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전망 재정위기의 차이
미, 세수 늘릴 여지 커 상환능력 높아 위기 가능성 낮아
유럽은 부채비율 낮지만 근본적 개선책 없어 재발 위험
미, 세수 늘릴 여지 커 상환능력 높아 위기 가능성 낮아
유럽은 부채비율 낮지만 근본적 개선책 없어 재발 위험
전세계에서 부채가 문제다. 2008년의 미국발 금융위기는 가계의 과잉부채로부터 비롯됐으며, 3년이 지난 지금 대서양 양쪽의 나라들에서는 ‘재정위기’라는 이름으로 정부 부채가 문제가 되고 있다. 또한 맥락은 다르지만, 우리나라에서도 과도한 가계부채가 야기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한 경고가 계속되고 있다. 특히 위기 이후 주요국들이 가계부채 축소(디레버리징)의 과정을 겪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의 가계부채는 지속적으로 늘어왔다는 점에서 우려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부채의 절대적인 양 자체는 중요한 잣대가 아닐 수 있다. 경제 전체로 본다면, 누군가의 부채는 동시에 다른 누군가의 자산이며, 따라서 부채가 증가하는 만큼 자산도 증가한다. 그러므로 경제 전체적으로 파악된 부채의 총량 그 자체보다는, 부채를 늘리고 있는 경제주체가 어떤 조건에 처해 있는가, 즉 당장은 빚을 지더라도 나중에 갚을 능력이 있는가가 훨씬 중요한 문제다. 비록 동일한 ‘재정위기’라는 명칭으로 불리기는 하지만, 미국과 유로지역의 상황은 바로 이 지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지금 미국은 국내총생산의 100%에 달하는 국가부채로 인해 신용등급이 강등되면서 재정긴축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조세구조의 개편가능성 등을 고려한 미국 정부의 중장기적인 부채상환능력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 미국의 국내총생산 대비 조세수입 비중은 28% 수준으로, 30% 중반을 넘나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들에 견줘 크게 낮다.(프랑스 43%, 이탈리아 43%, 스페인 37%, 독일 36%, 영국 36%, 캐나다 36% 등) 이는 미국 정부가 세제 개혁을 통해 조세수입을 크게 늘릴 여지가 있음을 시사한다. 또한 미국의 개인소득세 최고세율은 35% 정도로 우리와 비슷하지만, 이 최고세율이 적용되는 구간은 연소득 4억3천만원 이상으로 높게 설정돼 있기 때문에 고소득층이 부담하는 실질세율은 매우 낮은 편이다. 최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버핏세라는 이름으로 추진하고 있는 고소득층 증세는 이러한 사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소비성향이 상대적으로 낮은 고소득층에 대한 증세는 수요위축이라는 부작용 없이 조세수입을 늘려 재정을 건전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처럼 조세구조 개편을 통해 세수를 늘릴 여지가 많기 때문에 실제로 재정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문제는 재정 관련 개혁이 정치권의 이해타산으로 인해 표류할 수 있다는 점일 뿐이다.
그러면 유로지역의 상황은 어떠한가? 유로지역 전체의 평균적인 국가부채 비율은 88% 정도로 미국에 비해 양호하며, 특히 최근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나라들 중 하나인 스페인의 경우는 68%로 훨씬 더 낮다. 그러나 문제는 부채의 총량이 아니라 채무상환능력임을 고려할 때, 이들의 상황은 미국보다 더욱 심각하다.
유로화 체제는 언어와 문화가 다를 뿐만 아니라 제조업의 생산성과 물가수준에 격차가 있는 나라들을 단일통화로 통합하였다. 따라서 회원국들의 사정에 맞는 독자적인 통화 및 금융정책은 불가능해졌으며, 이로 인해 불균형이 조정되지 못하고 지속돼 왔다. 1999년 유로화 출범 이후 그리스와 포르투갈, 스페인과 이탈리아 등 남부유럽의 나라들은 경상수지 적자가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왔으며, 최근의 금융위기를 계기로 재정위기로 전이되기에 이르렀다.
최근 세계 금융시장의 불안이 지속되고 있는 것은, 남부유럽 나라들의 채무상환능력에 대한 의구심 때문에 이들의 국채가 원활하게 상환되거나 만기연장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논의되고 있는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의 규모 증액을 통한 위기국의 국채 매입, 은행자본금 확충 지원 등은 모두 유동성 지원이거나 위기발생 때 금융기관의 충격흡수능력을 제고하기 위한 것일 뿐, 채무국의 상환능력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위기국들은 채무상환을 연기하거나, 일부 채무를 탕감받을 수 있을 뿐이다. 설령 극단적으로 부채를 모두 탕감받는다고 해도, 현재와 같은 유로체제 아래에는 이들의 독자적이고 자생적인 성장이 어렵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다시 부채가 누적되면서 위기가 재발할 가능성이 높다. 바로 이 지점에서 미국과 유로지역의 상황은 결정적으로 다르다.
이상의 논의들은 우리 가계부채 문제에도 시사적이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은 부채의 총량이라기보다는 가계의 채무상환능력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내수경기 활성화를 통한 자영업자들의 소득 증가, 소득 불균형과 양극화 현상의 완화 등은 가계부채 대책이라는 측면에서도 중요한 과제다. 동시에 주택가격의 급변동이 관련 가계의 채무상환능력을 악화시킬 가능성에 대해서도 주의 깊은 관찰과 대응이 필요하다.
임일섭/농협경제연구소 거시경제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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