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파이낸싱(PF) 차환 발행에 실패해 공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 현장 모습. 연합뉴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기설이 확산하고 있다. 지방의 중소·중견 건설사 여러곳은 이미 부도가 났다. 최근에는 시공 능력 20위권 상장기업인 태영건설 워크아웃·부도설이 증권시장에 퍼지기도 했다. 회사는 즉각 부인했지만 건설업 담당 애널리스트들은 특단의 대책 마련을 주문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는 피에프 사업장에 대한 옥석 가리기로 ‘질서 있는 정리’를 해나가면 연착륙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위기를 말할 정도는 아니라는 진단이다.
부동산 사업의 주체를 보면, 기획과 개발에서부터 시공과 준공까지 공사 전 과정을 관리하는 ‘시행사’와 시행사로부터 발주받아 건설을 하는 시공사로 나뉜다. 시행사는 개발비용 대부분을 금융회사로부터 빌리는데, 이를 프로젝트파이낸싱, 피에프라고 한다. 말 그대로 금융회사는 프로젝트(사업)의 수익성과 미래 현금흐름을 따져보고 자금을 제공한다.
피에프는 단계별로 브리지론과 본피에프로 나뉜다. 브리지론은 사업 초기에 땅 살 돈을 빌리는 단기대출이라고 할 수 있다. 위험성만큼이나 금리도 높아 대략 10~15%에 이른다. 브리지론 단계에서 자금을 공급하는 주체는 주로 저축은행·증권사·캐피탈 등 제2금융권이다. 시행사는 이 돈으로 땅을 사서 인허가를 받으면 이자가 조금 더 낮은 대출로 갈아타는데 이를 본피에프라고 한다. 본피에프 자금은 브리지론 상환과 공사 대금 등으로 쓰인다. 시행사는 대체로 규모가 작고 신용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건설사(시공사)가 브리지론과 본피에프에 대해 여러가지 형태의 보증을 선다. 건설사가 직접 시행 주체가 되어 피에프 대출을 받는 경우도 있다.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대부분 브리지론이다. 본피에프에 들어서면 일단 건물을 올린 다음 할인 분양을 해서라도 자금 회수를 추진할 수 있다. 그런데 사업 진척이 안 돼 브리지론 단계에 멈춰 있으면 만기 압박과 금융비용 증가에 시달리게 된다.
금융회사들이 본피에프 대출을 꺼리는 이유는 부동산 시장 침체 때문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10월 말 기준 전국 미분양 주택 수는 5만8299가구에 이른다. 올해 정점을 기록한 2월(7만5438가구)에 견줘 23%가량 감소하긴 했지만 악성물량으로 불리는 ‘준공 후 미분양’(1만224가구)은 32개월 만에 1만가구를 넘기는 등 증가세를 보였다.
금융회사들은 최근 몇년 동안 시행사와 건설사들이 굉장히 비싼 값에 땅을 샀다고 본다. 부동산 호황이 지속되리라고 예상한 것이다. 비싸게 매입한 땅, 급등한 건설자재비, 분양 부진 등으로 사업 수익성 악화가 빤히 보이는데 금융회사들이 적극적으로 대출에 나설 리가 없다.
브리지론은 만기를 연장하면 금리가 훌쩍 뛴다. 최근 어지간한 사업장의 연장 금리는 20%를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금리 부담이 장기화할수록 시행사는 견디기 어려워진다. 만기 연장에 실패하면 사업 부지는 경매나 공매로 넘어간다. 땅값의 60% 선에서 낙찰된다고 보면 중순위와 후순위 대출자들은 투자금 회수를 못 하게 되고, 보증을 선 건설사가 대출금을 상환해야 한다. 본피에프 단계에서 시행사가 쓰러지면 건설사가 책임지고 건물을 준공해 분양에 나설 수도 있다. 하지만 브리지론에서는 그럴 수도 없다.
일반적으로 부동산 시장이 좋을 때는 본피에프로 넘어가는 데 3~6개월 정도가 걸린다. 그런데 신용평가사들에 따르면 최근 1년 동안 브리지론에서 본피에프로 전환한 사례를 찾기가 힘들다. 이혁준 나이스신용평가 금융평가본부장은 “고금리 상황이 장기화하면 브리지론 30조원 가운데 30~50%는 손실로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신용평가가 지난 11월에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건설사의 피에프 보증 규모는 2021년 말 21조9000억원에서 2022년 말에는 26조원, 올해 9월 말 기준으로는 28조원까지 늘었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태영건설의 경우 자기자본 대비 피에프 보증규모가 370%에 이른다. 다른 대형사(30~100% 안팎) 대비 압도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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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빌려준 금융권 상황은 어떨까. 금융위원회에서 최근 발표한 부동산 피에프 대출 현황(9월 말 기준)에 따르면 금융권의 대출 잔액은 134조3000억원, 연체율은 2.42% 수준이다. 3개월 전의 2.17%보다 높아졌다. 2022년 말의 1.19%에 견줘보면 상승 폭이 두드러진다. 증권사 연체율은 13.8%이고 저축은행도 5.5%로 꽤 높은 상황이다. 증권사나 저축은행이 유독 높은 연체율을 보이는 이유는 브리지론 대출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이들은 시공사처럼 보증을 서준 경우도 많았다. 전문가들은 실제 연체율은 이보다 더 높을 것으로 본다. 올 상반기 정부가 부동산 피에프 대책 시행에 나서면서 대주단이 만기 연장 또는 이자 유예를 실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환이 어려워 만기를 연장해줬다면 사실상 연체로 봐야 하지만 집계에는 빠져 있다.
나이스신용평가 이 본부장은 “금융권이 피에프 때문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질 가능성은 낮다”고 전망했다. 그는 그러나 “증권사·저축은행·캐피탈사 등은 피에프에서 중순위나 후순위로 대출을 내준 경우가 많기 때문에 우려스러운 것이 사실”이라며 “특히 모회사로부터 유상증자 등의 지원을 받기 어려운 중소 금융사는 위기에 취약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피에프발 경제위기 트리거가 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지목된 태영건설에 대해 시장에서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내리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지난 19일 ‘태영건설 현황점검’ 보고서에서 “에스오시(SOC) 보증을 제외한 태영건설의 순수 부동산 개발 피에프 보증 잔액은 3조2000억원”이라며 “이 가운데 상환 재원을 확보하지 못한 채 미착공 상태로 남아 있는 사업장이 절반에 이른다”고 분석했다.
미착공 현장의 45%가 지방에 있으며, 대출 연장 없이 사업을 마감할 경우 태영건설이 이행해야 할 보증액은 7200억원이라고 평가했다. 태영건설은 단기 유동성이 부족(9월 말 기준 순 차입금 1조9300억원)하고 부채 비율(478%) 또한 시공 능력 35위 내 주요 건설사 중 가장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보고서는 “현재로선 태영그룹 지주회사 티와이홀딩스의 유동성 지원이 유일한 희망”이라며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라 태영건설과 티와이홀딩스의 자구 노력을 지켜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MTN 기업경제센터장
‘기업공시완전정복’ ‘이것이 실전회계다’ ‘하마터면 회계를 모르고 일할 뻔했다’ ‘1일 3분 1회계’ ‘1일 3분 1공시’ 등을 저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