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씨지브이(CGV) 영화관의 모습. 연합뉴스
모회사가 자회사 유상증자에 참여하기로 했다. 재무적으로 어려운 자회사를 돕기로 한 것이다. 이런 경우 모회사 주가는 대개 하락한다. 그런데 지원을 받는 자회사 주가가 모회사보다 더 큰 폭으로 연일 급락한다. 왜 그럴까?
지난 6월20일 씨제이(CJ)그룹 지주회사인 씨제이는 자회사 씨제이씨지브이(CJ CGV)의 유상증자에 참여한다고 밝혔다. 이날 이후 두 회사 모두 5거래일 연속 주가가 하락했다. 특히 씨지브이는 유상증자 공시 다음날 주가가 21% 급락하는 등 5거래일 동안 주가 하락폭이 30%에 이르렀다.
씨지브이는 주주 배정 방식으로 5700억원 유상증자를 하겠다고 공시했다. 대주주 씨제이의 지분율 48.5%를 고려하면 2700억원가량을 책임져야 한다. 그런데 씨제이는 600억원의 현금만 출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결국 나머지는 일반 주주의 몫으로 넘긴 셈이 되었다. 씨제이는 대신 씨지브이가 실시하는 후속 유상증자에 4500억원으로 평가되는 씨제이올리브네트웍스 지분 100%를 현물 출자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 투자자는 “씨제이는 이 유상증자를 묘수라고 생각하겠지만 투자자가 보기에는 꼼수”라고 말한다.
주주들이 분노하는 지점이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시장이 바라보는 시각은 주가 흐름에서 단적으로 드러났다. 우선 유상증자 규모가 너무 크다. 씨지브이의 현재 총 발행주식 수는 4772만여주다. 현금증자로 발행 예정인 주식 수는 7470만주로, 기존 발행주식 수의 1.5배 수준이다. 씨지브이가 현물 출자분에 대해 발행해야 할 주식 수는 향후 주가 흐름에 달려 있는데, 현재 주가 수준인 9700원을 적용해보면 4640만주나 된다. 결과적으로 두번의 유상증자를 거치면 발행주식 수가 기존의 2.5배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일반적으로 유상증자가 주가에 악재로 작용하는 이유는 발행주식 수 증가에 따른 주당순이익(EPS) 등 주당 지표 하락 때문이다. 이를 주주가치 희석이라고 표현한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유상증자 기업에 대해 목표 주가를 하향 조정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주주가치 희석 효과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씨제이는 1조200억원 규모 유상증자에서 현금과 현물로 5100억원을 투입하는 것이니 대주주로서 책임을 다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듯하다. 반면 주주들은 회사에 가장 필요한 현금 투입은 회피하면서 지배력 유지를 위해 현물 출자를 동원한 것 아니냐는 시각으로 본다.
대주주가 현금 투입을 최소화하면서 비상장 주식을 현물 출자하는 경우 지분가치 평가 논란이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씨제이올리브네트웍스 지분평가액 4500억원에 대한 타당성 논란이 일고 있는 이유다. 비상장기업 가치평가는 일반적으로 디시에프(DCF·현금흐름할인법)를 사용한다. 미래 현금흐름을 추정하려면 많은 회계적 가정과 전제를 깔아야 하기 때문에, 디시에프 평가는 종종 큰 논란을 낳는다. 평가 의뢰 기업의 입맛에 맞게끔 평가자가 숫자를 만들어낸다는 의혹에 휩싸이기도 한다. 이번 대규모 유상증자는 씨지브이의 미래를 결정할 영화관 산업 미래에 대한 우려를 더 확대시킨 측면도 있어 보인다.
☞한겨레S 뉴스레터를 구독해주세요. 클릭하시면 에스레터 신청 페이지로 연결됩니다.
☞한겨레신문을 정기구독해주세요. 클릭하시면 정기구독 신청 페이지로 연결됩니다.
증권업계는 이번 일을 계기로 유상증자 기업에 대한 투자자의 거부감으로 기업들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지 않을까 우려하는 모습이다. 과거 대우조선해양(현재 한화오션) 사례처럼 유상증자에 대한 오해가 과도한 주가 급락으로 이어지는 일이 잦아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지난 6월12일 한화오션의 시가총액은 3조2294억원이었다. 이튿날 시총은 5조9390억원으로 급증했다. 어떻게 단 하루 만에 시총이 84%나 증가할 수 있었을까? 유상증자 신주가 이날 증시에 상장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당시 대우조선해양은 한화그룹 계열사들을 대상으로 유상증자를 한다고 공시했다. 대주주인 산업은행이 경영권을 한화그룹에 넘기기로 결정했고, 이를 위해 대우조선해양이 제3자 배정 방식 유상증자 진행에 나선 것이었다.
한화그룹으로 인수된다는 소식이 알려진 날 주가는 반짝 올랐지만 다음날부터 하락세를 탔다. 유상증자 예정 신주(약 1억440만주)가 기존 발행주식 수(약 1억730만주)와 맞먹을 정도로 크기 때문에, 이에 따른 부담으로 해석됐다. 몇몇 주주 토론방에는 “주가 반 토막이 예정돼 있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주식을 팔아야 한다”는 글이 확산되기도 했다. 반 토막의 논리는 간단했다. 시총은 그대로인데 유상증자로 발행주식 수가 2배가 되므로 주당 가치가 그만큼 하락한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시총은 그대로’라는 기본 전제부터 틀렸다. 예를 들어보자. ㄱ사 발행주식은 100주이고 주가는 1만원이다. 제3자에게 100주를 1만원에 발행하는 유상증자를 했다. 회사 주가가 1만원이 그대로 유지된다고 가정하면 시총은 증자 전 100만원(100주×1만원)에서 증자 뒤 200만원(200주×1만원)이 된다. 유상증자 주식 수만큼 시총은 증가한다. 따라서 시총 변화 없이 주식 수만 2배가 돼 주가는 반 토막이 될 것이라는 논리 그 자체는 틀렸다.
일부에서는 유상증자 ‘권리락’(증자·배당 절차에서 투자 시점 때문에 권리를 잃게 되는 일)이 실시되면 주가가 급락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권리락은 주주 배정 방식의 유상증자에서 적용하지만, 대우조선해양 같은 3자 배정 유상증자에 적용하지는 않는다.
ㄱ사(발행주식 수 100주, 주가 1만원)가 주주 배정으로 유상증자(100주)를 한다고 해보자. 주주 배정 시 발행 가격은 일반적으로 시세 대비 20~30% 할인율을 적용한다. ㄱ사는 20% 할인한 8000원으로 100주를 발행해 주주들에게 배정할 예정이다.
ㄱ사의 시총은 유상증자 전 100만원(1만원×100주)에서 유상증자 뒤 80만원(8000원×100주) 증가해 180만원이 될 예정이다. 이를 발행주식 수 200주로 나누면 주당 9000원의 가치가 된다. 한국거래소는 이렇게 유상신주 규모와 발행예정 가격 등을 고려해 ㄱ사 주가 기준을 9000원으로 낮춘다. 신주가 할인 발행되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기업의 주식 가격을 조정한 뒤, 주가의 새로운 출발점으로 삼는 것이다. 이렇게 산출된 9000원을 ‘권리락 기준가격’이라고 한다.
주주 배정에서는 기존 주주들이 가진 주식 수에 비례해 신주를 배정받기 때문에 기준가격 조정이 필요하지만, 3자 배정은 그럴 필요가 없다. 무엇보다 가장 큰 오해는 유상증자 전후 시총에 변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ㄱ사 시총 100만원과 주식 수 200주를 적용해 주당 가치를 5000원으로 산출하는 게 오류다.
경제이슈분석 미디어 ‘코리아모니터’ 대표
<기업공시완전정복> <이것이 실전회계다> <하마터면 회계를 모르고 일할 뻔했다> <1일 3분 1회계> <1일 3분 1공시> 등을 저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