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정부가 일방적으로 입법의원 자격을 박탈한 데니스 쿽 의원(왼쪽) 등 4명이 11일 입법회 청사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홍콩/AP 연합뉴스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가 홍콩 입법의원의 자격 요건에 관한 결정을 통과시킨 직후, 홍콩 정부가 민주파 입법의원 4명의 자격을 박탈했다. 전날 입법회 민주파 의원 19명이 동반 사퇴를 예고한 바 있어 홍콩 정치권에 파란이 일 전망이다.
11일 관영 <신화통신>의 보도를 종합하면, 제13차 전인대 상무위는 이날 폐막한 23차 회의에서 중국 헌법과 홍콩 기본법 등을 근거로 홍콩 입법회 의원의 자격 상실 요건을 구체적으로 규정한 결정을 통과시켰다. 홍콩의 헌법 격인 기본법의 최종 해석 권한은 전인대 상무위에 있다.
전인대 상무위는 결정에서 홍콩 입법의원은 “홍콩 독립을 조장·지지하거나, 홍콩에 대한 중국의 주권 행사를 거부해선 안 된다”고 규정했다. 또 “외국 또는 외부세력이 홍콩 정부의 업무에 간섭하도록 요청하거나, 기타의 방법으로 국가안전에 위해를 가하는 행위를 한 때는 즉각 의원 자격을 상실하게 된다”고 결정했다.
통신은 “이번 결정은 지난 9월6일로 예정됐던 제7대 입법의원 후보 등록 기간에 위에 언급된 이유로 법원이 후보 자격을 박탈한 6대 입법의원에게도 적용된다”며 “향후 입법의원 출마자와 입법의원으로 선출된 이들에게도 적용될 것”이라고 전했다. 전인대 상무위는 “입법의원 자격 상실은 홍콩 자치정부가 발표한다”고 규정했다.
전인대 상무위의 결정이 공개된 직후 홍콩 정부는 앨빈 영 주석과 데니스 쿽, 쿽카키 의원 등 공민당 의원 3명과 직능대표인 케네스 렁 의원 등 4명의 입법의원 자격을 박탈했다. 이들은 홍콩판 국가보안법 제정과 관련해 외국 정부에 중국과 홍콩 당국을 제재해달라고 요청했다는 이유로 지난 7월 입법의원 출마 자격을 박탈당했다.
앞서 홍콩 정부는 7월 말 코로나19 방역을 이유로 입법의원 선거를 1년간 연기하고, 현역 입법의원의 임기를 연장한 바 있다. 이때부터 친중파 진영에선 “영 주석 등 4명은 출마 자격이 없으므로, 임기가 연장됐더라도 의원 신분을 유지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또 민주파 의원들의 ‘의사진행 방해’(필리버스터) 행위에 대해선 “중앙정부나 홍콩 자치정부의 정상적인 업무 수행을 가로막는 것을 불법으로 규정한 홍콩보안법 위반”이라고 비난해왔다.
법원의 판단도 거치지 않고 정부가 일방적으로 민주적으로 선출된 입법의원의 자격을 박탈하면서 홍콩 정치권은 격랑에 휩싸인 모양새다. 당장 홍콩 입법회 민주파 의원 19명이 전날 기자회견을 열어 “동료 의원 가운데 1명이라도 의원직을 박탈당하면 집단 사퇴할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어 후폭풍이 거셀 수밖에 없어 보인다. 데니스 쿽 의원은 <홍콩방송>(RTHK)에 “권력층이 반대세력을 더이상 용납하지 못하는 것 같다”며 “홍콩 사회에서 범민주 진영을 아예 뿌리 뽑고 싶은 모양”이라고 말했다.
베이징/정인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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