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스페인 바르셀로나 ‘엠더블유시(MWC) 2023’ 전시장 안 샤오미 전시관에서 직원들이 물걸레를 들고 바닥을 청소하고 있다. 바르셀로나/정인선 기자
“아무리 바닥을 깨끗하게 유지하려고 해도 이렇게까지 쓸고 닦을 일일까?”
지난달 27일(현지시각)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개막해 2일 막을 내린 세계 최대 모바일·이동통신 전시회 ‘엠더블유시(MWC) 2023’에서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건 단연 화웨이, 샤오미, 오포 등 중국 기업들이었다. 그런데 중국 기업들 전시관을 찾을 때마다 유독 눈에 띄는 풍경이 몇 있었다. 마네킹처럼 옷을 입고 화장을 한 채 딱딱한 미소를 지으며 일렬종대로 관람객들을 맞이하는 여성들과 더불어, 커다란 물걸레를 들고 다니며 끊임없이 바닥을 닦는 직원들이 곳곳에 배치돼 있다. ‘이렇게까지 깨끗해야 할 일인가?’ 생각이 들 정도로, 일부 직원들이 관람객들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다시피 하며 그들이 남긴 발자국을 실시간으로 지워냈다.
중국 기업들이 바닥 물걸레질에 집착하다시피 할 수밖에 없었을 법도 한 것이, 대부분의 중국 기업들이 전시관을 바닥부터 벽, 천장을 모두 ‘순백색’으로 꾸며놓고 있었다. 빨간색 등 기업 로고에서 따온 다른 색상을 혼용한 곳도 더러 있었지만, 이들 기업 전시관에서 흰색이 차지하는 비중은 실로 압도적이었다. 화웨이를 비롯한 몇몇 기업들은 번쩍번쩍 광이 나는 타일 재질을 바닥재로 쓴 데다 천장에선 흰 빛 조명이 강하게 내리쏘기까지 해, 관람객들이 남기고 간 발자국이 더욱 도드라졌다. 게다가 개막 이튿날인 28일 오전, 야속하게도 바르셀로나 현지에 비가 내린 탓에 관람객들 발자국은 계속해서 ‘새로고침’ 됐고, 이에 따라 중국 기업들의 ‘편집증적인’ 바닥 물걸레질 행렬도 극에 달했다.
지난달 28일 스페인 바르셀로나 ‘엠더블유시(MWC) 2023’ 전시장 안 화웨이 전시관을 찾은 관람객들 모습. 전시관 바닥이 광택 나는 소재의 흰색 타일로 꾸며져 있다. 바르셀로나/EPA연합뉴스
지난달 27일 스페인 바르셀로나 ‘엠더블유시(MWC) 2023’ 전시장 안 오포 전시관에서 한 관람객이 자신의 아이폰으로 오포의 새 접는 폰 ‘파인드엔(N)2 플립’ 기기를 촬영하고 있다. 바르셀로나/EPA연합뉴스
중국 기업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전시관을 새하얗게 꾸민 것을 놓고 현장에선 다양한 분석이 쏟아졌다. ‘애플 모방론’이 그 가운데 하나다. 전시장에서 만난 한 국내 업계 관계자는 “애플·삼성전자 등이 장악한 고급형 스마트폰 시장에 균열을 내는 걸 목표로 새 스마트폰을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중국 기업이 많은 만큼, 애플과 유사한 전략을 취한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애플은 제품을 돋보이도록 하고 방문객들에게 바깥과 구분되는 새로운 공간에 들어섰다는 느낌을 선사하려 오프라인 매장 ‘애플스토어’를 흰색 중심으로 꾸미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올해 엠더블유시에선 많은 중국 기업이 애플의 아이폰14 시리즈, 삼성전자의 갤럭시S23 시리즈 등에 대항할 고급형 스마트폰 신제품을 경쟁적으로
내놓았다. 이에 여러 중국 기업 전시관엔 신제품을 직접 만져 보며 애플, 삼성전자 등의 기존 기기와 비교해 보려는 관람객들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스마트폰 신제품과 흰 전시관 사이 관계에 지나친 의미 부여를 말아야 한다는 반론도 있다. 중국 기업들이 이번 전시회에서 내세우려 한 게 스마트폰이 다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한 중국 기업 관계자는 “스마트폰뿐 아니라 5세대(5G), 6세대(6G) 이동통신 네트워크 장비를 유럽 시장에 알리는 것 또한 중국 기업들이 이번 전시에 참여한 주된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중국 통신사 차이나모바일 전시장 또한 다른 중국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흰색을 주된 테마 삼아 꾸며져 있었지만, 내용 면에선 스마트폰이 아닌 차세대 네트워크 관련 기술 솔루션과 장비 등을 앞세웠다.
지난달 28일 스페인 바르셀로나 ‘엠더블유시(MWC) 2023’ 전시장 안 차이나모바일 전시관 모습. 바르셀로나/정인선 기자
화웨이가 삼성전자 전시관의 다섯 배이자 엠더블유시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인 9천㎡로 전시관을 낸 것처럼, 안 그래도 널따란 전시장 규모를 더욱 넓어 보이게 하려 흰색을 택한 것이라는 ‘몸집 과시론’도 있다. 중국 기업 관계자는 “엠더블유시를 비롯한 많은 전시에서 공정한 경쟁을 위해 조명의 밝기를 지나치게 높이지 못하도록 엄격한 규정을 둔 경우가 많다”며 “같은 조도 아래서라면 흰색 배경일 때에 공간이 더 밝고 넓어보이는 효과가 있다보니 주목도를 높이기 위해 흰색을 썼을 뿐, 다른 의도가 있다는 것은 과한 해석일 수 있다”고 말했다.
바르셀로나/정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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