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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최태원 회장, 총수 아닌 이사회 의장 역할 고민을”

등록 2016-01-18 20:52수정 2016-01-18 21:50

최태원 에스케이(SK)그룹 회장이 지난해 10월 제주에서 열린 최고경영자(CEO) 세미나에 참석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날 최 회장은 “내가 없을 수도 있음을 감안해달라”며 시스템 경영을 강조했다.  에스케이 제공
최태원 에스케이(SK)그룹 회장이 지난해 10월 제주에서 열린 최고경영자(CEO) 세미나에 참석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날 최 회장은 “내가 없을 수도 있음을 감안해달라”며 시스템 경영을 강조했다. 에스케이 제공
‘오너 리스크’에 흔들리는 SK ③
한국 사회에서 재벌 문제는 흔히 ‘황제 경영’이란 말로 요약된다. 황제처럼 전권을 휘두르는 총수의 결정에 수만~수십만 구성원들의 일자리가 달려 있고 국가 경제도 휘청거릴 수 있다는 것이다. 언론을 통한 ‘사생활 고백’으로 파문을 일으킨 최태원 에스케이(SK)그룹 회장의 리더십과 경영 스타일은 여느 재벌 총수들의 그것과는 다르다는 평을 받는다. 독단적인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지만 전형적인 ‘오너 리스크’와는 또다른 위험 요소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평소 “내가 없을 때 대비 경영하라”
그룹 경영철학은 ‘따로 또 같이’
‘황제경영’ 총수들과는 다른 면모
흐릿한 상벌원칙·비선 경영 등
또다른 경영 위험 요소에 노출

의사결정자형인 총수보다는
조정자인 ‘이사회 의장’ 대안될수도

수십년 동안 재벌 문제에 천착해온 김상조 한성대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는 18일 “재벌의 오너 리스크라고 하면 총수의 독단이나 욕심이 핵심인데, 최 회장의 경우는 다르다. 수뇌부 회의의 결정을 존중하고 자율성을 강조하는 스타일이다. 사회적 기업에 관한 꾸준한 관심이나 지원도 평가해줄 만한 대목이다. 다만 이런 스타일이 언제나 좋은 결과만 가져오는 것은 아니란 게 문제”라고 짚었다.

지난해 11월에는 엠비에이(MBA) 학생들과 만나 대화를 나눴다. 에스케이 제공
지난해 11월에는 엠비에이(MBA) 학생들과 만나 대화를 나눴다. 에스케이 제공
전형적인 재벌 총수와 거리가 있다는 것은 새로운 총수 모델을 실험해볼 수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이는 최 회장 스스로 고민하고 있는 바와도 연결된다. 계열사들의 자율 경영 속 협업을 뜻하는 ‘따로 또 같이’라는 에스케이의 경영 철학은 모든 것을 총수가 결정하고 책임지는 재벌 시스템에 대한 고민의 산물이다.

지난해 10월 제주에서 열린 ‘최고경영자(CEO) 세미나’에서 최 회장은 “내가 언제까지 이 자리에 있겠나. 언제든 내가 없을 수도 있음을 감안해 경영에 임해 달라”며 “(회장 취임 10년째였던) 2008년에 회장 자리를 그만뒀어야 했는지 모른다. 앞으로도 언제 자리를 비우게 될지 모르니, 그에 대비한 경영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한겨레> 2015년 11월24일치 21면) 모든 것을 혼자 고민해 결정하고 책임을 져야 하는 ‘총수 중심주의’에 회의적임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다. 김상조 교수는 “(최 회장의 경우) 의사결정자형 총수보다는 조정자 역할을 하는 이사회 의장이 대안일 수도 있다”고 제안했다.

■‘상벌 원칙’ 약한 대신 ‘수평적 리더십’

올해 초에는 사회적 기업을 찾아 봉사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에스케이 제공
올해 초에는 사회적 기업을 찾아 봉사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에스케이 제공
최 회장은 재벌 총수들 가운데서는 상대적으로 독단적 리더십과는 거리가 있지만, 상벌 원칙이 약하다는 게 약점으로 꼽힌다. 에스케이의 아킬레스건이라고 할 수 있는 해외 사업 실패 건이 대표적이다. 그룹의 한 관계자는 “몇년 전 주요 계열사의 이사회에서 일부 사외이사들이 해외 사업 실패에 따른 문책 인사가 왜 없냐고 문제를 제기했는데, 최 회장이 ‘실패도 자산이다’라며 되레 감싸안은 일이 있었다”고 전했다. 실패를 거름 삼아 성공이란 열매가 맺히겠지만, 거름만 넘쳐나는 상황에서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최근 수뇌부 인사에서도 잦은 손실 탓에 ‘마이너스의 손’으로 불리는 ㅅ 사장 등 실적이 좋지 않은 계열사 대표들이 대거 유임되자, 직원들 사이에서는 “과가 엉망이어도 회장님과 가까워서”라는 냉소적인 반응이 퍼지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그룹 안팎에서는 미국 통신업체 힐리오 등 최 회장이 직접 추진을 지시한 신사업들이 실패한 경우가 많아 다른 이의 책임을 추궁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최 회장 구속을 불러왔던 횡령·배임 수사·재판에 책임이 큰 ‘법무 라인’의 유임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된다.

사회책임투자(SRI) 전문 리서치 업체인 서스틴베스트 류영재 대표는 “최 회장은 카리스마적인 리더십과는 거리가 있다. 오랫동안 창업자인 아버지 밑에서 경영수업을 받고 회장에 취임한 이건희 회장이나 정몽구 회장과 달리 선대 회장의 유고로 갑자기 회장에 취임한 것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재벌닷컴 정선섭 대표도 “최 회장은 성격이 유하고 카리스마가 부족해 사업적으로도 딱딱 끊지를 못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번 ‘편지 사건’에서 최 회장은 자신의 뜻(이혼)을 공조직(그룹 수뇌부)이 반대하자 억지로 밀어붙이는 대신 사적인 측근들을 통해 ‘작업’(편지 공개)에 나섰다. 결국 진중함이 부족한 처신, 온정적인 인사, 비선 의존 등이 최 회장과 에스케이그룹을 흔드는 위험 요소인 셈이다.

■총수보다 이사회 의장 같은 새 모델을

과거 에스케이그룹에서 꽤 오랫동안 근무했던 한 관계자는 “최 회장은 소탈하고 의외로 똑똑하다. 논리적인데다 책도 많이 읽고, 관심있는 분야에 대한 토론도 좋아한다. 시야도 트여 있어 윗세대 오너들과는 확실히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단점은 귀가 얇다는 점이다”라고 전했다. 그는 “겉보기와 달리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많고 인간적이기도 하다. 재벌 총수보다는 교수를 했으면 맞았을 사람”이라고 평했다.

최 회장의 ‘덜 재벌스러운’ 면모는 2007년 방북 때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노무현 전 대통령과 정몽구 현대차 회장, 구본무 엘지 회장 등의 사진을 찍어줘 화제가 된 사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최근 ‘외부 측근’ 발탁 논란을 일으켰던 은진혁 전 인텔코리아 사장 영입도 문제가 제기되자 바로 영입을 취소했는데, 이 또한 재벌 총수에게서 기대하기 힘든 전향적인 결정이라는 평가를 받는다.(<한겨레> 1월16일치 9면)

에스케이그룹은 주요 재벌 가운데 유일하게 총수 자녀들에 대한 지분 상속 작업이 진행되지 않고 있다. 그룹 창업자인 고 최종건 전 회장(최 회장의 큰아버지) 쪽 사촌들과 교통정리 문제가 있다지만, 형제·조카들과 싸움도 마다하지 않고 오직 ‘나와 내 아들’의 지배권 구축에만 몰두하는 대다수 재벌의 경우와 다른 게 사실이다. 에스케이그룹의 한 고위 임원은 “최 회장이 지분 상속은 몰라도, 경영권(총수 자리) 승계는 정상적인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김상조 교수는 “에스케이가 ‘따로 또 같이’ 경영을 10년 넘게 추진해왔는데, 좀 더 시스템화하면서 심화시키는 게 필요해 보인다. 최 회장이 결단을 내리고 책임을 져야 하는 ‘의사결정자’인 총수보다, 지주회사 이사회 의장으로서 조직 내외부를 조율·조정하는 ‘코디네이터’를 지향해보는 게 한가지 방법 같다”고 말했다. 이른바 ‘편지 사건’으로 불거진 ‘총수 최태원’의 위기는 ‘전략적 대주주 최태원’에게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끝>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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