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층(주당 23만원대 투자)에 아직 사람 있어요!”
“저도 15% 손실봤어요. ‘존버’(끝까지 버틴다는 뜻의 속어) 해야할까요?”
에스케이(SK)바이오팜 개인투자자들이 한 주식투자 인터넷 카페에 털어놓은 애타는 속내다. 뇌전증(간질) 치료제를 주력 상품으로 삼은 에스케이바이오팜은 지난 2일 공모가 4만9천원으로 상장한 뒤 4일만에 주가가 장중 한때 27만원대에 육박했고 하루 거래량은 1천만주를 넘겼다. 순식간에 주식투자자들의 매수 표적이 됐다. 하지만 지난 9일 이후 5일간 주가가 20%가량 빠지는 등 춤을 추고 있다. 21일 현재 이 회사의 시가총액은 14조5271억으로 국내 증시에서 20위에 올라있다.
다른 바이오업체들도 비슷한 상황을 겪는 경우가 많다. 지난 10일 혈장치료제 개발 2상 돌입 가능성이 전해진 녹십자는 이후 사흘간 30%가량 주가가 치솟다가, 이튿날 9% 폭락장을 맞았다. 20일에는 임상실험용 치료제 생산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내놓자 다시 장중 22%까지 주가가 치솟았다. 코로나19 관련 기업들의 경우 ‘임상 진행’ 관련 자료를 내는 것만으로 주가가 널뛰기하는 경우가 잇따르고 있다. 최근 ㅇ제약사는 출처불명의 ‘러시아발 코로나19 치료제 임상’ 정보로 느닷없이 주가가 치솟자, 오히려 자사에 대한 과잉투자를 주의하라는 당부를 내놨다.
제약·바이오업체를 상대로 적정 기대치를 넘어선 투자를 일컫는 이른바 ‘오버슈팅’(Over-Shooting) 흔적은 곳곳에서 나타난다. 20일 한국거래소가 분석한 헬스케어(제약·바이오) 분야 올해 월평균 ‘주식값 대비 순수익비율’(PER)은 ‘208.9’에 이른다. 피이아르는 현재 주가를 주식 1주당 회사가 내는 순이익으로 나눈 값인데, 수치가 커질수록 주가 수준이 실적에 견줘 높다고 본다. 2016년 24.7에 불과하던 헬스케어 분야의 평균 피이아르는 4년새 8배 넘게 뛰었다. 국내 산업을 떠받치는 반도체(34.3), 에너지화학(38.0), 자동차(18.4) 분야의 올 상반기 피이아르 수치에 견줘도 월등히 높다.
하태기 상상인증권 애널리스트는 투자분석보고서에서 “한해 영업이익 1조7천억원인 세계1위 뇌전증 제약 업체 유시비(UCB·벨기에화학연맹)의 시총이 24조원 정도인 걸 보면, 에스케이바이오팜의 과열현상을 쉽게 이해할수 있다”며 “국내 바이오투자가 과열구간에 진입됐고, 하단 변동성이 확대되는 시기를 맞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바이오 열풍에 편승해 빌린 돈으로 주식을 사들이는 ‘빚내서 투자’ 현상은 오히려 심화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와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0일 현재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코스닥 주식을 구입한 신용융자금액은 7조621억원으로 지난 4월 이후 매달 1조원씩 늘고 있다. 바이오기업 투자자들이 빚투를 주도하면서, 신용융자 투자 기업 상위 10위권에 셀트리온헬스케어, 씨젠, 제넥신 등 바이오업체들이 상당수 포진했다.
국내 바이오산업의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바이오업체들을 상대로 ‘묻지마식 투자’가 위험하다는 경고도 나온다. 최근 영국 <파이낸셜타임즈>(FT)는 한국의 바이오 투자 과열 현상을 지적하면서 “투자자들은 (고수익을 노리며) 불안정한 분야에 투자를 좋아하지만, 한국이 바이오의약품 강국이 되지 않는 이상 거품이 터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종우 증시칼럼니스트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2017년 ‘바이오 버블’ 때 주당 15만원이던 신라젠이 제대로 된 기술을 확보하지 못했다가 지금은 껍데기만 남은 것과 유사한 사례들이 국내에서 여러차례 반복됐다”며 “회사의 내실과 관계없이 주식이 한번 터지면 된다는 식의 묻지마 투자를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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