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시민사회 원로이자 <핑궈(빈과)일보> 창간 사주인 지미 라이(가운데)가 10일 오전 홍콩보안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체포돼 수갑을 찬 채 이송되고 있다. 홍콩/AP 연합뉴스
홍콩 시민사회 원로이자 중국에 비판적인 신문 <핑궈(빈과)일보>를 창간한 지미 라이(72)가 홍콩판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위반 혐의로 전격 체포됐다. 경찰은 대규모 인력을 동원해 핑궈일보 사옥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이는 등 ‘공안몰이’를 본격화하는 모양새다.
10일 <홍콩방송> 등의 보도를 종합하면, 라이는 이날 아침 7시께 카오룽반도 호만틴 지역의 자택에서 홍콩보안법에 따라 신설된 경찰 보안법 전담 수사팀에 체포됐다. 그는 홍콩보안법 29조(외세 결탁 등) 등을 위반한 혐의를 받고 있다. 라이는 지난해 송환법 반대 시위를 주도하고 지난 6월4일 경찰이 금지한 천안문 민주화 시위 유혈진압 추모 촛불집회에 참가한 혐의 등으로 각각 기소된 상태다.
경찰은 이날 아침 라이의 두 아들과 핑궈일보 임원 등 6명도 같은 혐의로 체포했다. 이어 오전 9시45분께부터 카오룽반도 청콴오 지역에 자리한 핑궈일보 본사 사옥에 대한 압수수색에 들어갔다. 특히 경찰은 이날 오전 11시께 수갑을 채운 상태로 라이를 핑궈일보 본사로 데려와 그가 보는 가운데 그의 사무실을 수색했다. <홍콩 프리프레스>는 “현장에 도착한 라이의 변호사는 경찰의 제지로 곧바로 그를 접견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날 압수수색에는 정복 경관 등 200여명이 대거 동원됐다.
경찰은 “홍콩보안법 43조 규정에 따라 발부된 영장을 집행했다”며 “편집국은 압수수색 대상에서 제외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핑궈일보>가 전한 현장 생중계 영상을 보면, 정복 차림의 경찰이 사옥 2층 편집국 내부에서 기자들의 책상 위에 있는 각종 자료를 뒤졌다. 일부 기자들이 이를 제지하고 나섰지만, “상부의 명령에 따른 조처”라며 수색을 멈추지 않았다.
경찰은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고 밝혀, 핑궈일보 관련 인사들의 추가 체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태다.
홍콩에서 현직 언론사 발행인과 경영진이 체포되고, 언론사 사옥 압수수색이 이뤄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로써 지난달 1일 홍콩보안법 시행과 함께 언론 자유가 위축될 것이란 우려는 한달여 만에 고스란히 현실화했다. 홍콩 시민사회는 “언론 탄압이자, 표현의 자유 침해”라며 강력 반발했다.
리척얀 홍콩직공회연맹(HKCTU) 비서장은 <홍콩방송>과 한 인터뷰에서 “지미 라이뿐 아니라 임원진까지 체포한 것은 중국에 비판적 논조를 유지해온 핑궈일보를 겨냥한 명백한 언론 탄압”이라며 “홍콩 언론계 전반에 위축 효과를 주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언론인 출신인 키스 리치버그 홍콩대 저널리즘·미디어연구센터 소장은 “경찰이 핑궈일보를 압수수색한 것은 홍콩에서 언론의 자유가 종말을 고했음을 여실히 보여줬다”며 “홍콩의 언론 자유는 ‘자연사’한 것이 아니라 중국 당국과 캐리 람 행정장관, 경찰에 의해 살해당한 것”이라고 짚었다.
라이는 친중 성향의 다른 홍콩 재벌들과 달리 중국 정부와 홍콩 정부에 비판적인 태도를 고수해왔다. 중국 광둥성 출신으로 12살에 홍콩으로 건너가 의류업계에서 잔뼈가 굵었다. 1975년 도산 직전의 의류업체를 인수해 한때 30여개국에 2400여 점포를 거느린 거대 의류업체로 키웠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지오다노다.
잘나가던 사업가였던 그는 1989년 중국의 천안문(톈안먼) 민주화 운동 유혈진압을 목격한 뒤 언론에 관심을 기울여 <핑궈일보> 창간 등 언론계에 뛰어들었다. 1994년 라이 소유의 언론매체가 톈안먼 시위를 강경 진압한 리펑 총리를 강도높게 비판했다. 중국 정부는 본토 지오다노 매장을 폐쇄했고, 그는 의류 기업을 매각해야만 했다.
베이징/정인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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