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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쓸모없는 사람은 없다…타임뱅크에 봉사 저축해 나눠쓰자”

등록 2018-11-11 17:30수정 2018-11-19 21:21

[짬] ‘시간은행’ 창안자 에드거 칸 교수

타임뱅크 창안자 에드거 칸 미국 유디시(U.D.C) 법대 교수.  사진 이봉현 연구위원
타임뱅크 창안자 에드거 칸 미국 유디시(U.D.C) 법대 교수. 사진 이봉현 연구위원
포크송 가수 짐 크로치는 <타임 인 어 보틀>에서 “시간을 병 속에 보관할 수 있다면…하루하루를 보물같이 모아서 당신과 시간을 보낼 거야”라고 노래했다. 시간을 병 속에 보관할 수는 없지만 은행에 저축할 수는 있다. 에드거 칸(82) 미국 유디시(U.D.C) 법대 교수가 창안한 ‘시간은행’(타임뱅크)이 그런 모델이다.

타임뱅크는 봉사한 시간을 저축하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때 꺼내 쓰도록 네트워크화한 사회변화 운동이다. 육아, 청소, 환자 이송, 외국어 가르쳐주기 등 지역사회를 위한 어떤 서비스나 물품도 그 지역 타임뱅크에 저축할 수 있다. 혼자 사는 노인의 집을 1시간 동안 청소해 줬으면 그 시간이 1 ‘시간화폐’(타임크래딧)로 적립된다. 이렇게 쌓은 시간 화폐는 나중에 꺼내쓸 수 있다. 타임뱅크 회원 중에 컴퓨터 전문가가 있으면 집의 고장 난 컴퓨터 수리를 맡길 수도 있다. 또 다른 이에게 선물하고, 단체에 기부도 할 수 있다.

칸 교수는 타임뱅크코리아 초청으로 6일 한국에 왔다. 그가 1980년 창안한 타임뱅크는 현재 32개국 500여개의 독립적인 타임뱅크로 성장했다. 뉴욕 타임뱅크는 회원이 3천명이 넘어 연간 5만8천 시간의 시간 화폐 교환이 일어난단다. 한국은 2002년부터 구미의 사랑고리은행이 운영되고 있다.

네트워크 만들어 사회변화 운동
80년 창안 현재 32개 나라 500개
“도움 받는 이들 잠재력에 주목 약해지는 공동체 살리는 기능”

타임뱅크코리아 초청 6일 방한

타임뱅크의 취지는 칸 박사의 책 제목 <이제 쓸모없는 사람은 없다>(아르케)에 함축돼 있다. 그는 8일 인터뷰에서 “사람은 이력서에 나타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은 특별하다는 것”이라고 했다. 즉 주는 사람은 늘 주고, 받는 사람은 일방적으로 받기만 해선 안된다고 본다. 누구나 잘하는 일이 있고 남을 위해 뭔가 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럴 수 있어야 받는 이의 자존감도 상하지 않고, 의존성도 줄어든다는 것이다.

타임뱅크에서는 노동의 존귀와 경중을 따지지 않는다. 의사가 1시간 진료봉사를 해도 1 시간화폐이고, 이웃집 아기를 1시간 돌봐줘도 1 시간화폐이다. 이런 타임뱅크 모델은 자원봉사 활성화를 이끌 수도 있다. 봉사하려는 사람과 필요한 사람을 전용 프로그램을 통해 실시간으로 연결하고, 주고받도록 설계해서 좀 더 많은 이들이 쉽게, 그리고 편한 마음으로 자원봉사에 참여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에드거 칸 교수는 7일 생명보험교육문화센터에서 열린 강연에서 “모든 사람은 특별하다” 고 노동의 평등을 강조했다. 사진 이봉현 연구위원
에드거 칸 교수는 7일 생명보험교육문화센터에서 열린 강연에서 “모든 사람은 특별하다” 고 노동의 평등을 강조했다. 사진 이봉현 연구위원
타임뱅크 활동을 하면 가장 크게 달라지는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칸 교수는 “지역사회 전문가들은 보통 고객에게 무엇을 해줄 지에 대해서는 많은 훈련을 받는다. 하지만 도움을 받는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보는 데는 서툴다. 타임뱅크를 하면 회원들의 그런 잠재력을 보는 훈련을 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는 타임뱅크가 잘되려면 목적과 사명을 분명히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사람들이 서로 도와야 할 이유를 알려준다. 아울러 타임뱅크를 조직하고 회원을 훈련하는 코디네이터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들을 유급으로 고용할 재원마련 방안이 있어야 한다.”

타임뱅크 모델의 장점은 약해져 가는 공동체를 되살리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가정, 지역사회, 시민사회는 아이를 키우고, 시민으로서 잘 투표하게 하는 중요한 단위이지만 돈이 매개되지 않기에 제대로 평가되지도 측정되지 않았다. 타임뱅크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고, 교환될 수 있게 하면서 협력, 호혜, 신뢰의 정신을 키워 나가도록 돕는다. 7일 서울 생명보험교육문화센터에서 열린 칸 교수의 강연을 들으러 온 김미연(50·광진구 자양동)씨는 공동체 주거를 조직하려 준비 중이라고 했다. 그는 “동네에서 돌봄서비스를 받는 노인들은 ‘비록 내가 나이가 많지만 뭐든 보답할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도움을 받을 때 미안하지 않은 게 좋은데 타임뱅크는 그런 모델인 것 같다”고 말했다.

타임뱅크의 원리는 봉사를 ‘선물경제’에서 ‘교환경제’로 이동시키는 것처럼 보인다. ‘교환은 봉사하는 이의 진심을 변질시키지 않을까’하는 의문에 칸 교수는 답한다. “선물경제의 핵심은 호혜성이다. 일방적으로 주고, 일방적으로 받는 관계는 아니다. 그래서 타임뱅크는 호혜성의 정신을 그대로 보존한다. 대신 물물교환이 가진 일회성, 몰관계성, 시장가치에 기반을 둔 가치평가를 거부한다. 타임뱅크가 노동을 차별하지 않는 이유이다. 이렇게 보면 타임뱅크는 오히려 선물경제의 정신을 강화한 것이다.”

칸 교수는 “인공지능과 로봇 등의 발달로 전통적 가치와 충돌이 일어나고 노동에 대한 정의가 다시 내려져야 할 때가 왔다. 미국은 잘 하고 있지 못하나 한국은 사회에 기여하는 노동은 (비록 화폐적 가치로 평가되지 않아도) 이를 노동으로 인정하는 길을 가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b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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