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경제·환경 등 다양한 사회문제에 대응하는 스타트업을 지원해온 국내 첫 소셜벤처전문 임팩트 투자회사 ‘에스오피오오엔지’(sopoong)는 지난해 여름, 하반기 정기투자를 마치면서 예상치 못한 결과와 맞닥뜨렸다. 당시 투자를 지원한 팀의 20%는 여성 창업가팀이었지만, 투자가 결정된 4개팀 가운데 어느 팀에도 경영진에 여성이 없었던 것이다. 이전까지 에스오피오오엔지는 여성 창업가에 대한 투자 비중이 평균 25%는 됐던 탓에 더욱 당황했다. 그리고 질문했다. ‘어떻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스스로에게 반문한 결과, 이들은 그동안 투자결정 과정에서 성평등적 관점을 검토해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실제로 여성 창업가에게 우호적이지 못한 환경은 통계로도 드러난다. 중소기업청의 ‘2016년 창업기업 실태조사’를 보면, 전체 여성 창업가 비율은 40.7%에 이르지만 생계형 개인사업자가 아닌 법인 비율은 12.6%로 떨어진다. 2016년 기준 스타트업 미디어 <플래텀> 조사 결과, 투자를 유치한 국내 스타트업 244곳 가운데 여성 창업 기업은 16곳(6.5%)에 그쳤고, 투자금액도 전체 1조724억원 중 4.1%에 불과했다. 투자를 결정하는 심사역의 여성 비율도 7%에 불과하다. 에스오피오오엔지의 유보미 심사역은 “이 통계들은 여성 창업가들이 투자과정에서 여성에 대한 편견에 쉽게, 자주 노출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요인을 부분적으로 설명한다”고 지적했다.
스타트업이 활성화된 주요 국가 도시와 비교해도 한국의 여성 창업가 비율은 적은 편이다. 한국스타트업생태계포럼이 2016년 발표한 백서를 보면, 서울의 여성 창업가 비율은 9%에 불과했다. 미국 실리콘밸리, 영국 런던, 이스라엘 텔아비브, 싱가포르는 18~24%로 2배 이상 차이가 났다.
에스오피오오엔지는 세계 여성의 날인 8일, 벤처 투자가 여성들에게 불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점에 주목해 ‘젠더 관점 투자’를 전면 도입한다고 밝혔다. ‘여성에게는 리더십이 없다’ ‘남성 창업가가 더 진취적이고 모험적이다’ 등과 같은 고정관념이 실제 투자에 도움이 되지 않는데도 일상적으로 작용해 판단을 흐린다는 취지다. 국내 투자 업계에선 첫 시도다. 정책 분야에서 시행 중인 ‘성별영향분석평가’와 비슷한 접근 방식이다.
이들은 5단계에 걸친 모든 투자 과정에 ‘젠더’ 요소를 추가했다. 서류 심사에선 여성 창업가팀을 서류 지원을 한 여성 비율 이상으로 선발하기로 했다. 사전 액셀러레이팅(창업 소프트웨어 지원) 단계에선 여성 창업가에 대한 젠더편향적인 발언과 판단 등을 배제할 수 있도록 제3자인 ‘젠더 관점 관찰자’를 참석시키기로 했다. 여성의 삶의 질을 높이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준비하는 것도 가점 대상이다. 실사 단계에선 임신·출산 휴가 가이드라인 등의 업무 환경 등을 고려한다. 투자 심의 보고서와 계약서 작성에도 인사 등에서 성평등을 준수한다는 젠더 관점 항목을 추가했다.
이를 적용해 올해 상반기 투자를 심사했더니, 투자가 결정된 기업의 30%가 여성 창업 기업(남성 공동대표 포함)이었다. 지난해 하반기(19.2%)에 견주면 10%포인트 이상 올랐다. 최종 투자 심의에 진출한 팀 중 여성 창업자 비율은 42.9%에 이르렀다. 에스오피오오엔지 쪽은 “국내에서 선례를 찾기 힘든만큼, 임팩트 투자 생태계를 중심으로 젠더 관점의 투자 움직임이 확산되도록 적극적인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런 방침은 기업 내 성평등이 전체의 이익으로 이어진다는 목소리와도 무관하지 않다. 유엔글로벌콤팩트와 유엔여성기구는 ‘여성역량강화원칙’(WEPs)을 토대로 높은 수준의 기업 내 여성 리더십을 구축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기업 지속 가능성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지난해 컨설팅 업체 맥킨지는 미국 내 젠더 다양성 상위 25%에 해당하는 기업의 경우 업계 중간치보다 높은 재무수익을 얻을 확률이 15% 많고, 경영진 내 젠더 다양성이 10% 상승할 때마다 기업 영업 마진이 1.6% 오른다고 발표한 바 있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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