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 페미니스트 모임인 테크페미는 지난 4일 서울 강남구 선릉동 디캠프에서 ‘여성 기획자 콘퍼런스’를 열었다. 테크페미 제공
“(연사들은) 기획자로 어떻게 버텨왔는지, 그 과정에서 얻은 팁은 뭔지 이야기할 것이다. 이런 자리 자체가 매우 적다. 더 많은 여성이 마이크를 잡아야 하는 시간이다. 그 이유는, 우린 그만큼 해봤고 그만큼 잘하기 때문이다.”(테크페미·옥지혜)
“연사를 전원 여성 그래픽디자이너로만 구성한 행사를 만들어보자는 취지였다. 강연은 대부분 남성들이 마이크를 잡고, 거기다가 필요하면 여성 한명 정도 끼워주는 라인업이 대부분이다. 새롭거나 충분히 멋진 게 나오는데 기회를 만들어보지 못했던 것인지 싶어 실험을 해보고 싶었다.”(여성디자이너정책연구모임·김린)
이제 여성 직업인들은 남성 위주의 주류 인맥으로 비집고 들어가는 것만으로는 네트워크의 갈증을 풀지 못하고 있다. 아예 그것을 벗어나 여성끼리 새롭고 더 강한 ‘네트워크’를 만든다. 여성 각자가 처한 일터의 환경과 그것을 구성하는 네트워크가 성차별적이라는 점을 깨닫고 여기에서 벗어나려는 행동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느슨하지만 더 단단한, 새로운 형태의 여성 직업인들의 연대가 등장하고 있다.
‘테크페미’는 지난 4일 서울 선릉동 디캠프에서 첫 오프라인 행사인 ‘여성 기획자 콘퍼런스’를 열었다. 연사는 모두 여성이었다. 테크페미는 지난해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발생 뒤 6월께 이공계 여성들이 ‘페미니스트’라는 정체성을 전면에 내세우며 만든 단체다. 정보통신(IT) 등 이른바 ‘테크업계’에서 여성 노동자는 적지 않다. 테크페미는 여성 기획자 콘퍼런스를 통해 ‘여성 기획자’의 노동을 보여주고, 제대로 알리려고 했다. 테크페미 구성원인 옥지혜씨는 “채용 과정에선 ‘개발자들과 잘 일할 수 있나'를 묻는다. 이렇게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요구하지만, 감정노동은 노동으로 인정해주지 않는다. 목표로 했던 걸 이루어내면, ‘고생했다'는 치하로 끝난다”고 지적했다.
규모있는 오프라인 행사까지 치렀지만 테크페미 자체는 짜인 일정이나 의무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느슨하고 개방적인 연대가 이뤄진다. 테크페미 구성원들은 격월로 모여 함께 밥 먹고, 일주일에 한번 각자가 할 일을 챙겨 만나는 스터디 모임을 연다. 여기에서는 일터 관련 정보도 자연스레 오간다. 옥지혜씨는 “이직할 때 성차별적인 환경이나 인물 등에 대한 정보가 중요한데 그런 정보를 얻기가 정말 어렵다. 이 모임을 통해 그런 정보를 교류한다. 테크페미 안에서만 이직 정보를 주고받아 성사된 게 15건 정도가 된다”고 말했다.
여성디자이너정책연구모임은 지난 5월 서울 마포구 탈영역 우정국에서 강연 및 네트워크 행사 ‘우후’(WOOWHO)를 진행했다.
여성 그래픽디자이너들은 ‘여성디자이너정책연구모임’(WOO)을 지난해 11월 1년간의 활동 기간을 정해 만들었다. 지난 5월에는 강연 및 네트워크 행사 ‘우후’(WOOWHO)도 진행했다. 김린 대표는 “여성 디자이너의 일과 삶에서 한 사람의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려 모였다. 그게 가능하려면 디자이너가 협업하는 일터에서의 의사결정권자 개인의 인성에 기대다 보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봤다. 보편적인 권리를 위해서는 정책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활동 종료 기간을 앞두고 그간의 활동 결과물을 모은 책을 펴내고 12월에는 서울시립미술관 세마(SeMA) 창고에서 전시를 연다.
이런 여성 네트워킹의 출연 배경에는 업무 능력과 상관없는 남성 중심의 네트워크가 일터에서 주요하게 작동하고, 성차별적 노동 환경을 만드는 데 일조하는 점이 자리한다. 기업은 남성보다 뛰어난 여성의 네트워크 능력을 치켜세우지만 실질적인 평가에서는 그것과 상관없는 별도의 네트워크 실력이 작용한다. 사람인의 최근 설문조사(직장인 738명 대상)를 보면, 응답자 54.3%는 ‘유리천장이 있다’고 대답했다고 밝혔다. 이런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새로운 방식의 여성 네트워크가 등장하는 것이다.
여성들의 연대와 네트워크에서 한발 나아가 이를 사업으로 진행하는 스타트업도 생겼다. 지난 8월 문 연 ‘위커넥트’(WECONNECT)는 전문가 여성의 지속가능한 경제활동과 역량 강화를 돕는 것을 사업 모델로 내세우고 있다. 김미진 대표는 “경력 단절된 전문가 여성들은 다시 일을 하고 싶어하고, 스타트업은 전문성과 경력이 있는 인재를 채용하고 싶어한다. 각자 경력 인재와 일터로 존재하지만 연결이 안 되어 있을 수 있다 생각해 창업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정연 최하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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