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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산업·재계

‘갑’과 ‘을’이 힘 합쳐서 ‘병’ 하나 죽이는 건 일도 아냐

등록 2017-08-12 10:00수정 2017-08-12 11:15

[토요판] 커버스토리
‘병의 눈물’ 손영태 전 태광공업 회장

▶ 24년간 현대자동차의 2차 협력사로 일해온 지방의 한 중소기업 경영진 부자를 상대로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한 사건이 있다. 이 회사로부터 부품을 납품받아온 현대차의 1차 협력사가 공갈죄로 검찰에 고소했기 때문이다.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은 법원에 의해 일단 기각됐으나 추가 영장청구 가능성은 남아 있다. 얼핏 기업인의 흔한 ‘경제범죄’의 하나로 가벼이 넘길 수도 있으나, 이 사건의 이면엔 대기업을 정점으로 하는 한국 사회 기업생태계의 일그러진 얼굴이 숨어 있다.

1993년 설립된 태광공업은 현대자동차의 1차 협력사인 서연이화에 부품을 납품해왔다. 손영태 전 회장은 서연 쪽이 매년 3~6%씩 일률적으로 단가 인하를 압박했다며, 서연에 50억원을 받고 주식과 경영권을 넘긴 것도 무리한 단가 인하로 경영난을 겪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태광공업 제공
1993년 설립된 태광공업은 현대자동차의 1차 협력사인 서연이화에 부품을 납품해왔다. 손영태 전 회장은 서연 쪽이 매년 3~6%씩 일률적으로 단가 인하를 압박했다며, 서연에 50억원을 받고 주식과 경영권을 넘긴 것도 무리한 단가 인하로 경영난을 겪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태광공업 제공

손영태(72)씨는 지난달 18일 경주교도소에서 겪은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오금이 저려온다.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밥그릇 3개와 칫솔, 수건을 받은 뒤 격리실에 수감됐습니다.” 한마디로 엉덩이 검사 빼고 다 했다. 더욱 가슴 아픈 것은 옆방에 아들 손정우(39)씨까지 들어와 있었다는 사실. 다행히 악몽은 6시간 만에 끝났다. 법원이 검찰에서 청구한 구속영장을 모두 기각한 것이다. 손씨는 “교도관이 석방 사실을 알려줄 때까지 죄인 취급을 받으며 가슴 졸이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끔찍하다”며 “아들은 정신적 충격이 커서 병원 치료까지 받았다”고 말했다.

손씨 부자는 불과 석달여 전까지만 해도 자동차용 부품 생산업체인 태광공업의 회장과 사장이었다. 손 전 회장은 1993년 회사를 설립한 뒤 현대자동차의 1차 협력사인 서연이화(이하 서연)에 부품을 공급했다. 2006년부터 2016년 말까지 11년간 서연 협력업체 모임의 회장을 맡았을 정도로, 그는 서연과 밀접한 관계였다. 또 1998~2003년에는 경주상의 회장을 역임한, 지역을 대표하는 기업인이었다. 2011년에는 동반성장위원회 실무위원으로 일했고, 2014년에는 지역사회의 동반성장에 기여한 공으로 대통령으로부터 산업포장까지 받았다.

손영태 전 회장은 2006년부터 2016년 말까지 11년간 서연이화(옛 한일이화) 협력업체 모임의 회장을 맡았을 정도로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손영태 전 회장은 2006년부터 2016년 말까지 11년간 서연이화(옛 한일이화) 협력업체 모임의 회장을 맡았을 정도로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지난 5월 중순, 24년간 동고동락한 서연이 납품 중단을 협박하고 회사 인수를 강요했다며 자신과 아들을 고소하면서 하루아침에 피의자 신분으로 전락했다. 손 전 회장이 50억원을 받고 서연에게 태광공업과 태광정밀(이하 태광)의 주식과 경영권을 매각한 직후였다.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은 기각됐지만 기소는 시간문제고, 추가 영장청구 가능성도 열려 있다. 24년간 키워온 태광의 소유권과 경영권은 이미 서연에 넘어갔다. 대신 400억원 규모의 회사 금융부채에 연대보증을 선 것 때문에 신용불량자로 전락한 처지다. 한때 성공한 기업인으로 지역사회에서 인정받던 손 전 회장에게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그의 인생에 비친 한국 사회의 얼굴은 어떤 모습일까? 지난 3일 <한겨레>가 손 전 회장을 만났다. 괄호 안에 ‘※’ 표시한 부분은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덧붙인 내용이다.

-24년간 피와 땀으로 일궈온 태광을 서연에 매각하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서연의 오랜 갑질로 부도 위기를 맞았다. 입찰을 통해 태광을 부품 공급업체로 선정한 뒤에도 추가 협상을 명분으로 애초 낙찰가보다 낮은 금액으로 하도급 대금을 결정했다. 또 추가로 단가 인하를 강제했다. 5년의 납품 기간 중에 2년차부터 4년차까지 매년 3~6%씩 일률적으로 단가 인하를 요구했다. 거래 단절을 위협 수단으로 삼으면서 향후 단가를 맞춰주겠다거나 신규 아이템을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지키지 않았다. 새로 태광의 경영을 맡은 서연 출신 임원이 최근 태광 직원들에게 ‘어떻게 이따위 가격(납품단가)을 받았느냐. 이래서는 백날 일해봐야 돈이 안 남는다’고 호통쳤다고 한다. 서연 스스로 갑질을 인정한 셈이다.”

-서연은 언제부터 갑질을 했나?

“자동차 업계의 납품 단가 인하는 오랜 관행이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 더욱 심해졌다.”

-서연에 사정은 했나?

“납품가격이 박하니 올려달라고 수없이 요청했다. 그러면 다음에 반영해주겠다고 약속해놓고는 지키지 않았다. 이 때문에 수십년간 적자가 계속 쌓였다. 수백억원에 이르는 회사 채무도 따지고 보면 서연의 갑질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실 단가 인상 요청도 서류로는 못 하고 구두로만 할 수 있다. 정식 서류나 메일로 요청하면 괘씸죄에 걸려 바로 보복을 당한다.”

“신고? 보복으로 일감 주지 않으면…”

-공정거래위원회에 하도급법 위반 혐의로 신고할 생각은 안 했나?

“다른 업체들의 경험을 보면 큰 소용이 없다. 설령 공정위에 신고해서 그동안 제대로 못 받은 돈을 받아낸다 해도 그다음은 어떻게 되나? 보복으로 일감을 주지 않으면 어차피 망한다. 누가 신고할 수 있나?”

-지난달 14일 서연이화와 현대차를 불공정 하도급 혐의로 공정위에 신고했는데.

“그건 이미 사업을 접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답답한 것은 공정위에 신고를 했더니, 증거자료나 증인을 요청하더라. 증거자료나 증인은 서연이 이미 경영권을 차지한 태광을 조사하면 바로 확보할 수 있다. 공정위가 의지만 있다면, 태광뿐만 아니라 서연의 2차 협력사 중에서 거래 규모가 큰 몇곳을 함께 조사해야 한다. 바로 법 위반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김상조 위원장에 대한 기대가 큰데, 공정위가 실제 행동으로 보여줬으면 좋겠다.”

태광공업은 지난해 600억원 정도의 매출을 올렸으나 적자를 80억원이나 봤다. 손영태 전 회장(맨 오른쪽)이 공장을 둘러보고 있다. 태광공업 제공
태광공업은 지난해 600억원 정도의 매출을 올렸으나 적자를 80억원이나 봤다. 손영태 전 회장(맨 오른쪽)이 공장을 둘러보고 있다. 태광공업 제공
-서연의 갑질로 적자가 불가피했다고 말했는데, 태광의 실적을 보면 해마다 소폭이나마 흑자를 냈고, 지난해만 8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회계조정(분식)을 통해 흑자로 만들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만약 적자를 그대로 방치하면 은행들이 신규 대출은커녕 기존 대출마저 상환을 요구한다. 현대차도 재무상태가 안 좋은 2차 협력사에는 일감을 주지 못하게 한다.”

-그러면 그동안 어떻게 회사를 유지했나?

“은행 빚에 의존하다보니 회사 부채가 수백억원으로 늘어났다. 개인 재산도 다 쏟아부었다. 지금 사는 집까지 담보로 잡혀 대출을 받았다.”

-지난해 600억원 정도의 매출을 고려할 때 80억원의 적자는 대단히 큰 규모다. 특별한 사정이 있었나?

“신규 설비투자로 감가상각비가 늘어난 요인도 있지만 지난해 현대차 노조의 3개월 파업에 따른 손실이 컸다. 완성차가 파업하면 협력업체는 매출은 줄어드는데 비용은 그대로여서 타격이 크다.”

-왜 서연에 회사를 매각할 생각을 했나?

“지난해부터 경영의 한계를 느꼈다. 서연에 자금 지원을 요청하면서, 도와줄 수 없으면 다른 인수처를 알아봐주거나 직접 인수해서 회사와 직원을 살려달라고 부탁했다.”(※경영난에 처한 2차 협력사가 1차 협력사에 인수를 요청하는 것은 자동차 업계의 오랜 관행이다.)

1차 협력사 ‘서연’과 24년 동고동락
11년간 협력업체 모임 회장 맡기도
50억 받고 주식·경영권 넘겼으나
공갈죄 고소당하고 부자가 함께 구속

서연, “태광이 부품공급 중단 협박해
어쩔 수 없이 계약 맺었다”고 주장
“자금 부족으로 공급 어려움 알려준 것”
계약무효라면서 대금 반환요구 안 해

“협력사 모임서 단가 얘기 종종 했다
태광 본보기로 삼으려 한 걸로 보여”
“서연 창업자 배임·탈세 기소됐을 때
협력사들 탄원서 제출 앞장섰는데”

서연도 현대차한테 단가 인하 압력받아
“서연-현대차-김앤장 문자 등 확인해야”
국민참여재판 추진해 직접 호소할 계획
“중소기업 눈물 흘리지 않게 도와달라”

(* 이미지를 누르면 확대됩니다) 지난 4월26일 태광공업과 서연이화 사이에 체결된 합의서. ‘거래기간의 갑질에 대한 을을 위한 위로금’ 명목으로 20억원을 지급하는 것으로 명시돼 있다.

“공갈까지 하며 신용불량 자초했다고?”

-서연 쪽 주장은 다르다. 태광이 부품 공급을 중단하겠다고 협박해서 어쩔 수 없이 태광을 인수하는 계약을 맺었다고 주장한다. 실제 4월26일 잠시 부품 공급이 중단됐고 현대차 생산라인이 멈춰 서서 1억여원을 물어줬다고 하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 4월24일 부품 공급 중단을 통지한 것은 협박한 게 아니라 자금 부족으로 부품 공급이 불가능할 수 있음을 미리 알려준 것이다. 그리고 실제 부품 공급은 중단된 적이 없다. 4월26일 서연과 태광 인수 합의서를 작성한 뒤에는 서연이 사실상 태광 경영을 접수했기 때문에 납품 중단을 걱정할 이유도 없었다.”

-서연은 4월28일 최종 인수 계약에 포함된 회사 금융부채 400억원에 대한 손 회장의 연대보증 면제 조항도 협박 때문이라고 주장하는데?

“사전에 작성한 합의서에 이미 태광의 채권과 채무를 일괄 인수한다는 조항이 들어 있다. 이는 연대보증 면제와 같은 의미다. 만약 연대보증을 면제받지 않으면 50억원의 매각 대금을 받아도 350억원의 빚이 남는데, 무슨 소용이 있나? 내가 공갈까지 하면서 회사를 팔아서 신용불량자가 되는 것을 자초했다는 게 말이 되나?”(※서연이 계약 무효를 주장하면서도, 인수대금 50억원의 반환을 요구하지 않고 태광의 소유권과 경영권을 차지한 것은 모순된다. <한겨레>는 서연 쪽 법률 대리인인 김앤장을 통해 이 부분에 대해 서연의 해명을 요구했으나, 결국 답을 듣지 못했다. 서연은 5월 말 태광에 대한 법정관리까지 신청했다. 서연은 매출 600억원에 자산가치가 400억원에 이르는 태광을 50억원에 인수했다. 태광이 법정관리를 통해 400억원의 금융부채를 절반으로 줄이면, 150억원이 남는 거래를 한 셈이다. 하지만 만일 서연이 손 전 회장의 연대보증(400억원)을 인수하면 이런 계획은 물거품이 된다. 손 전 회장은 “서연의 공갈죄 고소는 엉터리”라며 “서연은 처음부터 태광 인수계약, 공갈죄 고소, 법정관리 신청까지 치밀한 사전계획을 세운 것”이라고 말했다.)

“자동차산업 전체의 구조적 문제”

-서연의 주장을 받아들여 계약을 무효로 하고 50억원을 돌려줄 생각은 없나?

“검찰 조사 때 50억원을 반환할 테니 태광을 돌려달라고 말했는데, 서연이 거절했다. 4월28일 최종계약 때도 서연의 인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인수금액을 50억원 이하로 낮출 수 있다고 제안했더니, 서연에서 눈을 휘둥그렇게 뜨면서 깜짝 놀라더라. 지금 생각해보니, 특별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경가법)상 가중처벌 대상 기준 금액인 50억원에 딱 맞춘 것이다.”

-서연이 이렇게까지 한 이유가 무엇일까?

“최신 설비를 갖춘 태광을 헐값에 인수해서 안정적으로 부품 공급을 받기 위한 게 1차 목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태광뿐만 아니라 다른 2차 협력사들도 대부분 어렵다. 태광을 본보기로 삼으려 한 것으로 보인다.”

-평소 2차 협력사들의 어려움을 대변하는 데 앞장섰다고 하는데?

“협력사 모임에서 납품단가가 너무 낮다는 얘기를 종종 했다. 모임 대표로서 전체를 위해 할 말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미운털이 박힌 측면도 있다. 2015년에는 지역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납품단가 인하 문제를 공개적으로 거론했다. 내 개인 문제가 아니라 자동차산업 전체의 구조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혹시 불이익은 걱정 안 했나?

“나 혼자 살려고 했으면 이리 안 됐겠지. 그런데 나 혼자 잘되면 뭐 하나, 같이 잘돼야지. 후회는 안 한다.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한 뒤 서연과 김앤장에서 은행들을 찾아다니면서 나와 아들이 동시에 구속된다거나, 회사 매각대금을 들고 외국으로 도망갔다고 헛소문을 냈다더라. 하지만 법원이 영장을 기각하고, <한겨레>에 (▶관련기사 : “회사 차지한 뒤, 전 경영진 고소”…2차협력사 두번 죽였나)가 실리면서 명예회복은 됐다. 나는 처음부터 돈을 생각하지 않았다. 서연이 회사 매각 계약 이전에 그냥 부도를 내고 사업을 접으면 평생 먹고살 돈을 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하지만 회사 직원들을 배신할 수는 없어 거절했다.”

-서연의 대주주와는 오랜 인연이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배신감이 크겠다.

“서연 창업자인 유희춘 명예회장 시절에는 외국에 나갈 때마다 내가 가방을 직접 들고 모셨다. 구두와 안경을 닦아주고, 약까지 챙겼다. 아들인 유양석 회장도 나에게 이럴 줄 몰랐다. 2013년 유 회장이 배임·탈세 혐의로 기소됐을 때 협력사들을 모아 탄원서를 제출하는 데도 앞장섰다.”

“명분은 품질관리, 가격은 더 비싸”

-검찰 조사에서 현대차 임원이 태광 매각을 종용했다고 주장했는데?

“현대차의 구매담당 임원이 서연과 얘기가 잘 됐으니 자신만 믿고 원만히 계약을 체결하라고 여러 차례 말했다.”

-하지만 현대차는 납품 중단에 대한 걱정 때문에 그런 것이지, 서연의 고소는 몰랐다고 부인하는데.

“현대차 임원, 서연 경영진, 김앤장 변호사 간에 오고 간 문자와 전화 통화 내역만 조사하면 진실이 드러날 것이다. 하지만 검찰은 조사 요청을 철저히 무시했다. 현실적으로 서연은 현대차의 승인 없이는 지금과 같은 일을 못 한다. 또 현대차는 과거 비슷한 경험이 많기 때문에 이번 사태를 충분히 예상했을 것이다. 검찰 조사 때 서연 사장이 현대차에서 빨리 계약을 마무리하라고 압박하는 전화가 많이 걸려왔다는 진술도 했다.”(※손영태 전 회장의 변호인들이 검찰과 법원에서 답변하기 위해 준비한 자료를 보면, 2012년부터 2016년까지 5년간 부당 납품단가 인하 등으로 경영난에 처한 2·3차협력사들이 1차 또는 2차 협력사들에 “납품을 중단하겠다”고 협박해서 회사를 매각하거나 보상금을 받아낸 혐의(공갈죄)로 고소된 사건은 무려 6건에 달한다. 이 중에서 4건은 현대차 협력사들 간에 일어난 사건이다.)

-서연도 현대차에 납품단가를 잘 받지 못했고, 자신들도 피해자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현대차는 갑질을 한 적이 없다고 부인하는데.

“서연의 사장이 협력사 모임에서 직접 현대차에 의해 100억원, 200억원씩 단가 인하를 당했으니 2차 협력사들이 어려움을 분담해야겠다고 말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현대차는 2000년대 후반 이후 생산량이 늘어나면서 협력사 관리를 강화했다. 자체적으로 원가 테이블을 만들어 납품단가를 낮췄다. 요즘 현대차가 협력사에 적용하는 시간당 임금은 1차가 1만7000~1만9000원, 2차는 1만2000원 수준이다. 얼핏 올해 최저임금 6470원보다 훨씬 높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자동차 업계 특성상 꼭 필요한 야간근무에 따른 수당, 밥값 등이 모두 포함된 금액이다. 또 매년 추가로 단가 인하를 하기 때문에 채산성을 맞추기가 어렵다. 2012년 이후로는 협력업체가 구입하던 원재료를 현대차가 직접 구입해서 공급하고 있다. 명분은 원재료의 품질관리인데, 정작 품질은 이전과 똑같으면서 가격은 5~10% 비싸다.”

손영태 전 회장은 2011년 동반성장위원회 실무위원을 지냈다. 지난해 3월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이 공장을 방문했을 때 찍은 사진. 태광공업 제공
손영태 전 회장은 2011년 동반성장위원회 실무위원을 지냈다. 지난해 3월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이 공장을 방문했을 때 찍은 사진. 태광공업 제공

(* 이미지를 누르면 확대됩니다)

“양쪽 변호사가 10시간 협상해서 계약”

-서연 쪽 법률 대리인이 최대 로펌 김앤장이다.

“김앤장의 도움이 없었으면 서연이 이런 일을 못 했을 것이라 본다. 김앤장 안에는 1-2차 협력사 간 분쟁을 담당하는 전문가들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김앤장이 태광 전 경영진의 비리에 대한 뒷조사를 했다는 얘기도 있는데.

“김앤장 사람 2명이 태광에 와서 조사를 벌였다는 얘기를 직원들에게 전해 들었다. 지난해 국세청의 특별세무조사를 받았다. 3명의 조사관이 한달 이상 샅샅이 뒤졌는데 회사에 대한 추징세금은 3억여원, 개인은 9천만원이 나왔다. 매출 600억원대의 회사에서 5년치 추징세금이 이 정도면 큰 문제가 없었다는 뜻이다. 조사관이 회사 경영하느라 고생 많다고 격려하더라.”

-검찰 조사에서 공갈 혐의에 대해 억울하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나?

“충분히 했다. 검찰 조사관조차 직접적인 강압이 없었고, 양쪽 모두 변호사가 배석해서 계약을 체결했는데 무엇이 공갈이냐고 질문했다. 4월28일 양쪽 변호사가 10시간 이상 협상해서 계약을 맺었는데, 공갈이 말이 되나? 다시 강조하지만 계약 체결 당시 서연 경영진과 현대차 구매담당 임원, 김앤장 사이에 오고 간 문자와 전화 내용만 확인하면 계약이 과연 공갈에 의한 것인지 아닌지는 바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조사 요청은 철저히 무시됐다.”

-검찰에 서연의 갑질에 대해서도 설명했나?

“무려 다섯번에 걸쳐 의견서를 제출해 자세히 적었다. 하지만 하나도 반영이 안 된 채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의견서를 한 번이라도 제대로 읽어봤는지 모르겠다.”(※대구지검 경주지청(담당 부장검사 옥성대)은 지난달 14일 손 전 회장과 아들인 손정우 전 사장에 대해 공갈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경제 사건과 관련해 재벌총수도 아닌 중소기업 경영자인 아버지와 아들을 상대로 한꺼번에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대구지법 경주지원 영장전담판사는 범죄 성립 여부에 관한 다툼의 소지가 크고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영장을 모두 기각했다.)

-검찰은 법치주의 확립과 정의 구현이 본연의 역할인데, 왜 그랬을까?

“모르겠다. 평소 검찰을 존경했는데, 왜 공정한 수사를 하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담당 부장검사가 김앤장 변호사와 과거 검사 시절 같이 근무했다는 말도 있던데, 설마 그것이 영향을 미쳤을까? 나중에라도 본인에게 꼭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다.”

-법원의 영장 기각은 예상했나?

“전혀 못 했다. 솔직히 나와 아들 중 한명은 구속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판사가 영장실질심사를 하면서 계약할 때 영장에 나온 것처럼 칼과 시너통으로 위협했느냐고 묻더라. 계약서는 호텔에서 체결했다. 나는 현장에 있지도 않았고, 아들은 몸이 안 좋아서 거의 밖에 나가 있었다. 서연 사장과 양쪽 변호사들이 오랜 협의를 통해 체결했다고 답했다. 판사님이 다시 합의서 작성할 때 아들이 칼을 꺼냈느냐고 묻길래, 전혀 사실과 다르고 당시 동영상 증거도 있다고 답했다. 판사가 계속 고개를 갸우뚱하더라. 담당검사가 서연의 주장을 영장에 그대로 쓴 것 같다. 이럴 수 있나?”

“국민에게 직접 호소할 수밖에 없다”

-태광과 유사한 사건이 최근 5년 동안 6건이 더 확인됐다. 1건만 무혐의 처분되고 나머지 5건은 모두 기소됐는데, 재판이 끝난 4건은 모두 유죄판결이 났다. 심지어 6년 실형선고를 받은 사건도 있다.

“우리 사회의 갑과 을들이 힘을 합쳐서 한명의 병을 죽이는 것은 어렵지 않다. 대한민국은 ‘갑질 공화국’이다. <한겨레>가 관심을 갖지 않았다면 태광 사건도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검찰과 법원은 사건의 근본 원인도 함께 살펴야 하는 것 아닌가? 검찰이 대기업의 갑질을 제대로 조사했다면 구속영장을 청구했겠나?”

-국민참여재판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하는데.

“그것으로 갈 수밖에 없다. 김앤장이 동원하는 ‘전관’을 우리 같은 중소기업인이 어떻게 이기나? 법원이 그동안 유사 사건에 대해 모두 유죄판결을 내리지 않았나? 국민에게 직접 호소할 수밖에 없다.”(※국민참여재판은 국민이 형사재판에 배심원으로 참여하는 제도다. 배심원은 만 20살 이상의 국민으로 해당 지방법원 관할구역에 거주하는 주민 가운데 선정된다. 배심원들의 유죄·무죄에 대한 평결과 양형에 관한 의견은 일종의 권고이고, 법적 구속력은 없다. 하지만 판사가 배심원의 평결과 다른 선고를 할 때는 이유를 판결문에 밝혀야 한다.)

-배심원으로 나서는 국민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는?

“지금도 내가 왜 이런 사건에 휘말렸는지 영문을 모르겠다. 판사·검사·변호사는 최고 지성을 갖춘 분들로 사회의 신뢰를 받는다. 양쪽 변호사가 체결한 계약을 공갈에 의한 것이라고 하면 앞으로 누구를 믿고 계약할 수 있겠나? 마음 같아서는 대통령을 만나러 청와대라도 바로 찾아가고 싶다. 나 혼자 잘 살자는 게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기업의 갑질 근절을 약속했고, 김상조 공정위원장은 중견·중소기업이 더 작은 중소기업을 괴롭히는 ‘을질 근절’을 다짐했다. 나 말고도 고통받는 중소기업인이 수없이 많다. 중소기업이 더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게 해달라. 태광과 같은 사건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도와달라. 사실 확인을 해서 내가 잘못했으면 기꺼이 벌을 달게 받겠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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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과학기술원(SAIST) 세미나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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