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홍콩 코즈웨이베이 빅토리아공원에서 열린 천안문(텐안먼) 민주화 시위 31주년 추모집회에 참가한 홍콩 시위대가 가이포크스 마스크를 쓰고 있다. 홍콩/ 로이터 연합뉴스
홍콩 정부 고위당국자가 소속 공무원들에게 홍콩 자치정부와 중국 중앙정부 양쪽을 위해 일해야 한다고 강조해 논란이 일고 있다. ‘홍콩판 국가보안법’(홍콩 보안법) 입법 추진으로 갈등이 번지고 있는 상황에서 공직자에게 ‘중국에 대한 충성’을 요구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8일 <홍콩방송>의 보도를 종합하면, 패트릭 닙 홍콩 공무원사무국장(장관급)은 전날 친중파 최대 정당인 민주건항협진연맹(민건련)이 주최한 원탁회의에 참석해 18만여명에 이르는 공무원에 대해 “일국양제(한 국가, 두 체제)에 따라 홍콩 자치정부의 공무원이자, 중국 중앙정부 공무원 제도의 일원”이라며, 이른바 ‘이중 정체성’을 강조했다. 또 닙 장관은 “공무원들의 국가 정체성과 일국양제에 대한 이해를 강화할 방안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닙 장관의 이런 발언은 1997년 중국 반환 이후 홍콩 정부가 소속 공무원에게 ‘이중 정체성’을 언급하며 중앙정부에 대한 충성을 강조한 첫번째 사례라고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는 전했다. 홍콩의 헌법 격인 기본법 제99조는 “공무원은 반드시 충심으로 직무를 수행하여야 하며 홍콩특별행정구 정부에 대하여 책임져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공무원 단체 쪽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렁차우팅 홍콩공무원노조연맹 위원장은 “닙 장관이 언급한 ‘이중 정체성’의 뜻을 이해할 수 없어, 많은 공직자들이 당혹스러워하고 있다”며 “정부가 공식적으로 해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환법 시위 과정에서 새로 출범한 신공무원노조 관계자는 “기본법은 공직자에게 홍콩 정부에 대한 충성을 규정했지, 중앙정부에 대한 규정은 없다”며 “닙 장관이 언급한 ‘이중 정체성’이 충돌하는 상황이 되면 공직자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느냐”고 되물었다.
한편, 공무원노조를 포함한 홍콩 노동계는 보안법 제정에 반대하기 위한 총파업 실시 여부를 묻는 조합원 투표에 나선 상태다. 홍콩직공회연맹 등이 참여한 ‘200만 삼파(노동자 파업, 상인 철시, 학생 동맹휴업) 노조연합전선’ 쪽은 조합원 6만명 이상이 투표에 참여해 60% 이상이 찬성하면, 오는 14일부터 사흘 동안 1단계 총파업에 나설 방침이다.
베이징/정인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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