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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부동산발 금융위기 현재진행형이다

등록 2011-05-15 20:26

PF 대출 및 PF 유동화 현황
PF 대출 및 PF 유동화 현황
자산유동화 기업어음 문제
PF 대출 감소 불구 ABCP 발행은 증가세
단기차입 의존 구조 ‘뱅크런’ 위험성 내포
2008년을 전후로 세계경제를 강타한 미국발 금융위기의 원인으로는 글로벌 불균형부터 시작해 여러가지를 꼽을 수 있다. 하지만 위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계기로 작용한 것은 이른바 그림자은행(shadow bank)에서 발생한 뱅크런이었다.

그림자은행이란 예대업무를 주로 담당하는 상업은행과는 달리, 단기차입을 통해 자금을 조달해 고위험-고수익의 파생상품(MBS 등)에 투자한 금융기관들의 행태를 일컫는 말이다. 거시적으로는 잉여자금의 조달과 운용을 중개한다는 점에서 상업은행과 비슷한 역할을 했지만, 상업은행에 적용되는 예금보호제도와 지불준비금 등의 금융규제에서 벗어나 있었다는 점에서 그림자은행이라고 부른다. 일반은행의 뱅크런은 대출 부실 우려에 따른 예금자들의 자금인출 시도를 뜻한다. 이에 반해 그림자은행에서의 뱅크런은 투자 손실 우려로 단기부채의 차환이 곤란해질 경우에 발생한다. 2008년 베어스턴스, 리먼브러더스와 같은 투자은행을 파산시킨 직접적인 뇌관은 단기금융시장에서의 차입 곤란에 따른 유동성 위기였다. 프린스턴대학의 폴 크루그먼 교수는 이를 “21세기판 뱅크런”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PF ABCP 만기도래액
PF ABCP 만기도래액

최근 우리 금융시장에서 부동산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부실을 둘러싸고 진행중인 사건들은 뱅크런의 두가지 유형 모두와 관련된다.

부동산 피에프에서 시행사가 시공사(건설사)의 지급보증을 얻어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에는 크게 두가지가 있다. 첫째는 은행대출이고 둘째는 유동화전문회사를 통해 자산유동화증권(ABS) 또는 자산유동화 기업어음(ABCP)을 발행하는 것이다. 전자의 피에프 대출과 관련해서는, 몇몇 저축은행들의 영업정지로 인해 전반적인 심리가 불안정한 가운데 은행직원의 불법대출 관련 혐의가 해당 저축은행의 전반적인 부실 우려로 확대 해석되면서 예금인출이 쇄도하는 등 사실상의 뱅크런으로 발전한 바 있다.

후자의 경우 2006년 자산유동화증권 발행과 관련된 규제가 강화된 이후 자산유동화 기업어음 발행이 주를 이뤄왔는데, 자산유동화 기업어음은 단기자금인 기업어음(CP)의 일종으로서 만기 3개월~1년 내외가 대부분이다. 일반적으로 몇해가 걸리는 부동산 관련 프로젝트의 성격을 고려할 때, 자산유동화 기업어음을 통한 자금조달에는 만기불일치 위험이 내재돼 있다. 차환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을 경우 유동성 위기에 빠질 수 있는 셈이다. 피에프 자산유동화 기업어음 투자자들은 금융기관뿐만 아니라 단위 농협과 신협, 금고와 개인투자자 등인데, 2009년 이후 개인 투자자의 비중이 크게 높아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최근 대형 건설사들의 부도가 이어지면서 개인 투자자를 중심으로 투자심리가 크게 위축되고 있다는 점이다. 만약 피에프 부실화 우려 등을 이유로 자산유동화 기업어음 차환에 차질이 발생한다면, 지급보증 의무를 떠안고 있는 건설사의 유동성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예금 대신 단기차입에 의존함으로써 불가피해진 만기불일치 위험, 투자자들의 자금회수로 인한 유동성 위기(뱅크런) 가능성 등 자산유동화 기업어음을 이용한 피에프 사업방식은 그림자은행의 특성과 매우 유사하다. 만약 차환에 차질이 발생해 건설사의 유동성 위기가 현실로 나타난다면, 이를 그림자은행 뱅크런의 한국판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유사성을 근거로 섣불리 한국판 서브프라임 위기의 발생 가능성을 논하는 건 지나치다. 우리 금융시장의 규모와 피에프 대출 및 자산유동화 기업어음의 잔액을 고려할 때, 시스템 위기로 발전할 가능성은 제한적이다. 유동화 구조도 미국에 비하면 훨씬 단순하다. 그러나 안심하기는 이르다. 자산유동화 기업어음 시장의 경색으로 인한 건설사의 유동성 위기는 해당 건설사가 채무보증을 했거나 관여하고 있는 다른 사업으로 파급될 수 있고, 최악의 경우 건설사들의 연쇄 부도와 건설경기 침체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또다른 부정적인 징후들도 있다. 피에프 대출이 점차 감소하는 반면, 자산유동화 기업어음 발행은 반대로 증가하고 있다. 비교적 안정적인 시중은행 피에프 대출이 줄어드는 가운데, 차환 위험에 노출돼 있는 자산유동화 기업어음이 증가하는 현상은 전체 피에프의 질이 나빠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한편 피에프 정상화 뱅크의 설립방안 등을 비롯한 정책당국의 대응은 피에프 대출에 초점을 맞추고 있을 뿐 자산유동화 기업어음 시장의 위험은 상대적으로 간과하고 있다.

뱅크런의 역사적 경험은 실제로는 부실이 심각하지 않더라도 단지 부실 우려가 확산되는 것만으로도 금융시스템이 큰 충격을 받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위기의 예측 불가능성을 강조하는 블랙스완이라는 표현이 유행하고 있다. 하지만 위기 발생의 구체적인 경로와 계기를 예측하는 것이 어려울 뿐, 아무런 사전 경고도 없이 갑자기 발생한 금융위기는 없다. 최근 우리 경제에서 나타나고 있는 피에프 문제를 둘러싼 일련의 사건들이 지나간 부동산 거품 시기의 여진일 수도 있겠으나, 동시에 앞으로 다가올 위기에 대한 사전 경고일 수도 있다.

임일섭/농협경제연구소 거시경제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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