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나풀리강은 치타공을 끼고 벵골만으로 흘러들어간다. 강 서쪽 하구에는 방글라데시에서 가장 큰 치타공 항구가 자리잡고 있다. 이 나라에서 만든 옷을 외부로 내보내는 관문이기도 하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가운데 하나인 방글라데시는 세계에서 두번째로 많은 의류를 수출한다. 지금은 그 흔적조차 찾기 어렵지만 원래는 치타공 항구 건너편이 국제항구였다.
천년 넘게 배가 드나들던 옛 항구 뒤쪽에 영원무역이 세운 한국수출가공공단(KEPZ)이 자리잡고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조성되기 시작한 드넓은 공단엔 공장 네댓개만이 휑뎅그렁하게 서 있다. 인구는 많고 땅은 비좁은 방글라데시에서 축구장 700개를 지을 수 있는 넓은 면적(산업용 땅 기준)을 외국 기업에 통째로 내준 것이다. 한때 비옥한 농지였던 공단 터 대부분이 아직까지 놀고 있다.
지난 1월9일, 이 공단 안 7번 공장에서 미싱보조사로 일하던 파빈 악터(21)가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숨졌다. 파빈의 흔적은 빠르게 지워졌다. 치타공대학병원에 실려간 주검은 따라간 동생 나시마도 모른 채 부검이 이뤄졌다. 자정께 조그만 시골마을 근디빠라의 집으로 돌아온 주검은 오래 머물지 못했다. 마을 이장과 회사에서 온 듯한 낯선 사람들이 “냄새가 날 수 있다”며 매장을 서둘렀다. 원래 망자를 곧바로 땅에 묻는 게 무슬림의 관습이지만, 한밤중의 매장은 드문 일이다.
파빈은 집 근처 ‘앵무새 연못’ 옆에 묻혔다. 어렸을 적 동생과 함께 멱도 감고 빨래도 하던 연못에는 앵무새들이 찾아왔지만, 큰 나무들이 잘려나간 지금은 오지 않는다. 장례를 치른 지 며칠 뒤에는 직책도 이름도 알 수 없는 회사 사람들이 파빈의 집으로 찾아왔다. 그들은 파빈의 사원증과 월급명세서 등 서류를 몽땅 가져갔다. 집에 남은 파빈의 기록은 총에 맞아 쓰러진 모습을 담은 흐릿한 사진 한 장이 전부다.
파빈이 마지막으로 받은 월급명세서엔 4500타카(약 6만원)가 찍혀 있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1000타카(약 1만3000원) 넘게 오를 것으로 기대했던 월급은 700타카(약 9300원) 인상에 그쳤다. 회사가 수당을 깎은 탓이었다. 파빈이 죽은 지 며칠 뒤에야 노동자들은 제대로 오른 월급 봉투를 받을 수 있었다. 파빈은 월급을 받지 못했지만 그 가족은 회사에서 60만타카(약 803만원)를 보상받았다. 파빈의 어머니인 마제다 카툰이 평생 만질 수 없는 큰돈이었다. 그는 보상금을 손도 대지 않은 채 아는 사람에게 맡겼다. 이자가 나오지 않는 은행 계좌에 넣어뒀다는 얘기를 들었을 뿐, 어떻게 보관되는지는 알지 못한다고 했다. 카툰은 “딸은 나를 엄마라고 부르지만, 돈이 나를 엄마라고 부를 순 없다”고 말했다. 세상 어디에서도, 죽은 딸을 돈이 대신할 순 없다.
파빈이 출퇴근하던 길에 본도르바자르란 꽤 큼직한 마을이 있다. 이곳에서 자동차로 2~3분만 더 달리면 한국수출가공공단 정문 앞에 이른다. 마을은 아라칸왕조 전 고대 때부터 번성했던 곳이다. 예로부터 미얀마, 타이, 포르투갈, 스페인 등지에서 배를 타고 온 상인들이 드나들었다. 상인들은 이 지역에서 나는 농산물과 보석, 동물 가죽, 상아, 향신료를 사갔고, 감자와 구아바, 파인애플 등을 전해줬다. 이제는 외지에서 온 공단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거주한다.
<한겨레>는 지난 3월 이곳에서 생활하는 영원무역 노동자 1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였다. 노동자들의 월급은 수당까지 모두 더해 평균 7350타카(약 9만8000원)였다. 그나마 최저임금이 인상되면서 지난해보다 늘어난 액수였다. 공단이 가동을 시작한 지 몇 년 되지 않은 탓도 있지만, 경력은 대개 2년 남짓이었다. 응답자의 다수는 남성들로, 여성의 급여는 이들보다 더 낮은 수준이다. 노동자들은 보통 방값으로 1200타카(약 1만6000원)를 내고 있었다. 저축을 하고 있다는 응답자는 3명뿐이었다. 저축액은 평균 410타카(약 5500원)에 그쳤다.
올 공장서 사람 죽어나갔어도
매출 31%, 영업이익 18% 올라
삼성전자보다도 영업이익률 높아
서울역에서 공덕역으로 넘어가는 만리재 중턱에 다다르면 오른편으로 노스페이스 로고가 박힌 커다란 인공암벽이 서 있다. 비록 암벽을 타는 사람을 볼 순 없지만, 세계 최대 스포츠웨어 주문자상표부착(OEM) 생산 업체의 알림판으로는 손색이 없어 보인다. 암벽 왼쪽 8층짜리 건물엔 영원무역의 해외수출 부서가 자리잡고 있다. 경기도 성남에 본사로 쓰이는 비슷한 규모의 건물이 따로 있다. 만리재 건물 1, 2층에는 영원무역의 자회사인 영원아웃도어가 국내 판권을 갖고 있는 노스페이스와 에이글, 브로드피크, 골드윈 등 스포츠 아웃도어 브랜드 매장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까지 와서 옷을 사는 사람은 드물다. 매장은 물건을 파는 곳이 아니라, 자신들이 어떤 옷을 만드는 회사인지 보여주려는 전시장처럼 보인다.
지난 3월14일 오전 10시, 만리재에 있는 영원무역 건물 앞은 비교적 한산했다. 지하 1층에서 영원무역과 영원무역홀딩스의 주주총회가 잇따라 열렸지만, 주주는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1층 로비에서 경비원과 정장 차림의 중년 남성이 주총장 출입을 통제했다. 이날 영원무역이 주총에서 통과시킨 의안 5건 가운데, 이사의 보수한도액 승인도 있었다. 사외이사 3명을 포함한 이사 8명의 보수지급 한도액은 올해 40억원이었다. 매년 그렇듯 회사가 낸 원안대로 안건이 승인됐다. 보수한도액은 전년도와 같은 액수였다.
전세계에 40여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영원무역 그룹을 이끄는 성기학 회장은 지난해 주식회사 영원무역에서 16억원의 보수를 받았다. 그는 영원무역의 지주회사인 영원무역홀딩스에서도 19억원을 챙겼다. 이와 별도로 영원무역홀딩스 지분 약 17%를 갖고 있는 그는 11억5500여만원의 배당을 받았다. 성 회장은 그룹의 실질적 지주사인 와이엠에스에이(YMSA)에도 46%의 지분(2011년 말 기준)을 갖고 있다. 이 회사는 비상장사여서, 열람 가능한(공시된) 감사보고서만을 봐서는 얼마를 배당했는지 등을 정확히 알 수 없다.
방글라데시를 비롯해 다른 나라에 있는 계열사에서 성 회장이 얼마나 받는지도 역시 알 수 없다. 영원무역은 “회장이 방글라데시 계열사에서 대표이사 등 임원을 맡고 있지만 보수는 따로 받지 않는다”고 밝혔다.
공시로 확인 가능한 성기학 회장의 지난해 임금과 배당만도 한국수출가공공단에서 일하는 방글라데시 노동자 약 4000명의 연간 급여와 맞먹는다. 영원무역과 영원무역홀딩스가 3월 주총에서 통과시킨 주주 배당금은 모두 더하면 150억원이 넘는다. 1년 동안 주식을 보유한 대가로 주주들에게 지급된 보상이 방글라데시 1만2000여명의 연봉(1인당 약 120만원 기준) 총액에 해당된다.
방글라데시 치타공과 수도 다카 등지에 있는 영원무역 14개 계열사에서 일하는 6만여명의 노동자들은 연간 약 1조원어치 옷과 신발 등을 생산한다. 이는 영원무역 그룹 전체 매출의 절반이 넘는다. 인건비와 재료비 등을 다 빼고서 영원무역은 지난해 2000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장사를 해서 돈을 얼마나 잘 버는지 보여주는 지표를 영업이익률(영업이익/매출)이라 하는데, 영원무역의 영업이익률은 15%가 넘는다. ‘방글라데시의 삼성전자’로도 불리는 영원무역은 지난해 삼성전자의 영업이익률(13%)을 넘어섰다. 물건을 만들어 팔았을 때 남는 게 많지 않은(부가가치가 낮은) 탓에 후진국형 산업으로 불리기도 하는 의류산업에서 글로벌 브랜드의 하청업체가 장사를 해서 이익을 내는 솜씨가 세계적인 첨단 정보기술(IT) 기업보다 나은 셈이다.
영원무역은 주생산기지인 방글라데시 공장에서 10여명의 사상자가 나온 사건에도 불구하고 지난 1~3월(1분기) 깜짝실적을 거뒀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매출은 31%, 영업이익은 18%나 뛰었다. 방글라데시에서 올해부터 시행된 최저임금 인상도 영원무역의 성장에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은 것이다. 2010년 치타공수출가공공단(CEPZ)에서 영원무역 노동자들에 대한 테러와 이튿날 대규모 시위가 벌어진 뒤에도, 이 회사의 실적이나 주가는 꾸준히 상승세를 타왔다.
방글라데시에서 더 유명한 영원무역은 이제 한국에서도 점차 친숙한 기업이 돼가고 있다. 서울 지하철 5호선과 6호선이 교차하는 공덕역에 가면 지하 이동통로 벽에 ‘영원’ 광고판이 붙어 있다. 영원무역이 국내 판권을 갖고 있는 노스페이스의 광고모델은 배우 공효진, 이연희다. 영원무역이 지난해 우리나라 광고시장에 쏟아부은 돈은 215억원이 넘는다. 이는 방글라데시 노동자 약 1만8000여명의 일년치 임금과 맞먹는 액수다. 광고비가 늘어날수록 영원무역은 대중들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갈 것이다. 사실 영원무역은 오랫동안 ‘얼굴 없는 회사’였다. 노스페이스를 만드는 회사로 최근에 조금씩 알려지긴 했으나, 노스페이스란 브랜드의 주인은 미국에 따로 있다.
의류산업 먹이사슬 맨 꼭대기엔
노스페이스 브랜드 소유주 VFc
영원무역보다 더 큰 이익 가져가
미국 동부 노스캐롤라이나주 그린즈버러에 본사를 두고 있는 브이에프시(VFc)는 뭘로 봐도 영원무역 한참 위에 있는 회사다. 브이에프시의 지난해 매출은 109억달러(약 11조원), 영업이익은 1조5000억원에 이른다. 영원무역의 대략 10배 규모다. 상표를 빌려주고서 받는 로열티 수입만도 연간 1조원이 넘는다. 브이에프시의 브랜드는 노스페이스 말고도 리(Lee), 잔스포츠(JANSPORT), 노티카(NAUTICA), 이스트팩(EASTPAK) 등 25개가 넘는다. 이 회사 최고경영자 에릭 와이즈먼은 지난해 146억원의 연봉을 챙겼다. 이 회사는 영원무역에 주문자상표부착 방식으로 노스페이스의 생산을 오랫동안 맡겨왔다.
영원무역은 브이에프시의 하청업체로 글로벌 의류산업 먹이사슬에서 최상위 바로 아래에 있다. 파빈이 영원무역 공장에서 만들던 퓨마(PUMA) 브랜드도 지난해 29억8530만유로(약 4조15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독일에 적을 두고 있는 이 글로벌 브랜드도 영원무역보다 규모가 훨씬 크다. 이 회사는 2600억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거뒀고, 로열티 수입으로만 290억원을 챙겼다. 스페인의 자라(ZARA), 스웨덴의 에이치앤엠(H&M), 미국의 갭(GAP), 일본의 유니클로(UNIQLO) 등 글로벌 유명 브랜드들도 방글라데시 등 세계 곳곳에 영원무역과 같은 하청기업을 두고서 매년 10조~20조원대 매출을 올리고 있다.
방글라데시 다카와 치타공에는 브이에프시 등 영원무역의 글로벌 바이어(구매자)를 위한 아주 특별한 시설이 있다. 수도 다카에서 제2도시 치타공으로 가려면 다카국제공항 바로 옆에 붙어 있는 국내선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야 한다. 비행기의 왼쪽 창가 쪽에 앉으면 이륙한 지 1~2분 새 다카공항이 발아래 놓인다. 그리고 잠시 뒤, 아리랑에어웨이라고 쓰여 있는 커다란 창고 건물 지붕이 한눈에 들어온다. 치타공에서 이 항공사를 찾기란 더 쉽다. 비행기에서 내리면 공항 바로 왼편으로 항공사 건물이 서 있다. 영원무역 계열사인 이 항공사는 비행기 8대를 보유하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온 바이어 등 귀한 손님을 싣고 수도 다카와 영원무역 공장이 있는 치타공 등지를 오가는 것이 비행기의 주요한 임무다. 영원무역은 “비행기는 업무용 전세기 사업, 긴급 의료 이송 및 비행학교 운영 등의 목적으로 사용된다”고 밝혔다.
서울시내 한 대형 백화점, 한 층이 노스페이스, 케이투(K2), 코오롱스포츠, 블랙야크, 컬럼비아 등 유명 아웃도어 매장으로 꽉 찼다. 2000년대 들어 아웃도어 의류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백화점 의류코너도 그에 맞춰 변했다. 국내 아웃도어 시장은 7조원 규모가 넘는다. 시련이 없지 않았지만, 노스페이스는 꾸준히 1위를 지켜왔다. 순위에 걸맞게 노스페이스의 매장이 백화점 아웃도어 가운데 가장 넓어 보였다.
“어서 오세요.” 매장에 들어서자 점장과 ‘첫째’, ‘둘째’로 불리는 점원이 달려와 반갑게 손님을 맞았다. 점장(샵마스터)은 영원무역 자회사인 골드윈코리아(현 영원아웃도어)에 입사했다가 몇년 전 개인사업자로 전환했다. 점장 밑의 점원은 보통 오래 근무한 순서대로 첫째, 둘째로 통한다. 점장은 점원의 급여를 말하길 꺼렸다. 시급을 7000원가량 준다고 눙치면서 입을 닫았다. 매장을 관리하는 백화점 쪽에서는 점원의 급여에 신경쓰지 않는다. 점원은 근로계약서조차 없이 구두계약으로 고용되는 경우도 많다. 백화점 한 관리자는 “오래 근무한 점원이라야 200만원가량 받는다”고 귀띔했다. 대개 최저임금(시간당 5210원)을 겨우 넘는 수준이다.
‘첫째’ 점원이 다가와서 손님의 시선이 잠시 머무는 곳에 놓인 제품을 능수능란하게 설명했다. 방글라데시, 베트남, 중국 등지에서 생산한 재킷과 신발, 배낭, 모자 등이 화려하게 전시돼 있는데, 재킷은 보통 수십만원대다. 가장 비싼 다운점퍼는 60만원을 웃돈다. 주고객은 30~40대 여성이다. 고객이 가장 민감해하는 것은 원산지다. 점장은 “원산지가 한국이라고 하면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방글라데시나 중국, 베트남이라고 하면 ‘품질이 떨어진다’고 생각하고 못미더워한다”고 말했다. 소비자는 제품의 품질 때문에 원산지를 물을 뿐, 브랜드에 숨겨진 얘기를 묻지는 않는다. <끝>
다카·치타공·서울/류이근 유신재 기자
ryuyige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