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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조폭과 ‘살인 부대’가 노동자 관리…최저임금 30년째 월 10만원 안돼

등록 2014-08-25 20:02수정 2014-08-26 16:57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의 거리 곳곳에는 ‘긴급행동대대’(Rapid Action Battalion)를 홍보하는 입간판이 서 있다. 테러에 대응한다는 명분으로 창설된 이 부대는 노동자들의 시위를 폭력적으로 진압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다카/유신재 기자 ohora@hani.co.kr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의 거리 곳곳에는 ‘긴급행동대대’(Rapid Action Battalion)를 홍보하는 입간판이 서 있다. 테러에 대응한다는 명분으로 창설된 이 부대는 노동자들의 시위를 폭력적으로 진압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다카/유신재 기자 ohora@hani.co.kr
심층 리포트
총, 특권, 거짓말 : 글로벌 패션의 속살
방글라데시를 가다
② 형편없는 임금에도 재봉틀 돌아가는 이유
폐차장에서 되살아나온 듯한 승용차와 버스, 3륜 택시 ‘시엔지’(CNG), 자전거를 개조한 인력거 릭샤, 차창에 매달려 구걸하는 거지. 조야한 기계와 남루한 사람들이 뒤엉킨 방글라데시의 수도, 다카의 도로는 좀체 속도를 내기 힘들다.

렌터카 뒷좌석에 지루하게 앉아 있는데 차창 밖이 소란스럽다. 교통경찰이 릭샤꾼에게 고함을 친다. 교통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릭샤를 옮기라는 뜻인 것 같다. 곧이어 교통경찰이 릭샤꾼의 뺨을 힘껏 올려붙였다. 따귀를 맞은 릭샤꾼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릭샤를 옮겼다.

멍하니 이 광경을 바라보던 이방인에게 통역과 현지 안내를 맡은 레자는 “저 정도면 착한 경찰”이라고 말했다. “고문금지법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경찰이 채찍으로 릭샤꾼을 때리는 것도 흔히 볼 수 있었어요.” 방글라데시 의회가 고문금지법을 통과시킨 것은 지난해 10월이었다.

가난한 시골 출신 남자들이 릭샤를 끈다. 한 번 손님을 태울 때마다 10~20타카(약 130~260원)를 받아 하루 200타카의 대여료를 내고 남는 돈이 수입이다. 40만대에 이르는 릭샤가 다카에서 경쟁한다. 더 좋은 목을 지키려고 고집을 피우다 경찰한테 따귀를 맞는다.

시골 태생 여자들은 대개 월 5300타카(약 7만원)의 최저임금을 받고 의류공장에서 일을 시작한다. 도시의 집세와 식비 등 생활비를 대기에도 빠듯하다. 조금 더 높은 월급과 나은 노동환경을 요구하고 나서는 의류노동자들은 따귀를 맞는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

치타공의 번화가 아그라바드 지역 노점에서 한 남자가 ‘슬레진저’ 로고가 박힌 티셔츠를 장당 200~250타카, 약 3000원에 팔고 있다. 이른바 ‘짝퉁’이라는 걸 누구나 알고 있다. 진품을 사려면 ‘싱가포르 마켓’으로 가야 한다. 서울 세운상가 같은 오래된 건물에 작은 점포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허름한 겉모습과 어울리지 않게 점포 안에는 타미힐피거, 갭, 리바이스, 캘빈클라인 등 유명 글로벌 브랜드 제품이 가득하다.

‘아즈미르 컬렉션’이라는 점포의 점원이 이방인을 반기며 타미힐피거 티셔츠를 권했다. 1000타카, 우리 돈으로 약 1만3000원이다. 반강제적인 권유에 옷을 입어보다 “짝퉁 아니냐”고 묻자 점원은 펄쩍 뛰었다. “수출가공공단(EPZ·Export Processing Zone) 안쪽에 줄이 닿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 사람들한테서 물건을 떼오는 거예요. 정말이에요. 물건이 필요하다고 전화하면 갖다줘요. 공장에서 그때그때 남은 물건을 갖다주는 거라서 같은 브랜드가 계속 나오진 않아요.”

다른 점포에서는 모자가 달린 노스페이스 겨울 점퍼도 눈에 띈다. 겨울에도 최저기온이 영상 10℃ 밑으로 거의 떨어지지 않는 이곳에선 도무지 입을 일이 없는 옷이다. 영원무역 공장에서 나왔다는 점퍼의 가격은 3500타카, 약 4만6000원. 한국에서 팔리는 가격의 10분의 1 수준이다. 이곳의 최대 고객은 치타공 항구에 잠시 정박한 외국인 선원들이다. 한 점포 주인은 중국인, 한국인 선원들이 한번에 수십벌씩 사간다고 귀띔했다.

수출가공공단 출입구에서는 경찰이 밖으로 나가는 차량을 세워 트렁크 속까지 검사한다. 수출품이 내수시장으로 흘러들어오는 것을 막는 것이다. 이를 뚫고 물건을 밖으로 빼돌릴 수 있는 건 ‘마스탄’이다. 벵골어로 ‘근육질 남자’라는 뜻인 마스탄은 조직폭력배를 말한다. 영원무역에서 오랫동안 관리직으로 일했던 여성은 “누구나 아는 비밀이다. 그들이 물건을 빼돌린다. 그들은 여러가지 일을 한다”고 말했다.

영원무역에서 일어난 테러 사건(▷ 관련기사 : 설레던 월급날, 21살 여공의 머리에 총알이 날아들었다)에 대해 묻기 위해 만난 목격자들은 한결같이 인터뷰를 꺼렸다. 인터뷰 섭외를 도와주던 노동자가 이유를 설명했다. “한국에서 온 기자랑 인터뷰했다고 이웃에 사는 동료가 회사에 찌를 수 있어요. 그러면 회사는 마스탄을 시켜서 가만 놔두지 않죠. 5~10명이 한밤중에 들이닥칩니다. 다들 무기를 갖고 오기 때문에 주민들도 말릴 수 없어요.”

다카 인근의 한국계 공장의 노동자는 인터뷰를 마치고 몇시간 뒤 전화를 걸어왔다. “오늘 우리가 얘기한 걸 공장에 가서 다시 확인하면 우리가 위험해져요. 회사 관리자가 마스탄 40명 정도를 동원할 수 있어요. 그러면 우린 이 동네에서 쫓겨나고, 공장에서 해고돼요.” 또다른 한국계 공장의 노동자는 끝내 인터뷰를 거절했다. 이 지역의 노동단체 활동가는 “노동자들 대부분 시골에서 온 외지인이다. 같이 힘을 합쳐서 마스탄과 맞서지도 못한다. 그래서 더 두려워한다”고 설명했다.

‘마스탄’이라 불리는 조폭
노동자 시위 못하게 폭행·협박
공장서 물건 빼돌려 ‘짝퉁’ 사업도
“마스탄은 경찰·정당과 다 연결돼”

영원무역 테러사건 목격 노동자
“돈 주고 고용된 그자들 짓이 분명”

치타공의 노동운동가 시디굴 이슬람은 “마스탄은 공장에서 견본품이나 불량품, 자투리 원단 등을 받아서 여러가지 사업을 한다. 공장에서 연락을 받으면 노동자들이 시위를 못하게 폭행하고 협박한다. 마스탄은 경찰, 정당과 다 연결돼 있다. 노동자들이 신고해도 경찰은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2010년 12월 영원무역 공장에서 관리자에게 불려간 뒤 손발이 잘린 채 발견된 노동자들을 병원으로 실어보냈다고 한 재단사 마슈(가명)는 “관리자들은 다들 나이가 많다. 그들이 젊은 노동자들을 그렇게 폭행할 수는 없다. 돈을 주고 밖에서 고용한 사람들이 한 짓일 것”이라고 말했다.

방글라데시 치타공 외곽에 있는 한국수출가공공단(KEPZ) 내 영원무역의 한 공장에서 여공들이 미싱을 돌리고 있다. 이곳은 지난 1월 최저임금 인상 시위를 벌이다가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숨진 미싱 보조사 파빈 악터가 일하던 공장이다. 외부인의 출입이 철저히 통제돼 있어, 공장 노동자가 휴대전화로 찍은 사진이다.
방글라데시 치타공 외곽에 있는 한국수출가공공단(KEPZ) 내 영원무역의 한 공장에서 여공들이 미싱을 돌리고 있다. 이곳은 지난 1월 최저임금 인상 시위를 벌이다가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숨진 미싱 보조사 파빈 악터가 일하던 공장이다. 외부인의 출입이 철저히 통제돼 있어, 공장 노동자가 휴대전화로 찍은 사진이다.
1980년대부터 의류공장 노동자들의 작업환경을 조사해온 현지 여성단체 우비니그의 파리다 악터 사무처장은 “마스탄을 빼고 방글라데시 의류산업을 얘기할 수 없다. 그들이 공장주의 사주를 받고 노동자들을 선동해 폭력적인 시위를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불만이 쌓여 있는 노동자들이 제대로 조직된 시위를 벌이기 전에 우발적으로 폭력적인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경찰이 들어와서 진짜 시위를 조직할 수 있는 노동자들을 잡아가는 식이다. 일종의 ‘선제적 대응’”이라고 말했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2010년 10월 “산업 분야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산업경찰(Industrial Police)을 창설했다. 의류공장이 밀집한 다카, 가지푸르, 나라얀간지, 치타공 등 4개 도시에 배치했다. 산업경찰은 오직 의류산업 분야를 맡는 경찰 조직이다.

영원무역 성기학 회장과 함께 성 회장의 전용기를 타고 영원무역 베트남 공장을 다녀온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샤히둘리 아짐 방글라데시의류제조수출협회(BGMEA·Bangladesh Garment Manufacturers & Exporters Association) 부회장은 “우리나라는 경찰이 충분치 않다. 고속도로만 담당하는 고속도로순찰대처럼 산업만 전담하는 경찰을 만들어달라고 협회가 정부에 도움을 요청했다. 때론 노동자들이 소요를 일으키고 공장을 부순다. 자산과 공공의 안전을 위해 경찰을 투입해야 한다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수출공단에 들어가면 헬멧과 방패, 곤봉으로 무장한 산업경찰을 쉽게 볼 수 있다. 샤히둘리 부회장은 “산업경찰은 경영주와 노동자 양쪽을 모두 보살핀다. 소요가 일어나면 중재자 역할을 한다. 경영진의 잘못도 산업경찰이 처리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산업경찰은 2010년 12월 치타공 영원무역 공장에서 일어난 테러사건을 막지 못했고, 그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지도 못했다. ‘해송’이라는 이름의 의류공장을 운영하며 방글라데시한인회 회장을 맡고 있는 윤희 사장은 “정부가 2010년 산업경찰을 만들고 장비도 보강하고 큰 집회를 못하게 한다. 시위가 일어날 기미가 보여 우리가 연락하면 산업경찰이 공장으로 출동한다. 산업경찰청장이 시위장비 구입 등을 위해 한국을 두 번인가 방문했다. 그는 지한파다. 한국 업체들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고 말했다.

지난 3~4월 다카에서는 크리켓월드컵 대회가 열렸다. 1947년까지 영국 식민지였던 이 나라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는 크리켓이다. 대회가 있는 날 저녁은 여느 때보다 더 길이 막혔다. 렌터카가 검정 픽업트럭과 나란히 정차했다. 검은색 두건과 검은색 선글라스, 검은색 제복을 입은 사내들이 타고 있었다. 길거리에서 흔히 만나는 작은 체구의 방글라데시 남성들과 달리 하나같이 건장한 체격이었다. 사내들의 어깨에는 보통 경찰들이 메고 다니는 나무 재질의 장총이 아니라 자그마한 자동소총이 달려 있었다. 사내 가운데 한명이 고개를 빼고 렌터카 안을 굽어봤다. 레자가 나지막이 말했다. “카메라 내려놔요. 쳐다보지도 마요.” 넉살이 좋아 쉼없이 농담을 하는 운전기사 아지물도 굳은 표정으로 앞만 바라봤다. 갈림길에서 검정 픽업트럭이 다른 쪽으로 방향을 틀 때까지 약 3분 동안 렌터카 속 세 명은 숨을 죽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검은색 사내들의 공식 명칭은 ‘긴급행동대대’(Rapid Action Battalion). 영어 머리글자를 따 흔히 ‘랩’(RAB)이라고 부른다. 랩은 2001년 9·11 테러사건 이후 미국과 영국이 주도한 ‘테러와의 전쟁’에 협력한다는 명분으로 2004년 창설됐다. 경찰, 군, 국경수비대에서 선발된 최정예 요원들로 구성됐다.

‘랩’이란 이름의 살인부대
테러대응 명목으로 만든 특수부대
사법절차 안거치고 ‘총살’ 수백명
2010년 영원무역 시위에도 투입

한국대사관 “한국기업 보호해달라”
인권단체 지탄받는 랩에 협조 요청

2008년 7월26일 저녁 여든살 노파 노베라 카툰이 다카의 제니다 프레스클럽 앞에 섰다. 이곳은 방글라데시의 정당, 엔지오, 노동단체들의 단골 기자회견 장소다. 노파는 “아들이 죄를 지었다면 ‘크로스파이어’하지 말고 기소해달라”고 호소했다. 내과의사인 아들 미자눌 라흐만 투툴은 전날 랩에 잡혀갔다.

이곳 노동자와 활동가들과 대화하면서 잘 이해가 안 되는 단어가 ‘크로스파이어’(crossfire)였다. 이상하다 싶어 일부러 사전을 찾아봤다. ‘십자포화’ 또는 ‘교차사격’. 전쟁터에서 사방에서 총알이 빗발치는 상황을 뜻하는 명사다. 방글라데시에서 이 단어는 새로운 용법을 얻었다. 랩에 잡혀간 많은 사람들이 체포 며칠 뒤 총에 맞아 숨졌다. 주검에는 총상뿐 아니라 으레 시퍼런 멍자국이 있었다. 이런 사건이 있을 때마다 랩은 ‘범죄자가 크로스파이어 과정에서 숨졌다’는 공식입장을 발표했다. 이미 체포된 범죄 용의자가 랩 요원들을 향해 총격을 가했고, 이에 대한 랩의 대응사격으로 숨졌다는 것이다. 2004년부터 2010년 사이 이렇게 숨진 사람이 랩의 공식집계로만 622명. ‘크로스파이어’란 사법절차를 거치지 않고 총살하는 것을 뜻하는 동사가 됐다. 내과의사 미자눌은 노모의 기자회견 이튿날 ‘크로스파이어’됐다. 불법 공산주의 정당의 지도자였다는 게 그의 혐의였다.

랩은 노동자들의 시위에도 투입된다. 총격으로 여러 노동자들이 숨진 2010년 영원무역 공장 앞 시위에도 랩이 투입됐다. 영원무역 재단사 마슈는 랩에 대해 “처음에는 말로 협박한다. 안 들으면 때린다. 그래도 안 되면 공포탄을 쏜다. 그래도 안 되면 사람들한테 총을 쏜다. 무서운 존재다”라고 말했다. 휴먼라이츠워치와 앰네스티인터내셔널 등 국제 인권단체들은 랩을 ‘살인 부대’(killing squad)라고 지탄한다.

지난해 말, 주방글라데시 한국대사관은 랩과 군 정보국(DGIF)에 협조를 구했다. 전국적으로 동시다발적 시위가 벌어질 경우 산업경찰이나 지역 경찰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테니, 랩과 군 정보국이 방글라데시 최대 투자국인 한국의 기업인들이 운영하는 의류공장들을 보호해달라는 요청이었다. 랩과 군 정보국으로부터 약속을 받아낸 한국대사관은 한인 공장주들에게 공장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즉각 연락하라고 안내했다.

압도적인 힘의 열세를 경험한 노동자들은 체념한다. 지난 1월 시위 진압 과정에서 경찰의 총에 숨진 파빈 악터의 어머니 카툰은 오열하며 딸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다 “운이 없어서 죽었다”고 말을 맺었다. 노동자들을 때리는 경찰을 말리다 ‘노동자 대표’로 몰려 두들겨맞아 시위의 기폭제가 된 품질관리담당 모하메드 하룬은 “회사나 경찰 누구도 사과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 불만 없다. 시위 이후 우리 요구대로 회사가 임금을 올려줬다. 어쩌면 그게 사과다”라고 말했다. 총에 맞아 큰 부상을 입은 노동자들, 산탄총을 맞은 노동자들이 수두룩하지만 보상을 요구하는 이는 없다. 머리를 다친 봉제공 쇼히둘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다 얻게 됐다. 그래서 침묵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로 10여년 동안 일하다 방글라데시로 돌아온 마숨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행복지수가 세계에서 제일 높다고 하는데, 행복한 것이 아니라 포기가 빠른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방법으로 통제되는 저임금 덕분에 소비자들은 값싼 옷을 입는다. 영국의 바이어와 방글라데시의 여러 공장을 연결시켜주는 일을 하는 한 에이전트는 “영국에서 담배 1갑이 7파운드(약 1만2000원)다. 그런데 티셔츠 1장이 5파운드이고, 남성 속옷 4장을 묶어서 4파운드에 판다. 모든 물가가 다 올라가는데 옷값만 내려간다”고 말했다.

다카·치타공/유신재 류이근 기자 oh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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