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월11일 실시되는 대만 총통 선거를 앞두고 재선 도전에 나선 차이잉원 총통이 여론조사에서 상대 후보를 두자릿수 이상 앞서 나가고 있다. AP 연합뉴스
6개월째를 넘긴 반송중(중국 송환 반대) 시위 열기 속에 홍콩 범민주 진영이 지난달 지방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이후, 내년 1월11일 실시되는 대만 총통 선거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홍콩에서 흔들리고 있는 ‘일국양제’(한 국가 두 체제)가 한달 앞으로 다가온 대만 선거를 계기로 다시 시험대에 오른 모양새다.
9일 <타이완 뉴스> 등의 보도를 종합하면, 차이잉원 총통은 전날 선거유세에서 “홍콩 시위 사태를 계기로 세계가 대만인들이 총통 선거에서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지 주시하고 있다”며 “세계인들은 홍콩에서 벌어진 일이 대만에서 재연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대만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누리고 있는 이유는 주권이 있기 때문이며, 주권이 없다면 홍콩인처럼 거리에서 싸울 수밖에 없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선거를 ‘친중’ 대 ‘반중’ 구도로 끌고 가는 것이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차이 총통은 “재선 도전조차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2016년 집권 이후 ‘반중 독립’ 노선을 강조하는 그를 겨냥한 중국의 압박 속에 7개국이 대만과 수교를 끊으면서 외교적 고립도 깊어졌다. 지난해 11월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민진당이 참패한 책임을 지고 당 주석직에서 물러나면서 당내 기반마저 흔들렸다. 그럼에도 그가 기사회생할 수 있었던 것은 중국의 공세적 태도가 부른 역풍이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1월 대만 쪽에 일국양제를 통일 방안으로 제시하면서, 필요하면 무력 사용도 불사하겠다는 발언을 내놨다. 당시 대만인 10명 가운데 8명이 일국양제에 반대한다는 여론조사 결과에서 알 수 있듯이 중국의 공세에 반발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여기에 6월부터 시작된 홍콩 반송중 시위는 차이 총통의 지지율에 날개를 달아줬다. 판스핑 대만사범대 교수(정치학)는 9일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에 “역설적으로 올해 초부터 차이 총통에 대한 여론을 반전시킬 수 있는 ‘무기’를 중국이 지속적으로 공급하고 있는 꼴”이라고 짚었다.
대만 선거가 다가오면서 중국은 전통적인 ‘강온 양면전술’을 구사하고 있다. 중국 당국은 지난 11월 초 중국에 진출한 대만 기업과 학업·취업·거주 목적으로 중국을 찾는 대만인에 대한 지원 방안을 담은 ‘26개 조치’를 발표했다. 여기에는 해외 중국 공관을 통해 대만인에게 영사 보호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까지 담았다. ‘고국으로 돌아오라’는 표어까지 내걸었다.
반면 중국이 자체 기술로 개발한 첫 항공모함이 11월 말 대만해협을 통과하는 등 군사적 위협도 이어졌다. 대만 정치권에 대한 중국의 개입 의혹도 불거졌다. 중국 정보기관 소속으로 홍콩 주재 창신투자공사 직원인 왕리창(26) 사건이 대표적이다. 오스트레일리아에 망명을 신청한 그는 현지 방송에 출연해 “대만이 가장 중요한 공작 대상”이라며 “언론과 불교 사원, 풀뿌리 단체까지 침투했다”고 주장했다. 이를 두고 우자오셰 대만 외교부장은 “의혹만 무성하던 중국의 대만 침투 공작이 사실로 확인됐다”고 강조했다.
대만 <티브이비에스>(TVBS) 방송이 지난달 29일 공개한 최신 여론조사를 보면, 차이 총통은 46%의 지지율을 얻어 한궈위 국민당 후보(31%)를 15%포인트 차이로 압도했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민진당이 20년을 수성했던 가오슝 시장에 당선됐던 한 후보는 총통 선거의 국민당 후보로 선출된 직후인 지난 7월까지만 해도 박빙의 우위를 유지했다.
하지만 홍콩 시위가 거세지던 8월 들어 열세로 돌아선 뒤 지지율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한 후보는 지난 7월 당내 경선에서 맞붙었던 주리룬 전 신베이 시장을 선거본부장으로 8일 영입했다. ‘본선 경쟁력’ 논란으로 인한 당내 갈등을 차단하려는 ‘당심 달래기’용이란 평가다.
베이징/정인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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