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 주유엔 한국대사가 8일 유엔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유엔본부/로이터 연합뉴스
미국이 주도한 대북 추가 제재가 중·러의 거부권 행사로 불발된 뒤 이를 논의하기 위한 유엔총회가 개최됐으나 한·미와 북·중·러 사이의 심각한 입장 차이와 대립만 드러났다.
8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한 추가 제재 결의안에 지난달 26일 거부권을 행사한 중·러의 설명을 듣는 총회가 열렸다. 유엔총회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에 상임이사국 5개국 중 거부권 행사 국가가 나오면 그 이유를 설명하도록 지난 4월 규정을 고쳤다. 이번 총회는 이 규정에 따라 소집된 첫 회의였다. 중·러는 북한이 첫 핵실험을 한 직후 안보리가 2006년 10월 첫 대북 제재를 부과한 뒤 16년 만에 처음 거부권을 행사했다.
가장 먼저 발언에 나선 장쥔 유엔 주재 중국대사는 2018년 이후 핵·미사일 시험 중단이라는 북한의 긍정적 조처를 무시한 미국이 “대북 제재를 강화하면서도 대화는 하자는 공허한 구호를 외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미국이 “북한의 합리적 우려”를 외면하면서 북-미 대화를 “완벽한 교착상태로 몰고 갔다”고 비판했다. 그는 제재를 일부 해제하고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선언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안나 옙스티그네예바 러시아 차석대사도 추가 제재는 인도주의적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며 “제재의 소용돌이로 위협해 평양을 무조건 비핵화시킨다는 것은 소용없는 짓”이라고 했다.
세번째 발언자로 나선 김성 유엔 주재 북한대사는 제재는 불법행위라며 “자위권 행사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주권국가의 적법한 권리”라고 말했다. 또 “우리 무기를 현대화하는 것은 미국의 직접적 위협으로부터 우리나라의 안보와 근본적 이익을 지키기 위한 적법한 자위권 행사”라고 주장했다. 이어 “2차 대전 후 10개 이상의 나라를 침략하고 50개 이상 합법 정부를 전복하는 데 관여하고, 무고한 시민 수십만명을 죽인 유일한 유엔 회원국은 다름 아닌 미국”이라고 했다.
제프리 데이로렌티스 미국 차석대사는 거부권 행사는 중·러 정상이 지난 2월 양국 협력에 “한계가 없다”고 선언한 것 때문이냐고 따졌다. 북핵 문제를 비확산 차원이 아니라 대미 공동 견제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표현한 것이다. 그는 미국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제재 완화를 논의하는 것 이상으로” 준비돼 있으며, 전제조건 없이 대화하자는 메시지를 미국 고위급들이 북한 고위급들에게 개인적 채널로 전했다고 밝혔다. 메시지가 문서로도 전달됐으며 특정한 제안을 담기도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불행히도 북한은 그 지역뿐 아니라 세계를 위협”하고 있다고 했다.
조현 유엔 주재 한국대사도 “심각한 도발에 대한 대응”이 무산돼 “매우 유감스럽다”며 “북한이 추가 핵실험에 나설 것으로 보이는 상황이라 더욱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조 대사는 북한에 대해 “한반도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위한 대화에 응하라”고 요구했다.
미국은 북한이 7차 핵실험을 감행하면 추가 제재 결의를 안보리에서 또 추진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그러나 중·러가 상황 악화의 책임을 대부분 미국에 떠넘기는 태도라서 가결 전망은 높지 않아 보인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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