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성 ㅣ 산업부장
2009년 1월 중순. 이명박 대통령은 청와대와 내각의 경제팀을 다시 꾸렸다. 기획재정부 장관은 엠비(MB)노믹스를 설계한 강만수에서 대표적 금융 관료인 윤증현으로, 금융위원회 위원장은 학자 색깔이 짙은 전광우에서 금융 분야 경험이 많은 정통 관료 진동수로 바뀌었다. 예산과 기획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박병원이 맡던 대통령실 경제수석비서관 자리는 재무부에서 공직 첫발을 뗀 윤진식이 이어받았다. 집권 2년차 국정개혁의 고삐를 바짝 죈다는 명분이었지만, 메시지는 분명했다. 사흘 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08년 4분기 성장률(전기 대비)은 -3.3%였다. 글로벌 금융위기 한파의 한복판에서 자칭 ‘경제를 아는 대통령’은 설계자가 아닌 현장감독을 원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와 싸우는 2020년 봄. 문재인 정부 3년의 세월이 흘렀다. 경제팀의 무게 추는 3년 내내 예산 관료 쪽으로 기울었다. 경제부총리를 겸하는 기획재정부 장관은 두 명의 ‘예산통’(김동연·홍남기)이 이어가는 중이다. 금융 관료를 뭉뚱그려 일컫는 ‘모피아’를, 대통령과 정권 핵심 인사들이 딱히 싫어해서라 단정하긴 어렵다. 굳이 따지자면 변동성 강한 금융이나 거시경제엔 상대적으로 무관심했거나 심지어 무지했다고 할까. 예산 관료를 앞세우되, 개혁 성향의 학자들(장하성·김수현·김상조)이 청와대 정책실장을 맡아 정권의 핵심 추진과제를 챙긴다면 무리 없이 성과를 낼 수 있으리라 판단했을 거다. 명시적으로 의도하진 않았다 해도, 모종의 ‘반(反)모피아 연대’ 정서가 작동한 셈이다.
지난 3년을 되돌아보면, ‘연대’가 썩 성공적이지는 않은 듯하다. 내 편인 줄 알았던(!) 곳간지기는 번번이 제 목소리를 냈고, 그때마다 야당과 보수 언론은 연대의 틈을 노골적으로 벌리며 정권 공격의 소재로 삼았다. 부총리(김동연)와 정책실장(장하성)을 맞세운 2018년 여름의 ‘김앤장 갈등설’이 대표적이다. 최근 코로나19 긴급재난지원금 방안을 확정하는 과정도 매끄럽지 않긴 마찬가지다. 지난달 28일 국무회의에서 문 대통령이 비상경제중앙대책본부(경제중대본)의 사령탑은 홍남기 부총리라고 못박았음에도, 발언의 의미와 배경을 두고선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
코로나19 사태와 같은 미증유의 위기 상황에선 재정당국의 전향적 자세가 절실하다. 재정 부담과 다소간의 경기 과열을 감수하고라도 강력한 확장적 재정정책이 시급한 상황이라는 게 국내외 대부분 경제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현재 재정당국이 보이는 고루한 태도가 실망스러운 이유다. 다만 때마침 사흘 뒤면 집권 3주년이니만큼 청와대의 3년 행보도 긴 호흡으로 복기해볼 필요는 있다. 정책 성과가 제때 나오지 않은 이유를 온전히 완고한 예산 관료의 몽니 부리기 탓으로만 돌릴 순 없어서다. 비극의 씨앗은 ‘나는 머리를 쓸 테니 너는 돈이나 마련하라’는 모호하고 순진한 ‘반모피아 연대’ 정서에서 이미 싹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2013년 3월 시작된 우리 경제의 경기확장 국면(제11순환)은 2017년 9월 끝이 났다. 경기가 이미 수축 국면에 접어들었으니 2018년부터 본격화한 최저임금 인상 효과가 기대에 못 미친 건 당연했다. 게다가 청와대는 내수 진작을 위해 확장적 거시정책을 편다고 거듭 확신했지만, 정작 3년 내리 막대한 초과 세수를 거둬 외려 긴축정책을 편 꼴이 돼버리지 않았나. 거시경제와 금융시장 동향, 예산을 한눈에 조망하지 못한 뼈아픈 실책이다.
21대 총선 뒤 여당 일각에서 운을 뗀 전 국민 고용보험만 해도 그렇다. 가치와 의의는 백번 공감할 수 있으나, 국민연금도 건강보험도 도입했으니 전 국민 고용보험도 할 수 있다 식의 단순 논리는 피하는 게 옳다. 국민연금 도입 확정(1986년 말), 고용보험법 제정(1995년 말)이 각각 우리 경제 제4순환, 제6순환의 확장기에 이뤄진 사실까지도 함께 고민하고 촘촘한 설득 논리의 그물을 엮지 못한다면 비판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기 십상이다.
2020년 봄. 다시 위기다. 아니, 더 큰 위기란다. 짓고 싶은 집을 그리면 설계도가 되지만 세밀한 작업 공정표가 없다면 집은 완성되지 않는다. 위기가 닥칠 때마다 관료 집단 이편저편을 허둥대며 오가던 과거 정부의 사례는 차고 넘친다. 문재인 정부의 남은 2년만은 달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