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의 글로벌 공급사슬
지진 여파 수급 달려 자동차·전자업체 등 ‘비상’
공급망 대체 쉽지않아…사태 지속땐 연쇄충격
공급망 대체 쉽지않아…사태 지속땐 연쇄충격
[진단 & 전망] 대지진과 세계경제
한때 원전 폭발 위험까지 거론되던 일본 지진사태의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의 보험사들이나 정부가 재해 복구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외국에 투자한 자금을 대규모로 환수함에 따라 국제자금흐름을 혼란으로 몰아갈지 모른다는 우려는 일단 기우로 그치고 있다. 불안감을 이용한 투기가 기승을 부리면서 엔-달러 환율이 전후 최저치인 76엔까지 떨어지기도 했지만, 주요 7개국(G7)의 공조개입 이후 안정세를 되찾고 있는 것이다. 아직 방사능 누출을 비롯해 재해 복구 과정의 불확실성이 남아 있는 것은 사실이나, 점차 글로벌 금융시장은 일본 지진사태의 악몽을 떨쳐내는 분위기다.
그러나 일본 지진사태의 파장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 어쩌면 세계 경제를 금융위기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새로운 충격으로 몰고 갈 쟁점이나 도전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 여기서 초점은 ‘글로벌 공급사슬(supply chain)’에 미칠 영향이다.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일본의 위상이 중국에 밀려 점차 약화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일본은 여전히 글로벌 공급사슬, 특히 자동차나 전자, 그리고 핵심 부품이나 소재 등의 공급 부문에서 핵심 역할을 맡고 있다. 지금 지진사태로 인한 전력공급 중단, 방사능 누출 영향 등으로 인해 일본내 주요 공장들의 가동이 중단되거나 축소된 처지다. 그 영향은 글로벌 공급사슬을 통해, ‘나비효과’ 세계 경제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
아시아개발은행연구소(ADBI)의 한 보고서는 아이폰을 예로 들어 글로벌 공급사슬의 복잡성을 보여 준다. 이에 따르면, 미국 애플이 설계하여 판매하는 아이폰의 경우 개당 제조원가(2009년 중국의 수출가격 기준, 총 178.96달러)에서 일본 업체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무려 34%(60.6달러)에 이른다. 아이폰의 핵심 부품인 플래시메모리와 디스플레이 모듈, 터치스크린 등을 도시바와 같은 일본 업체들이 공급하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도 삼성이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나 SD램-모바일 DDR 등을 공급하면서 12.8%(22.96달러)를 차지한다. 나머지는 독일 16.8%, 미국 6% 등의 순인데, 정작 미국으로 아이폰을 수출하는 중국에 귀속되는 몫은 3.6%에 그친다. 다른 곳에서 부품을 수입해 조립하는 수준에 그치는 탓이다.
따라서 이번에 일본 업체들이 가동을 중단하게 되면 다른 업체들도 직격탄을 입게 된다. 실제로 몇 년 전 아시아 지역에 소재한 한 섬유 공장이 생산을 중단하면서 유럽 대형 자동차 업체들의 공장 여러 곳이 가동을 멈춘 바 있다. 이들 자동차 업체들이 쓰는 좌석벨트에 들어가는 섬유가 공급되지 못한 탓이다. 지금도 미국의 최대 자동차 업체인 지엠(GM)은 지진사태 영향으로 일본에서 조달되는 부품이 달리면서 쉐보레 콜로라도, GMC 캐니언 등 콤팩트 픽업을 생산하는 루이지애나주 슈리브포트 공장의 가동을 중단한 것은 물론, 이 공장에 차 엔진을 공급하는 뉴욕주 버펄로 토나완다 공장의 가동도 연쇄적으로 중지했다. 한국GM 역시 최근 인천 부평 등 일부 공장의 조업을 단축하는 등 비상경영에 들어갔다. 애플 역시 아이패드2 등 주요 제품의 일본산 부품 조달 부진으로 인해 타격을 입고 있다고 한다.
물론 세계 전역에 산재된 분업 체제를 고려할 때, 다른 지역으로 생산 대체가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강도 높은 경쟁 압력 탓에, 또 각종 비용 절감 노력에 따른 영향으로 이미 사슬고리가 꽉 짜인 상황에서 생산 대체가 현실적으로 쉬운 일은 아니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의 <뉴욕 타임스>는 이번 일본의 지진사태를 “글로벌 공급사슬의 스트레스 테스트”로 평가한다. 국외 아웃소싱을 통해 세계 전역에 걸쳐 있는 다단계 공급사슬, 즉 수직전문화 체제의 확산이 그동안 세계 경제의 교역 증대와 효율성 향상이라는 큰 수혜를 가져온 것은 맞지만, 역으로 이러한 연결고리가 고장 날 경우 끔찍할 정도의 연쇄 충격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글로벌 금융위기 와중에 세계 경제가 극심한 충격을 받고 세계 교역이 붕괴 지경에 이런 것도 이런 영향이 크다는 게 중론이다.
세계적 금융위기는 현대 금융의 가공할 파괴력, 특히 글로벌 금융의 복잡한 네트워크로 인한 신속하고 격렬한 전염효과를 잘 보여 준다. 반면 일본의 지진사태는 실물 측면에서 글로벌 공급사슬의 복잡한 네트워크와 이로 인한 연쇄 충격의 여지를 환기시켜 준다. 이와 관련해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는 “금융만이 제대로 이해하기 힘든 21세기의 유일한 영역은 아니다”라고 지적한다. 워낙에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사슬고리를 제대로 이해하고 대처하기 힘들다는 얘기다. 나아가 금융위기 때와 마찬가지로, 개별 기업들의 합리적인 전략, 즉 국제적으로 ‘생산의 파편화(fragmentation)’를 통한 수익 극대화 전략이 거시적 차원에서는 심각한 취약성을 낳을 수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교훈이다. 혹시 일본의 지진사태가 서브프라임 위기의 ‘실물 버전’이 되는 것은 아닐지 곰곰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장보형/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
장보형/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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