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레마다. 공개의 역설이라고 할까. 공개하면 사업자들이 조정에 더 응하지 않을 수 있다.”
방송통신위원회 김재철 이용자정책국장이 지난 15일 한국소비자연맹 주최로 열린 ‘5G 서비스 소비자 피해실태 및 이용 활성화를 위한 정책제안 토론회’에서 <한겨레>와 만나 한 말이다. ‘통신분쟁조정 결과를 공개해서 같은 피해를 당한 다른 이용자들이 참고할 수 있게 해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공개의 역설’ 발생 가능성을 들어 공개 계획이 없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이동통신사들이
5세대(5G) 이동통신 서비스 품질 불량에 대한 손배보상 요구 가운데 국민신문고를 통해 받은 것과 방통위 통신분쟁조정센터 조정 결과는 수용하면서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자율분쟁조정위 조정안은 거부하는 행태를 보이는 게 도마에 오르면서 통신분쟁조정센터의 분쟁조정 절차 및 결과 비공개 문제도 거론됐다.
서비스 품질 불량과 요금 등과 관련해 피해를 당한 통신 소비자가 통신사 고객센터에 해결과 보상을 요구했다가 거부당한 경우, 다음 수순으로 국민신문고에 민원 접수, 통신분쟁조정센터에 분쟁조정 신청, 소비자단체를 통해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자율분쟁조정위에 분쟁조정 신청 등을 할 수 있다. 국민신문고에 올린 민원은 주무 부처(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통해 해당 통신사에 통보된다. 통신분쟁조정은 전기통신사업법, 자율분쟁조정은 소비자보호법을 근거로 삼는다. 둘 다 조정을 통해 소송에 따른 부담을 줄여보자는 취지로 도입됐다. 따라서 법적 강제성은 없다.
논란이 되고 있는 5세대(5G) 이동통신 가입자들의 서비스 품질 불량에 대한 손해보상 요구와 관련해, 이통사들은 과기정통부를 통해 받은 보상 요구와 통신분쟁조정센터 손해보상 분쟁조정 결과는 일부 수용했다. 과기정통부가 국회 과학기술방송정보통신위 소속 정필모 의원(더불어민주당)에게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를 참여연대가 분석한 결과를 보면, 이통사들은 과기정통부에서 통보받은 손해배상 요구 가운데 11건에 대해 각각 20~30만원씩 보상했다. 정신적 피해 보상금을 포함해 130만원을 보상한 경우도 있다. 이통사들은 통신분쟁조정센터 분쟁조정에 참여해 32만원 보상을 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자율분쟁조정위의 피해보상 조정안은 전면 거부했다. 앞서 5세대 이동통신 가입자 18명은 지난해 12월과 올 1월 참여연대를 통해 자율분쟁조정위에 피해보상 조정을 신청했고, 자율분쟁조정위는 5~18만원씩 보상하라는 조정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통사들의 거부로 보상은 이뤄지지 못했다.
5세대 이동통신 가입자들이 국민신문고, 통신분쟁조정센터, 자율분쟁조정위에 제기한 피해 유형은 서비스 반경(이용 가능 지역) 안내 부족, 개통 철회 지연 처리, 서비스 품질 불량, 엘티이(LTE)서 5G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사라진 혜택에 대한 불만 등으로 다르지 않다. 그런데 이통사들의 대응은 왜 다를까.
업계에선 “과기정통부와 방통위는 이동통신 서비스에 대한 인·허가권과 불법행위 단속·제재권을 갖고 있어 ‘후환’을 걱정해야 하는데 비해 소비자단체를 상대로는 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자율분쟁조정위 조정 절차와 결과는 투명하게 공개되는데 비해, 과기정통부를 통해 온 보상 요구 처리와 통신분쟁조정센터 조정은 철저하게 비공개로 이뤄진다는 점”도 요인으로 꼽힌다. 보상 내용이 공개되면 잠자코 있던 다른 피해자들도 보상 요구에 나설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 비공개 조건의 조정과 협의에만 응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통신분쟁조정센터는 분쟁조정 결과를 비공개하고 있다. 통신사업자 이익단체인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 쪽의 연구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비공개를 못박는 조항이 법에 들어갔다. 이에 보상 내용이 공유되지 못해, 아직도 5G 서비스 품질에 불만이 있는 경우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제기하거나 통신분쟁조정센터에 분쟁조정 신청을 해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들이 많다.
지난 국정감사 때
정필모 의원이 이통사들의 ‘몰래 보상’ 사실을 공개하고, 조정식 의원(더불어민주당)이
통신분쟁조정센터 조정 결과의 비공개 문제를 제기해 논란이 됐다. 하지만 통신분쟁조정센터는 여전히 비공개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당시 방통위는 “
사후에 사례집을 통해 공개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만 밝혔다.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한범석 통신분과장(변호사)은 이날 토론히 발제를 통해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자율분쟁조정 뿐만 아니라 방통위 통신분쟁조정도 이통사들이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통신분쟁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용자 편익을 높이자는 취지로 설립된 통신분쟁조정센터 분쟁조정 결과조차 이동통신 3사의 호의에 기대야 하는 상황은 문제가 많다”며, 국회가 이동통신 3사의 손해배상 책임을 명시한 전기통신사업법 일부 개정안(김상희 국회부의장 발의)을 서둘로 처리해줄 것을 촉구했다.
김재섭 선임기자
jski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