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새벽 홍콩대 교정에서 노동자들이 철거 작업을 마친 ’치욕의 기둥’ 조각상을 흰색 천으로 감싸 옮기고 있다. 홍콩/로이터 연합뉴스
홍콩의 중국 반환 직전 홍콩대 교정에 설치된 1989년 6·4 천안문(톈안먼) 민주화 운동 유혈 진압 희생자를 추모하는 조각상 ‘치욕의 기둥’이 끝내 철거됐다. 지난 24년 간 ‘일국양제’(한 국가, 두 체제)를 상징했던 기념비가 사라졌다.
23일 <홍콩 프리프레스> 등의 보도를 종합하면, 홍콩대 당국은 전날 밤 10시30분께 조각상 주변에 노란색 플라스틱 가림막을 설치하는 것으로 철거 작업을 시작했다. 이어 조각상을 흰색 천으로 감싼 뒤 하단부를 절단하는 작업이 새벽 3시께까지 진행됐다. 철거를 마친 조각상은 컨테이너 트럭에 실려 이날 오전 6시50분께 교외로 옮겨졌다.
홍콩대 쪽은 성명을 내어 “조각상을 교내에 유지하면 법적인 위험이 있다는 외부 법률 자문 결과에 따른 결정”이라며 “조각상 상태가 불안정해 안전 문제도 우려되던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홍콩대 당국은 지난 10월 초 “홍콩판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에 저촉될 수 있다”며 조각상 철거 방침을 밝혀, 지나친 ‘몸 사리기’이자 ‘역사 지우기’란 비판이 쏟아졌다.
덴마크 조각가 옌스 갈시외트의 1996년 작품인 ‘치욕의 기둥’은 천안문 희생자들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형상화한 8m 높이의 콘크리트 조각상이다. 조각상의 하단부에는 ‘천안문 학살’ ‘1989년 6월4일’ ‘노인이 젊은이를 영원히 죽일 순 없다’ 는 등의 문구가 새겨져 있다.
홍콩 시민사회는 홍콩의 중국 반환(7월1일) 직전인 지난 1997년 6·4 추모 촛불집회에 맞춰 이 작품을 홍콩으로 들여와 공개한 뒤, 홍콩대 교정으로 옮겨 설치했다. 이후 촛불집회 주최 쪽인 ‘애국민주운동 지원 홍콩시민연합회’ (지련회)는 해마다 5월 ‘치욕의 기둥’ 세정식을 열고, 6·4 추모행사 준비의 시작을 알려왔다. 지련회는 홍콩 공안당국의 전방위적 압박 속에 지난 9월 말 자진 해산한 바 있다.
베이징/정인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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