양 측면에서의 상호작용을 전제로 한다.
최근 들어 글로벌 불균형은 금융위기의 배경 또는 원인이라는 비판적 맥락에서 주로 논의되고 있지만, 위기 이전 상당기간 진행되었던 세계 경제의 동시호황, 경기 흐름의 동조화 현상은 바로 그 글로벌 불균형 덕분에 나타난 현상이었다. 미국의 소비활황이 중국의 대미 수출 호조로 이어지고, 중국의 무역흑자가 다시 미국으로 흘러들어가 금융시스템을 매개로 하여 자산거품과 과잉소비를 더한층 자극했다는 점에서 양 진영의 경기 흐름은 동조화될 수밖에 없었고, 그런 의미에서 선진국과 신흥국은 ‘한배를 탄’ 공동운명체였다.
물론 언제나 그러했던 것은 아니다. 2007년 미국 주택가격이 하락세로 돌아서면서 미국 경제가 하강국면으로 진입한 이후, 우리 경제와 더불어 중국 등의 신흥국 경제가 상대적인 고성장을 지속하면서 이른바 세계 경제의 ‘탈동조화’ 가능성이 제기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2008년 하반기 리먼사태를 계기로 본격화된 일련의 사태들은 이른바 탈동조화 현상이 경기 흐름의 시차와 일부 나라들의 내수경기 과열로 인한 착시에 불과한 것임을 보여주었다. 월가에서 발생한 유동성 위기는 순식간에 전세계 금융시장의 신용경색으로 확산하면서 일부 신흥국들에서는 외환위기와 유사한 양상으로 전개되었고, 미국 경기의 급락은 주요국들의 수출급감으로 이어지며 전세계적인 동시불황으로 귀결되었다.
그런데 위기 이후의 회복 과정은 또다시 탈동조화 가능성을 시사하는 몇가지 징후들을 보여주고 있다. 선진국 경제들은 상대적으로 부진이 지속되는 반면, 신흥국 경제들은 빠르게 반등하며 위기의 후유증에서 벗어나고 있다. 위기의 진앙이었던 미국 경제의 회복세는 여전히 지지부진하여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11월 초 또 한번의 유동성 공급을 의미하는 제2차 양적완화를 단행하기에 이르렀고, 또다른 선진권인 유로지역은 재정위기와 단일통화체제의 근본적 취약점 등으로 인해 내부에서 불균형과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반면 신흥대국 중국은 위기 이후에도 9% 내외의 고성장을 지속하며 세계경제 회복의 견인차 구실을 하였고, 우리 경제도 매우 인상적인 회복세를 보여주면서 2011년에는 4%대의 추세성장 수준으로 복귀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이처럼 선진국이 상대적으로 부진한 가운데, 신흥국들이 비교적 빠르게 회복되고 있기는 하지만, 이를 두고 선진국 경제에 대한 신흥국의 의존도가 추세적으로 약화되고 있다거나, 나아가 선진국과 신흥국의 탈동조화 경향이 본격화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는 것은 아직 성급해 보인다.
위기 직후 재정여건이 비교적 양호했던 신흥국들이 내수시장을 중심으로 경기부양에 주력하기도 했지만, 수출, 특히 대미 수출에 대한 의존도는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경제를 미국과 연결해주는 통로인 중국의 대미 수출 비중은 2008~2009년의 일시적 하락에도 불구, 올해 3분기 18.9%를 기록해 지난 10여년간의 평균치인 20.0%에 근접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최근 중국이 내수과열 우려를 이유로 수차례의 지급준비율 인상 등 속도조절에 들어가는 것에서도 드러나듯이, 신흥국 정부의 위기대응 정책기조가 점차 정상화되면서 내수부문의 회복탄력은 약화될 수 있다. 동시에 미국 경제가 미약하게나마 회복세를 보이면서 신흥국들의 대미 수출 비중은 다시 높아지고 있다. 요컨대 실물적 측면에서 글로벌 불균형은 아직 진행중이며, 선진국과 신흥국 경기의 연계성은 여전하다.
또한 금융적 측면에서는 위기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자금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대규모 유동성 공급, 유로의 위기 등으로 인해 신흥국으로의 자본유입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른 신흥국들의 저금리 기조와 자산가격 상승은 당장 내수경기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그 속에는 물가상승 압력의 증대, 자산거품 가능성 등의 위험요인들이 도사리고 있다.
위기 이후 대규모의 유동성 공급을 주도한 선진국의 위기대응 정책으로 인해 세계경제의 연계성은 과거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미국의 디플레이션 우려와 동아시아의 인플레이션 우려가 공존하고 있는 현 상황은, 세계 경제의 탈동조화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 아니라, 선진국의 위기대응책이 만들어 낸, 세계 경제의 연계성의 또다른 모습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임일섭/농협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위기 이후 대규모의 유동성 공급을 주도한 선진국의 위기대응 정책으로 인해 세계경제의 연계성은 과거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미국의 디플레이션 우려와 동아시아의 인플레이션 우려가 공존하고 있는 현 상황은, 세계 경제의 탈동조화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 아니라, 선진국의 위기대응책이 만들어 낸, 세계 경제의 연계성의 또다른 모습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임일섭/농협경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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