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금융기관·투기세력 탓하지만 내부에도 위기 원인
불균형 성장 양극화 등…금융불안 ‘거짓신호’일 수도
불균형 성장 양극화 등…금융불안 ‘거짓신호’일 수도
유럽 재정위기니, 미국의 더블딥 위험이니 하면서 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을 치고 있다. 그 와중에 우리 주가도 20% 이상 급락하고 원-달러 환율도 100원 이상 뛰어올랐다. 다행히 최근 그리스에 대한 구제금융이 재개될 조짐을 보이면서 시장이 다소 안도감을 보이고는 있지만, 아직도 사태 향방에 대한 불확실성이 워낙 큰 상황이라 뭐라 속단하기는 힘들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쟁점인 이슈 한가지는 왜 우리 경제나 금융시장이 대외불안에 그토록 취약한지 하는 문제다. 오히려 위기의 진원지 이상으로 충격이 한층 증폭되는 양상이다. 흔히 우리 경제의 대외 의존성 심화나 국내 금융시장의 높은 개방도와 뛰어난 환금성 등이 핵심적인 전염 고리로 지목된다. 나아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의 외화유동성 위기에서 보듯이, 국내에 유입된 막대한 규모의 단기 외자차입은 대외불안의 증폭 기제로 작용하기도 한다.
사실 대외불안의 전염 효과를 차단하기 위해 그동안 이래저래 다양한 방안들이 모색되어 왔다. 이미 정부는 선물환 규제와 외국인 채권투자에 대한 과세 부활, 또 은행세로 불리는 외환건전성 부담금의 도입 등 자본유출입 변동성 규제의 ‘3각 축’을 도입한 데 이어 최근에는 국내 발행된 외화채권, 즉 김치본드에 대한 발행용도 제한 및 과세도 끌어들였다. 외화유동성 위기 때 위기 전염 및 증폭의 핵심 고리였던 외자차입을 규제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다각적인 규제에도 불구하고 외풍에 따른 우리나라의 혼란은 여전하다. 규제의 허점 혹은 사각지대를 노린 투기가 기승을 부리는 탓이다. 이런 가운데 국제적으로는 이른바 ‘금융거래세’가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다. 일단은 유럽 위기 대응 과정에서 세수 확보용으로 관심을 끌지만, 과거 토빈세처럼 국제 투기자금의 흐름을 억제하고 금융의 과도한 수익 추구를 규제하여 거시건전성을 향상시킬 계기로서 호평을 듣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식의 접근이 혹시나 누군가 희생양을 끌어들여 본질적인 문제를 은폐하는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사실 지금도 대외불안의 핵심 원천으로서 유럽 재정위기에 따른 금융권의 부실, 또 이를 이용한 투기세력들의 준동이 쟁점이 되고 있다. 우리에게도 대외불안의 전염 효과로서 주목되는 것은 결국 부실한 외국계 금융기관들의 자금 회수 혹은 투기 세력들의 농간이다. 외부의 “나쁜 놈들”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위기라는 것은 내부에 나름의 원인을 두고 있다. 남 탓만이 아니라 자기 탓도 크다. 최근 우리 금융시장이 대외불안과 맞물려 세간의 초점은 과거 외화유동성 위기가 재현될 가능성에 맞춰진다. 워낙에 충격이 컸던 탓에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는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위기의 진정한 메커니즘을 간과하게 하고, 따라서 위기의 해결은커녕 위기의 반복만을 초래할 따름이다.
지금 문제가 되는 위험들은 대부분 글로벌 금융위기의 연장선상이다. 그렇다고 그때와 동일한 방식으로 위기가 작동하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당시 문제가 되었던 복합파생상품이나 현대 금융의 복잡한 사슬구조는 현재 큰 쟁점이 아니다. 얼마 전 유비에스(UBS)의 금융 사고에서 보듯이 다시 조금씩 문제가 되고 있기는 하지만, 당장에 위기 징조는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유럽 은행권의 유동성 우려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차원에서 달러화 유동성의 경색 우려는 아직 크지 않고, 국내 외화유동성 사정도 예전에 비해 많이 개선된 실정이다.
유럽 재정위기나 미국의 더블딥 위험 모두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의 성장 여건이 근본적으로 달라진 데에 기반하고 있다. 금융이 더는 실물경제에 대한 원활한 자금공급이라는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데다, 실물 부문에서 수익성 혹은 성장의 동력을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비롯된 문제라는 것이다. 본래 재정이라는 것은 금융 및 성장과 밀접한 함수관계를 맺고 있으며, 미국의 자생적인 경기회복력 부재도 마찬가지다.
나아가 외풍에 대한 우리 경제의 취약성도 결국에는 내수와 외수의 균형성장이 뿌리내리지 못하고, 금융 혹은 자본을 수익 극대화의 수단으로만 간주해 온 풍토에서 연유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수출과 내수, 대기업과 중소기업, 기업과 가계, 금융자산가와 급여소득자, 금융과 실물, 대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양극화와 같은 사회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다. 위기가 단순히 경제 불황만이 아니라 사회적 위기로 귀착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다.
어쩌면 지금 회자되는 외화유동성 위기, 이와 맞물린 환율이나 금융시장 불안은 일종의 ‘레드허링’(red herring), 즉 ‘거짓 신호’인지도 모른다. 위기라는 것은 본래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나타나게 마련이다. 자칫 과거의 위기에만 초점을 맞추다가, 혹은 외부의 희생양을 찾는 데 몰두하다가, 정작 경제의 기초체력(펀더멘털) 부실에 따른 진짜 위기는 놓칠 수 있다.
장보형/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