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뚜세이뿌 장군. 까렌민족연합(KNU) 의장이다.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기자와 담쌓고 살아온 무뚜세이뿌(Gen. Mutu Say Poe) 까렌민족연합(KNU) 의장(이하 장군)이 무뚝뚝한 얼굴로 나타나 악수 대신 팔뚝을 내민다. “코로나.” 인사란 게 딱 한마디. 1996년 까렌민족해방군 제6여단장 시절부터 수도 없이 그이를 봐왔지만 두 문장 넘어가는 말을 들은 기억이 없다. 늘 손사래부터 치는 통에 헛물만 켰고.
“자네가 첫 인터뷰 기록 세우네!” 오죽했으면 통역 맡은 부의장 끄웨뚜윈이 더 신났을까.
“팔십팔년 하고 여덟달 팔일 전.” 태어난 때를 물었더니 대뜸, 날수를 댄다. 우물쭈물 손가락 꼽는 내가 딱했든지. “뭘 세나. 1933년 4월13일 아냐.” 바위처럼 단단한 몸집에다 번뜩이는 재치. 좀 뜨끔하다. 소수민족 해방전선 세대교체를 외쳐온 내 꼴이 열없고.
무뚜 장군은 까렌민족연합이 태어난 1947년 열네살 중학생으로 해방투쟁에 뛰어들었으니 어느덧 전선 나이 일흔넷이다. 세계 최장기 무장투쟁 기록을 나날이 늘려가는 그이는 까렌 해방투쟁의 산 역사다. “별거 없다. 제2차 세계대전 터지고 일본군과 버마독립군이 까렌 공격해대는 통에 다들 싸워야 했으니.” 해묵은 무공담 한 토막쯤 나오는가 했더니, “서로 죽이고 죽는 전쟁판에 그런 게 어딨어. 다 쓸데없는 말장난들.” 찬 기운이 휙 돈다.
“알려진 개인사 없으니 이 인터뷰로 기록 남기자. 태어난 곳부터?” “나도 몰라.” 끊어 치는 단답형에 숨이 막힌다. 그이 턱밑까지 바짝 다가가 눈 쳐다보며 염력을 보낸다. 먹혔는지, 그이 입가에 옅은 웃음기가 돈다. “모에이강 언저리 밀림에서 났대.” “인디아 이름 ‘무뚜’는 누가?” “나를 받은 인디아 간호사가 ‘황금’이란 뜻으로 붙였다지.”
무뚜 장군은 비서한테 보청기를 가져오게 한다. 인터뷰 시작하고 꼭 10분 만이다. 말문을 열겠다는 신호를 잡았다. 그로부터 그이 입에선 쌀 배급원으로 일한 아버지 이야기며 비행기를 몰겠다던 어릴 적 꿈까지 줄줄줄 튀어나온다. 날짜까지 꼽아대는 비상한 기억력에다 잘 짠 소설 같은 구술력 앞에 한동안 넋이 빠진다. 묻고 할 것도 없다. 고개 끄덕이며 추임새만 가끔씩. 젊은 시절 이야기가 끝날 즈음 이미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10분간 휴식. 후반전은 여태 아무도 들춰보지 못한 소수민족해방전선의 속살을 파보기로. “버마군 최고사령관 민아웅흘라잉과 무뚜 장군 밀월관계 의심하는 이들 많은데? 호형호제에서 밀선과 밀담까지.” “말 같잖은. 나는 그자를 동생이라 부른 적 없어. 그쪽이 나를 아저씨라 부른 것도 버마식이고, 외교적 수사야.” “둘 사이에 오간 밀선과 사신은?” “휴전협정 뒤 통신선 열었지만 직접 통화한 적도 없고.” 끄웨뚜윈이 끼어든다. “처음 밝히는데, 전화와 사신은 모두 내가 주고받았어. 귀도 어두운 의장이 어떻게.” 무뚜 장군이 덧붙인다. “그쪽 문서를 봐. 우리 쪽 의장, 부의장 직함도 안 붙여. 우리를 아예 인정 안한다는 뜻이야. 근데 무슨 밀월을!”
그동안 이 둘을 끼고 나돈 흉흉한 소문은 소수민족 해방군들 사이에 불신감을 키웠고 동맹체 건설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쳐왔다. 그럼에도 여태 가타부타 대꾸 한마디 없었던 무뚜 장군이 사태를 더 꼬이게 만든 꼴이다. 사실이든 핑계든 진작 오늘처럼 입을 열었더라면.
아픈 대목을 하나 더 찔러본다. “지난 5월 ‘전국휴전협정 정신 지키고 대화로 버마 해법 찾자’는 성명서 날려 말썽 났다. 버마 정부군이 시민을 살해하고 10개 휴전협정 해방구를 무차별 공격하던 땐데.” “그 본질은 무력 진압 중단, 정치범 석방, 민주주의와 연방제 약속 비롯한 8개항 조건 내걸었던 3월 성명과 같았다.” “군부가 아무것도 안 받았는데 왜 난데없이 대화를?” “전쟁만으론 버마 위기 못 풀어.” “근데, 10월15일 군부가 초대한 전국휴전협정 6주년 기념식은 왜 거부했나?” “8월 성명서에서 이미 밝혔다. 군부가 대화 의지 안 보였고, 우리 희망도 거기까지였다. 남은 건 전쟁뿐이니.”
무뚜 장군의 현실 인식에 의문을 남긴 그 5월 성명서는 까렌 안팎을 뒤집어 놓았다. 까렌 사회 곳곳에서 큰 불만이 터져 나오는 가운데 특히 버마 정부군한테 본부 언저리를 공습당한 까렌민족해방군 제5여단은 걷잡을 수 없이 들썩였다. 소수민족 해방군들도 무뚜 장군을 ‘배신자’라 쏘아댔고. 결국 까렌민족연합은 “의장의 사견이다”라고 밝혔으나 정치·군사적으로 소수민족 해방군 맏형뻘인 무뚜 장군은 내상을 입었고 해방전선엔 아직도 분노와 불신감이 꿈틀댄다.
더 불편한 화두, 까렌민족연합 내분으로. “떨어져 나간 조직만 넷이다. 민주까렌불교군(DKBA), 까렌민족연합/까렌민족해방군-평화회의(KNU/KNLA-PC), 국경경비대(BGF). (민주까렌불교군 가운데 정부군에 편입된) 민주까렌자선군(DKBA-5). 요즘 제5여단과 제7여단 힘겨루기도 심상찮고?” “서로 다른 생각, 분리와 통합은 민주주의에서 자연스러운 일이다. 적대감 없다. 정치적 목표 같고.” “버마 정부군이 국경경비대 앞세워 까렌 공격하는 판인데?” “겉보기와 속살은 다르다. 이번 회의에 제6여단 대표가 국경경비대 경호 받아 여기 왔듯이. 2013년 결성한 까렌무장조직통일위원회(UCKAG)도 제대로 작동하고.” 이 위원회가 제대로 굴러가는지는 회의적이지만 국경경비대 사령관 마웅칫뚜(Maung Chit Htoo)와 까렌민족해방군 사령관 조니 장군이 가끔 술잔을 기울이는 것만큼은 틀림없다. 이건 내 취재에 걸려든 사실이니.
이래저래 까렌 안팎으로 적잖은 논란을 빚어온 현 지도부의 앞날이 소수민족 해방전선의 현안으로 떠올랐다. “6월부터 미뤄온 까렌민족연합 대의원대회는 언제쯤?” “내년 초. 이번 중앙상임위원회에서 날 잡을 거야.” “3선 길에 오를 건가?” “내가 결정할 일 아냐. 대의원들 몫이니.” “젊은 세대로 넘길 때도 됐는데?” “민주제도 따르면 되고.” “민주제도란 건 떠날 권리도 있는데?” 무뚜 장군은 빙긋이 웃고 만다. 아직 그만둘 마음이 없다는 뜻.
무장조직 가운데 민주제도를 지닌 오직 셋, 까렌민족연합, 까레니민족진보당(KNPP), 버마학생민주전선이 모두 올해 대의원대회를 연기했다. 버마 정부군 공격에다 코로나까지 겹쳐.
두 시간 반이 흘렀다. “마지막 하나, 까렌 정체성이 뭔가?” 무뚜 장군과 끄웨뚜윈이 한참 머리를 맞댄 끝에. “해코지만 당해온 소수민족으로 존엄 지키고자 싸워왔으니 오늘부터 까렌 정체성을 ‘투쟁’으로 하세.” 팔뚝을 부딪치며 자리를 접는다.
“문태, 믿는다.” 끄웨뚜윈 말이 길게 따라붙는다. 무뚜 장군이 뱉은 말 가운데 ‘비밀’을 가려달라는 뜻이다. 취재원 보호와 보도 욕망이 충돌하는 전선에서 겪는 자가검열, 이 불편함이 내 팔자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폭로 하나, 냉혈한으로 소문난 무뚜 장군이 우스개를 즐기고 달변가란 사실. 잔정도 제법 많고.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