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후 서울 중구 다동 국내 최대 가상(암호)화폐 거래소인 빗썸의 고객선터의 모습.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정부가 13일 가상통화 거래와 관련한 첫 종합 대책을 긴급하게 내놓은 것은 최근 불거진 투기 우려 등에 정부가 속도감 있게 대응하고 있다는 모양새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가상통화 거래소 등 관련 업계나 투자자에 정부의 대응 의지와 방향을 명확히 밝힌다는 의도도 깔려 있다.
이번 긴급 대책에는 발갛게 달아오른 국내 가상통화 시장을 진정시킬 만한 요소가 적지 않게 담겼다. 일단 가상통화 거래소부터 현재처럼 ‘규제 진공’ 상태에서 영업할 수 없게 된다. 빗썸이나 코인원 등 주요 거래소는 당장 내년부터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인증을 받아야 한다. 인증을 받지 못하더라도 물어야 하는 과태료는 3천만원에 그치지만, 거래의 중요한 기반인 ‘신뢰 평판’을 잃을 수 있다. 또 개인정보 유출에 대비한 보안 시스템 구축에도 힘써야 한다. 개인정보 유출이나 고객 재산 도난과 같은 사고가 터질 정도로 취약한 현재의 시스템을 대폭 손질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예고한 ‘약관 직권조사’도 거래소로선 부담이다. 무엇보다 공정위·방송통신위원회·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여러 규제 당국의 동시다발 감시망에 놓이는 점이 거래소로선 부담되는 부분이다. 다만 거래소 운영을 위한 기본 자본금 요건과 같은 조처는 이번 대책엔 담기지 않았다. 가상통화와 거래소를 모두 금융상품이나 금융기관으로 인정하지 않는 정부의 기본 방침 탓에 금융 규제를 동원하지 않은 것이다.
거래에 더 큰 영향을 주는 요소는 은행권의 달라진 태도다. 가상통화 거래소와 계약을 맺고 가상계좌를 투자자에게 제공해온 은행권은 가상통화 시장에 대한 정부의 엄정 대응 방침에 따라 빠르게 몸을 움츠리고 있다. 산업은행은 거래소와 맺은 계약을 재연장하지 않기로 방침을 세웠다. 계약 만기인 오는 18일까지만 가상계좌를 쓸 수 있게 하되 그 뒤부터는 다른 은행을 이용하라는 것이다. 우리은행은 ‘전산시스템 개편’을 빌미로 가상통화 가상계좌 개설에 난색을 보이고 있다. 금융권에선 당분간 엔에이치(NH)농협은행에서만 가상통화 거래용 가상계좌를 발급할 것으로 본다.
정부는 은행권에 가상계좌 발급을 중단하라고 권고하지는 않았다. 그 대신 투자자의 실명계좌와 가상계좌를 일대일로 매칭하는 전산시스템을 구축하라고 요구했다. 시스템이 구축되면 적어도 자금 세탁 등 부정한 목적으로 가상통화 시장에 뛰어들었던 투자 수요는 상당 부분 사라질 수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은행권의 가상계좌 추가 발급 자제 움직임에 대해 “가상통화 시장 과열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가상계좌 공급 영업을 해오던) 은행들로선 평판 관리에 나서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가상통화를 미끼로 내거는 방식으로 자금을 불법 모집하거나 다단계 사기의 도구로 활용한 범죄에 대해선 사법당국이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삼은 것도 합법과 불법의 경계선을 오가는 상당수 투자자나 관련 업자들의 움직임을 위축시키는 데 일정 부분 효과를 낼 것으로 보인다.
이런 ‘효과’와는 달리 정부의 대응책은 여러모로 설익고, 관계 당국자들이 침착성을 잃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이 주재한 이날 회의에는 무려 12명의 부처 차관급 인사들이 참여했다. 가상통화 시장과 거래자 등에 영향을 조금이라도 미칠 수 있는 각 부처가 모조리 참석한 모양새다. 정부는 ‘총력 대응’으로 풀이하지만, 거꾸로 가상통화 거래를 감독할 수 있는 법·제도가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내는 장면이기도 하다. 비제도권에 놓여 있는 가상통화와 시장을 제도권에 적용돼온 법과 제도로 통제하려니 나타난 모습이란 뜻이다.
법무부가 주장해온 전면 거래 금지가 이날 회의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도 그런 방안을 뒷받침할 법적 근거가 너무 부족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정부 한 관계자는 “개인의 재산권을 상대적으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중국이나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사회주의 계열 국가에서만 전면 금지 조처가 취해졌다. 부작용이 크거나 우려된다고 해서 법적 근거가 부족한 과도한 처방은 어렵다는 데 공감대를 이뤘다”고 말했다. 정부는 시장 상황 등을 꾸준히 모니터하며 추가적인 대책이 나올 여지도 열어뒀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이번 긴급 대책은 각 부처간에 이견이 없는 최소한의 내용만 담았다. 시장 과열이 지속되는 등 이상 징후가 이어지게 되면 추가 대책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가상통화 거래소를 운영하려면 고객자산 별도 예치나 가상통화 매도매수 호가·주문량 공개 등을 의무화하는 방안은 물론, 거래차익에 대한 과세에도 나설 수 있다는 뜻이다.
홍기훈 홍익대 교수(경영학)는 “거래 금지까지 얘기가 나오던 상황이라 예상보다는 정부 규제 강도가 적었다. 규제 내용에 따라 크게 바뀔 여지가 없어 시장에 호재일지 악재일지도 판단하기 어렵다”며 “특히 거래소 자본금 기준이나 서버 안정성 문제 등 거래소에 대한 직접적 규제가 없는 점이 의아하다”고 말했다.
이날 국내 거래소에서 비트코인 시세는 민감하게 출렁였다. 코인당 1900만원대에서 안정적으로 움직이던 비트코인 가격은 관계부처 긴급회의가 소집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오전 9시30분께 하락으로 방향을 틀었고 정오 전후로 1800만원이 무너지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정부 대책이 보도되기 직전인 오후 2시부터 급반등하며 1시간 만에 1900만원 선을 회복하기도 했다.
김경락 박수지 정세라 기자, 한광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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