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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세계경제 ‘불균형’ 방치땐 금융위기 온다

등록 2011-03-06 21:12

한국·타이·인도네시아의 경상수지 추이
한국·타이·인도네시아의 경상수지 추이
개도국들 외환 공포탓 ‘경상흑자’ 유지하려 지갑 안열어
미국은 빚내 소비하느라 ‘경상적자’…악순환깰 새틀 짜야
[진단 & 전망] 경상수지 양극화

1997년 말 우리나라를 비롯해 아시아를 휩쓸고 지나간 외환위기는 전세계 개발도상국들에 ‘외환보유액이 부족하면 큰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중요한 교훈을 던져줬다. 그때부터 우리나라를 비롯한 주요 아시아 국가들이 경상수지 흑자를 지속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달러나 엔, 유로 같은 기축통화를 사용하는 국가가 아닌 한 장기적으로 외환보유액을 늘리는 방법은 경상수지를 흑자 상태로 유지하는 방법밖에 없기 때문이다. 2008년의 미국발 금융위기를 통해 전세계는 다시 한번 외환보유액의 위력을 실감했다. 10년 전과 달리 우리나라는 결정적인 위기를 피해갔지만, 여기에서 얻은 교훈은 10년 전과 비슷하다. 즉, ‘외환보유액이 충분하니 무사했다’는 것이다.

외환보유액을 충분히 쌓아야 한다는 개도국들의 생각은 경상수지 흑자 유지를 위해 노력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이는 세계 경제 전체로 보면 수많은 문제점들을 만든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다. 우선 수입을 줄여야 하기 때문에 개도국에서는 소비와 투자 부진이 나타났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세계 경제의 불균형이 심화됐다는 점이다. 개도국들의 흑자는 미국의 적자를 동반했다. 세계 전체로는 모든 국가의 경상수지 합은 영이기 때문에 누군가의 흑자는 다른 누군가의 적자를 의미한다. 물론 미국은 미국 나름대로 적자를 즐겼다. 달러를 원하는 아시아 개도국들에 달러를 쥐여 주면 아시아에서 만든 자동차나 냉장고 같은 제품을 힘들이지 않고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은 굳이 열심히 일해서 달러를 벌어들일 필요가 없고 그냥 빌려서 주면 됐다. 아시아 국가들은 벌어들인 달러를 고스란히 외환보유액의 형태로 저축했다. 이는 장기적으로 미국 경제에도 악영향을 줬다. 미국에서 집집마다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나라도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외국 물건을 싼값으로 쓰다 보니 미국의 제조업은 경쟁력을 잃어갔다. 2008년의 미국 금융위기도 따지고 보면 미국의 적자가 장기간에 걸쳐 누적되어 생긴 일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문제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미국은 소비를 줄여야 하고, 아시아 개도국들은 소비를 늘려야 한다. 미국인들은 자기네 나라의 산업을 살리고, 아시아인들은 소비 생활을 좀더 즐기는 긍정적인 효과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계 경제 불균형의 배경에는 아시아 국가들의 외환위기 공포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문제 해결이 간단하지 않을 것이다. 아시아 국가들이 소비를 충분히 늘리면 현재의 경상수지 흑자가 균형 내지는 적자로 돌아설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되면 외환보유액을 쌓을 수 없게 된다. 장기적으로 경상수지 적자가 지속되고, 그 적자를 메우기 위해 계속 외국에서 외화를 빌리면 어떤 끔찍한 일을 겪게 되는지 1997년의 외환위기를 통해 우리 모두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따라서 개도국의 입장에서는 기를 쓰고 흑자를 유지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물론 이를 해결하는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국제통화기금(IMF)이 어떤 나라가 외환위기에 처하든 즉시 조건 없이 도와주기로 국가간에 약속을 하면 굳이 개별 국가가 위기에 대비해 외환보유액을 쌓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외환보유액을 쌓을 필요가 없어지면 외환보유액으로 가야 할 돈들이 소비에 사용될 수 있다. 개도국들은 소비가 늘어나고 선진국들은 생산이 늘어나는 효과가 생긴다. 결국 개도국은 지나치게 일만 열심히 하면서 소비는 못 하고 선진국들은 일은 안 하면서 너무 많이 쓰는 불공평도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신뢰가 부족하다. 1997년 말에 국제통화기금이 돈을 빌려주면서 요구했던 것들은 우리나라를 너무나 힘들게 했다. 좀 냉정하게 얘기하자면 국제통화기금의 요구는 자기들이 빌려줬던 자금을 무사히 회수하기 위한 조처들이었다. 예를 들어 금리를 크게 높이는 바람에 소비와 투자가 완전히 무너지면서 외국으로부터 수입이 줄어들었고, 이는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로 이어졌다. 이 흑자는 국제통화기금으로부터 빌린 돈을 갚는 데 쓰여진 것은 물론이다.


최근 미국 경제가 회복되고 있다는 신호들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소비나 생산을 보여주는 경제 지표들이 개선되고 있고, 고용도 회복 조짐이 보인다. 또한 경기 회복을 반영해 주가도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 경제는 불균형 문제에 대해 아무런 개선을 하지 못한 채 미국의 경기 회복을 맞고 있다. 미국은 또다시 소비를 늘리고, 이는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를 가져오고 동시에 아시아의 경상수지 흑자를 가져올 것이다. 10년 간격으로 겪은 두 번의 위기를 통해 외환보유액의 중요성을 절감한 아시아는 세계 경제의 불균형 구조에서 외환보유액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미국은 미래의 어느 순간 또다시 2008년의 위기를 잊어버리고서는 과소비를 할지도 모른다. 세계 경제의 금융위기가 주기적으로 반복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전민규/한국투자증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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