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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반도체 전쟁’ WTO로…중, 미 제소하며 한국에 연대 호소

등록 2022-12-13 13:34수정 2022-12-13 21:30

왕이, 반도체법·인플레 감축법 등
한중 외교회담 때 ‘동병상련’ 부각
로이터 연합뉴스
로이터 연합뉴스
중국 정부가 미국이 두달 전 내놓은 첨단 반도체 제조 장비와 슈퍼컴퓨터 기술 등에 대한 수출 통제 조처가 세계무역기구(WTO) 규범 위반이라며 제소했다. 그와 함께 반도체 등 첨단 산업의 ‘공급망 재편’을 위해 미국 정부가 잇따라 쏟아내는 시장 교란 행위에 한·중이 공동 대응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중국 상무부는 12일 밤 누리집에 올린 자료를 통해 미국이 보호주의적 조처를 남용해 세계무역기구 규칙을 위반했다며 “우리의 우려를 해소하고 합법적 이익을 지키기 위해” 제소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또 미국의 수출 통제는 “글로벌 공급망의 안정성을 위협하고 세계 경제에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고 주장하며 “미국은 제로섬적 사고를 중단하고 잘못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미국은 앞선 10월7일 중국의 첨단 반도체 기술이 무기 능력 고도화로 이어져 자국 안보에 해를 끼칠 수 있고, 반도체와 컴퓨터 능력은 소수민족 등에 대한 인권침해에도 사용될 수 있다며 강력한 대중국 수출 통제에 나선 바 있다. 이에 따라 미국 기업들과 미국의 원천 기술을 사용하는 기업들은 반도체 디(D)램은 18㎚(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이하, 낸드플래시는 128단 이상, 로직칩은 14㎚ 이하 제조 장비를 중국에 파는 게 원칙적으로 금지됐다.

이번 제소는 세계무역기구가 분쟁해결 절차의 1심에 해당하는 분쟁처리소위원회(패널)가 9일 미국이 2018년에 중국 등에 부과한 철강·알루미늄 제품 고율 관세가 무역 규범 위반이라고 판정한 직후 이뤄졌다. 하지만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이에 대해 ‘국가 안보에 관한 것은 세계무역기구 심사 대상이 아니다’라며 수용 불가 의사를 밝혔다. 미국은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도 안보에 관한 것이라는 입장이어서, 세계무역기구가 불리한 판정을 한다면 수용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세계무역기구의 분쟁해결 절차가 정한 최종심을 담당하는 상소기구는 활동하기 위한 최소 위원(3명)을 채우지 못해 기능이 정지된 상태다. 그에 따라 중국이 이번 제소를 통해 미국의 결정을 뒤집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겸 외교부장은 같은 날 열린 한·중 외교장관 화상 회담에서도 미국의 산업 정책을 강한 어조로 비판하면서 한국의 호응을 요청했다. 중국 외교부 발표에 따르면 왕 외교부장은 이날 박진 외교부 장관과 한 회담에서 “미국은 소위 ‘칩과 과학법’과 ‘인플레이션 감축법’ 및 세계무역기구 판결 거부로 중국과 한국을 포함한 각국의 정당한 권익을 현저히 해치고 있다”고 강조했다. 왕 부장은 또, 미국은 이를 통해 “국제 규칙의 파괴자이지 건설자가 아님을 재차 증명했다”며 “각국이 나서 세계화에 역행하는 낡은 사고와 일방적 괴롭힘에 반대하고 공동으로 진정한 다자주의를 수호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 외교부도 보도자료를 내어 양국 장관이 “공급망 소통 확대,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서비스투자 공식 협상의 조속한 재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왕 부장이 쏟아낸 미국에 대한 거친 비난 발언은 공개하지 않았다.

한편, 일본과 네덜란드도 중국에 대한 첨단 반도체 제조 장비 판매를 중단하는 데 미국과 원칙적으로 합의했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익명의 소식통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미국 정부는 반도체 장비·소재 기술이 앞선 일본과, 세계 유일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만드는 에이에스엠엘(ASML)을 보유한 네덜란드가 동참하지 않으면 수출 통제의 효과가 떨어진다고 보고 두 나라에 대한 설득 작업을 이어왔다. 이번 결정을 통해 중국 반도체 업계는 7㎚ 이하 첨단 반도체 생산을 위해 꼭 필요한 에이에스엠엘의 극자외선 노광장비를 수입할 길이 막히게 돼 상당한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 베이징/이본영 최현준 특파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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