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이스라엘 남부 레임에서 열린 노바 음악 축제에 참여한 이들이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 대원들의 공격을 피해 뛰고 있다. 소셜미디어 영상 화면 갈무리
이스라엘 북부에 사는 스티브 마르카첸코(Steve Markachenko)는 6일(현지시각) 밤 여자친구를 데리고 4시간을 운전해 남부 네게브 사막에 있는 도시 레임에 갔다. “친구와 사랑 그리고 끝없는 자유”라는 광고를 내건 노바 음악 축제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이스라엘 명절인 초막절에 맞춰 열린 이 사이키델릭 음악 축제에 참석해 6일부터 7일까지 이틀 동안 밤을 새우며 즐길 예정이었다. 영국 가디언은 7일 동이 틀 무렵 스티브 커플을 포함한 참가자 3000~4000명에게 이 축제는 ‘악몽’으로 변했다고 전했다.
이날 새벽 6시30분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무장단체 하마스는 로켓 수천발을 이스라엘로 발사했다. 이어 무장 대원들을 이스라엘 영내로 투입해 민간인과 군인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 공격했다. 가자지구에서 4.8㎞ 떨어진 행사장은 하마스의 초기 공격 대상이 됐다. 결과는 끔찍했다. 이스라엘 민간 구조단체 자카(ZAKA)에 따르면 행사장에서만 주검 260구가 발견됐다. 이날 이스라엘 남부 곳곳에서 벌어진 비극의 참상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곳이 노바 음악 축제 행사장이었다.
당시 현장에 있던 이들이 소셜미디어에 올린 영상을 보면 7일 동이 틀 무렵 요란한 전자 음악 소리가 가득 찬 행사장 위로 로켓으로 보이는 하얀 섬광이 하늘을 가르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일부는 음악 소리에 묻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금새 알아차리지 못했고, 어떤 이들은 이런 일이 익숙한 듯 태연하게 반응하고 있다. 하지만 곧 음악 소리가 꺼졌다. 행사 관계자는 “여러분 적색경보입니다. 적색경보”라고 급한 목소리로 방송했다. 이어 무장한 하마스 대원들이 나타났다.
축제에 참여했던 시민 오르텔(Ortel)은 이스라엘 방송 채널12에 “전기가 나가고 갑자기 어디에선가 무장한 이들이 들이닥쳐 사방으로 총을 쐈다. 테러리스트 50명이 군복을 입고 밴을 타고 나타났다”고 말했다. 오르텔은 사람들이 승용차를 타고 달아나기 위해서 뛰었고 하마스 무장 대원들이 차를 겨냥해 총을 쐈다고 전했다.
하마스 무장대원들이 이미 출구에 진을 치고 있고 곳곳에 매복해 있어 현장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았다. 31살 갈 라즈(Gal Raz)는 워싱턴포스트에 “차에서 숨진 이들이 많았고 숨진 이들이 탄 차들로 도로가 막혔다”고 말했다. 그는 친구 차를 타고 수백m 가량 갔다가 차를 버리고 주검 여러 구를 뛰어넘어 몸을 숨겼다. 사방이 뻥 뚫린 사막 지역이라 숨을 곳도 많지 않았다.
이스라엘 언론은 사망자 외에도 축제 참가자 100명 이상이 실종됐다고 전했다. 상당수는 하마스 무장대원들이 인질로 끌고 간 것으로 보인다. 텔레그램에는 여성 한 명이 오토바이에 강제로 태워져 끌려가고 그의 남자친구가 팔이 뒤로 꺾인 채 한 무리의 남성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모습의 영상을 확인할 수 있다. 끌려간 여성은 25살 노아 아르가마니(Noa Argamani)라고 가족들이 확인했다고 뉴욕 타임스가 전했다.
7일 이스라엘 남부 레임에서 열린 노바 음악 축제에 참여한 이들이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 대원들의 공격을 받은 뒤 행사장 주변에 불타고 버려진 승용차들이 늘어서 있다. 소셜미디어 영상 화면 갈무리
가자지구에서 하마스 대원들이 트럭에 여성 한 명을 싣고 행진하는 장면의 영상도 소셜 미디어에 올라왔다. 무장 대원 한 명이 그의 허리에 다리를 얹고 있고, 이 장면을 보던 소년 한 명이 여성의 머리에 침을 뱉었다. 미국 시엔엔(CNN) 방송은 영상 속 여성은 축제에 참여했던 독일-이스라엘 이중국적자 샤니 루크(Shani Louk)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이튿날인 8일 이스라엘방위군이 냉장 시설을 갖춘 트럭을 가지고 나타나 주검들을 실었다. 현장엔 아직도 불타고 버려진 자동차 수백대가 널브러져 있다.
이스라엘방위군은 9일 사흘 간 이어진 하마스 공격으로 숨진 이스라엘인이 700명이 넘었다고 발표했다. 이스라엘방위군은 ‘강철 검’이라는 작전명으로 가자지구에 보복 공격을 하고 있다.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부 장관은 “가자지구가 치를 대가는 몇 세대의 현실을 바꿀 만큼 아주 무거운 것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쪽의 민간인 피해가 어디까지 커질지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조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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