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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수출 대기업 키운 정책 ‘내수·분배 확대’로 변화할 때

등록 2011-11-27 20:37

진단&전망 신자유주의 운명은…
경상수지 흑자 기반 다진 신자유주의 정책 임무 끝나
중소기업·가계 보호 등 부작용 줄이는 방향으로 전환
1990년대 말 아시아가 외환위기를 겪은 이후 고환율 정책의 영향으로 아시아 국가들의 경상수지 흑자와 서구 선진국들의 적자 구도가 오래 지속됐고, 장기간 과도한 경상수지 적자에 시달린 서구 선진국들이 경제위기를 겪게 됐다는 것은 <한겨레> 10월24일치 지면에서 필자가 지적한 바 있다. 그런데 외환위기가 가져온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는 국내 경제에서 소득 불평등이 확대됐다는 것이다. 소득 불평등은 이른바 ‘신자유주의’ 정책에서 비롯된 영향이 크다. 신자유주의는 국가가 시장에 개입하는 것을 최소화하는 동시에 시장 기능과 민간의 자유로운 경제 활동을 중시하는 이론이다. 신자유주의는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정부가 시장에 적극 개입해 분배나 고용을 개선시켜야 한다며 도입된 이른바 ‘케인스 이론’과는 상반되는 입장이다.

우리나라가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정책을 도입한 것은 당시로서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1980년대까지 빠른 성장을 거듭하던 우리 기업들은 90년대 들어 경쟁력을 잃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우리 기업들은 가격 면에서는 후발 개발도상국에 밀리고, 품질 면에서는 선진국에 밀리는 이른바 넛크래커 속에 끼인 호두처럼 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넛크래커는 호두를 양면에서 눌러 까는 기계인데, 이 비유는 우리나라가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어 경쟁력을 잃고 있는 신세라는 의미였다. 1997년에 발생한 외환위기는 기업들이 수출 경쟁력을 잃어 경상수지 적자가 계속 이어진 것이 중요한 원인 중 하나였다. 따라서 외환위기를 겪은 우리나라의 입장에서는 같은 위기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기업이 경쟁력을 갖춰야 했고, 그래야만 우리나라도 넛크래커에 끼인 호두 신세를 면할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 정부가 채택한 전략이 신자유주의 정책이었다. 신자유주의 정책의 구체적인 모습으로는 노동시장 유연화, 시장 개방, 규제 완화 등을 들 수 있다. 이런 정책들이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큰 구실을 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 1990년대 우리나라 제조업체들의 순이익을 보면 많을 때 9조원 정도였고, 대부분은 3조원도 채 안 됐고 외환위기가 발생한 이후 2001년까지는 적자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2002년부터 제조업체들은 30조원 이상의 순이익을 올리기 시작했다. 환율이 더욱더 기업들에 유리해진 2010년에는 거의 90조원에 육박하는 순이익을 올렸다. 이러한 이익의 바탕에 수출 확대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부작용이 나타났다. 노동시장 유연화가 기업에는 인건비를 절감하는 수단이 될 수 있었지만, 개인들에게는 비정규직 증가라는 부정적인 결과로 돌아왔고, 시장 개방은 영세한 규모의 내수 기업들한테 해외 기업과 안방에서 경쟁해야 하는 부담을 가져왔다. 신자유주의가 자유시장을 기본 이념으로 삼고 있다 보니 경쟁이 심화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이런 것들이 효율성은 가져왔을지 몰라도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오지는 못한 것 같다. 우리나라의 대표 기업들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우뚝 세웠을지언정 가계 부문에는 그에 걸맞은 소득 증가를 가져다주지 못했다. 수출 기업에 막대한 순이익을 가져다주었지만, 경쟁력이 떨어지는 영세 사업자나 중소기업에는 힘든 나날이 이어졌을 것이다.

최근 우리 정부의 정책들을 살펴보면 이러한 문제 인식이 일부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소기업 고유업종 지정을 통해 대기업의 시장 잠식을 막으려는 움직임이 있으며, 백화점이나 신용카드회사, 은행, 홈쇼핑업체 등의 수수료 인하를 유도하려는 모습도 보인다. 이런 것들은 경제적 약자인 중소기업이나 가계를 보호하기 위한 조처들이지만 지난 십여년간 신자유주의 정책 추구 과정에서 생겨난 부작용을 완전히 치유하기에는 아직 미흡해 보인다.

이런 상황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이웃 아시아 국가들도 비슷한 형편일 것이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많은 아시아 국가들이 지난 십여년간 엄청난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했는데, 이는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나라와 비슷한 전략을 택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구도에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 된 것 같다. 경쟁력 향상만으로 달려온 지난 십여년이 분배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줬고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피로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새로운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아마도 이제는 아시아 각국 정부가 수출보다 내수를 더 챙기는 모습을 보일 것이다. 정부 예산 중 저소득층을 배려하는 부분이 더 커질 것이다. 저개발 국가에서는 전기, 수도, 통신, 도로 등 생활과 관련된 사회간접자본 확충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큰 관점에서 본다면 신자유주의 정책은 경상수지 흑자 기반을 다져놓은 것에서 그 임무를 마쳤다. 이제는 신자유주의 정책이 가져온 부작용을 줄이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할 때가 됐다. 마침 경제위기를 맞은 선진국들도 아시아에 내수 확대를 요구하고 있고, 아시아도 이제 수출 일변도 성장에서 벗어나 내수 확대 기반을 만들어야 할 상황이 됐다. 앞으로 다가올 십년은 아시아가 내수 성장을 통해 세계 경제를 이끄는 시대가 될 것이다.

전민규/한국투자증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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