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전망
내수·수출경기 양극화
내수·수출경기 양극화
언제부터인가 우리 기업들의 실적 발표 시기가 되면 단골로 등장하는 뉴스가 있다. 수출 대기업들이 사상 최대의 실적을 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서민들의 체감경기는 여전히 좋지 않다는 뉴스가 그것이다. 수출 위주 제조업에 비해 내수 위주 서비스업의 경기가 부진하고, 나아가 소득분배의 불균형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이러한 보도의 취지는 충분히 이해되지만, 이러한 접근방식은 최근 대기업들의 생산구조 변화를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 반도체와 자동차, 휴대전화 등 주력 수출품목을 생산하는 대기업들의 경우 내수 판매보다 수출이 훨씬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 것은 오래전의 일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판매뿐만 아니라 생산도 국외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인건비와 물류비 절감, 무역장벽 회피 등을 목적으로 국외 공장을 통한 현지생산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이 주력품목인 대형 전자업체의 경우 국외 생산 비중이 70%를 상회하며, 자동차의 경우에도 국외 생산 비중이 절반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처럼 주력 품목들의 생산이 국제화됨에 따라 나타나는 현상 중의 하나는, 기업실적과 국민경제 성장 간의 괴리가 커진다는 점이다. 국내에서 생산된 부품들이 현지 공장으로 수출되는 경우에는 우리 경제 성장에 기여할 수 있겠지만, 부품을 조립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부가가치와 인건비 등은 공장이 위치한 지역의 생산 및 소득증가에 기여할 뿐이다. 요컨대 기업들의 현지생산 증가를 통한 실적 개선은 우리 국내총생산(GDP)을 증가시키는 직접적 요인이 아니며, 이런 의미에서 국외생산 비중이 높은 기업들의 실적과 국내 체감경기는 별개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물론 이러한 요인과는 별개로, 우리 경제에서 수출과 내수경기의 격차가 확대되어 온 것은 사실이다. 전체 광공업 수출 출하의 경우 1990년대와 2000년대에 걸쳐 10% 초반의 꾸준한 연평균 증가율을 유지하고 있으나, 내수 출하의 증가율은 1990년대의 8.4%에서 2000년대에는 4.2%에 그쳐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러한 내수경기의 상대적 부진은 서비스업의 성장률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제조업의 연평균 성장률은 1990년대 7.9%, 2000년대 7.4%로 꾸준히 유지되고 있는 반면, 서비스업의 연평균 성장률은 1990년대에는 7.6%로 제조업과 비슷한 수준이었다가 2000년대에는 3.7%에 그치는 등 격차가 크게 확대되었다.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성장률 격차 확대는 국민경제의 불균형적 발전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불균형의 원인을 수출 위주 성장전략에서 찾고, 이른바 내수주도적 성장을 이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도 우리 현실에 부합하는 방안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우리 제조업의 생산능력, 그리고 궁극적으로 인구규모에 의해 제약될 수밖에 없는 우리 내수시장의 크기 등을 고려할 때, 제조업의 성장이 수출에 의해 주도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또한 운송과 관광 등 일부 수출관련 업종을 제외한 대부분의 서비스업이 내수에 의존하고 있음을 고려할 때, 인구 5천만의 우리 경제가 서비스업 중심의 성장전략을 추구하는 것도 명백한 한계가 있다. 따라서 수출경기와 내수경기의 격차를 완화하기 위해 중요한 과제는, 수출주도적 성장전략에서 내수주도적 성장전략으로의 전환이 아니라, 주요 품목의 생산과 수출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부가가치가 국내 기업들에 의해 좀더 많이, 좀더 골고루 향유되도록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완제품 생산에 필요한 부품과 소재의 국산화율을 높여서 수출의 외화가득률을 제고하는 것은 수출에서 얻어지는 과실의 절대적 크기를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 또한 수출 대기업과 하청관계인 중소기업 간의 공정거래 확립은 수출의 과실이 골고루 퍼질 수 있도록 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한편 수출경기와 내수경기의 구조적인 괴리는 통화정책에 대해서도 새로운 과제를 제기한다. 통화정책 기조의 결정에서 중요한 잣대는 지디피 갭이다. 실제 지디피와 잠재 지디피(물가상승을 유발하지 않으면서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생산)의 격차로 정의되는 지디피 갭이 플러스(+) 상태이면 인플레이션 갭이 존재하기 때문에, 통화정책은 총수요를 억제하는 긴축기조를 취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이는 실제 지디피가 잠재 지디피를 초과하게 되면 수요 측면에서의 물가상승 압력이 높아짐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지디피의 증가가 수출관련 부문에 국한되어 있을 뿐 수출의 과실이 내수부문으로 충분히 파급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지디피 갭이 플러스라고 하더라도 수요 측면의 물가상승 압력이 높아지고 있다고 단언하기 힘들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디피 갭의 플러스 전환을 이유로 통화정책이 긴축기조를 취하는 것은 내수경기 부진을 심화시키는 것으로 귀결될 수도 있다.
국민경제의 불균형성장은 공동체의 통합력을 저해하고 사회적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지만, 동시에 전통적인 통화정책의 패러다임이 고려하지 못한 문제를 새롭게 제기하고 있다는 점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임일섭/농협경제연구소 거시경제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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