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최대 친중파 정당인 민주건항협진연맹(DAB) 소속 후보자들이 19일 치른 입법의원 선거에서 당선이 확정된 뒤 자축하고 있다. 홍콩/로이터 연합뉴스
19일(현지시각) 치른 홍콩 입법의원 선거 결과는 중국이 원한 ‘애국자가 통치하는 홍콩’의 현실을 극명히 보여줬다. 범민주 진영이 철저히 배제된 채 치른 이번 선거에서 홍콩 유권자 10명 가운데 7명은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고, 내년 1월1일 임기가 시작되는 당선자 90명 전원이 친중파로 채워졌다. 불과 2년 남짓 만에 ‘우리가 아는 홍콩’이 사라진 것이다.
20일 홍콩 선거관리위원회 잠정 집계 결과, 보통·직접투표를 통해 입법의원 20명을 뽑는 지역구 선거에서 총 유권자 447만2863명 가운데 135만680명이 투표에 참여해 투표율은 30.2%에 머물렀다.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 이후 치른 역대 선거 중 가장 저조한 투표율이다. 28개 직능에 걸쳐 입법의원 30명을 뽑는 비례대표 선거에서도 총 유권자 21만8811명 가운데 7만49명이 투표에 참여(32.22%)하는 데 그쳤다. 반면, 가장 많은 의석(40석)이 걸린 선거위원회 지명직 선거에선 유권자 1448명 가운데 1426명이 참여해 98.48%의 압도적 투표율을 기록했다.
홍콩 반환을 1년 앞둔 1996년 12월 치른 입법의원 선거의 투표율은 35.8%였다. 하지만 이후 차츰 정치 참여에 대한 관심이 커지며 2016년 9월 입법의원 선거의 투표율은 58.28%까지 올랐다. 특히, 홍콩 사회를 뜨겁게 달아오르게 했던 ‘송환법 반대 시위’ 열기 속에 치른 2019년 11월 지방선거의 투표율은 사상 최고치인 71.23%를 기록했다.
이 선거에서 범민주파는 애초 118석이던 의석을 392석까지 늘리면서 전체 의석(452석)의 86.7%를 차지했다. 반면, 친중파의 의석은 327석에서 60석으로 줄었다. 중국 당국이 홍콩 상황을 이대로 두면 안 된다고 판단하게 된 결정적 계기였다.
코로나19로 인한 혼란 속에서 중국은 지난해 6월 말 홍콩판 국가보안법을 발효시켰다. 범민주 진영은 9월로 예정된 입법의원 선거에서 ‘후보 단일화’를 위해 자체 경선에 들어갔지만, 선거는 전격 연기됐다. 범민주 진영의 경선은 보안법 위반으로 규정됐다. 실제 홍콩 공안당국은 2월 말 “입법회를 장악해 홍콩 정부를 마비시키려 했다”며, 당시 경선에 참여했던 범민주파 정치인 47명을 무더기로 기소했다.
한달 뒤엔 ‘애국자가 통치하는 홍콩’을 내세운 선거법 개정이 이뤄졌다. 입법의원은 70석에서 90석으로 늘었지만, 지역구 의원은 35석에서 20석으로 되레 줄었다. 직능별 비례대표 역시 기존 35석에서 30석으로 축소됐다. 행정장관의 선거인단 구실만 했던 선거위원회엔 입법의원 40명의 지명권이 부여됐다. 또 행정장관이 당연직 위원장인 국가안전위원회가 후보자의 ‘애국심’과 ‘준법의식’ 등 출마 자격을 심사하도록 해 범민주파 정치인의 출마를 사실상 제도적으로 막았다. 홍콩 범민주 진영 일각에선 투표 거부와 백지 투표를 통한 ‘소극적 저항’에 나설 것을 촉구했지만, 공안당국은 이마저도 철저히 탄압했다.
중국 국무원 신문판공실은 20일 목차와 각주를 포함해 모두 2만6천자가 넘는 장문의 <일국양제 아래 홍콩의 민주발전> 백서를 펴냈다. 이들은 2019년 6월 시작된 송환법 반대 시위를 홍콩의 민주질서를 유린한 “반중 혼란 세력의 준동”으로 규정하고, 홍콩판 국가보안법 입법과 홍콩 선거법 개정을 통해 홍콩의 민주주의를 복원·강화했다고 주장했다. 바야흐로 ‘일국양제’의 시대가 저물고, ‘홍콩 특색 민주주의’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베이징/정인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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