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이 지난 1월26일 열린 주례 브리핑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홍콩/AP 연합뉴스
코로나19 방역을 명분으로 지난해 9월로 예정됐던 홍콩 입법회 선거를 1년 연기시킨 중국 당국이 선거법 개정을 예고하고 나섰다. 예정대로 선거가 치러졌다면 입법회 다수 의석 확보가 확실시됐던 범민주 진영의 선거 참여 자체가 배제될 가능성이 커졌다.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은 23일 주례 브리핑에서 “선거제도 개혁은 해묵은 과제이며, 홍콩 정치권의 혼란은 지난 20여년 세월 동안 중앙정부의 우려사항”이라며 “중앙정부로선 ‘일국양제’(한 국가, 두 체제)를 위태롭게 하는 상황이 지속되는 것을 막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중국 당국의 선거법 개정 움직임을 공식 확인한 셈이다.
앞서 샤바오룽 중국 국무원 홍콩·마카오 사무 판공실 주임은 전날 열린 비공개 행사에서 “행정부와 사법부, 입법부를 비롯해 진정한 애국자들만 홍콩에서 공직을 맡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국에 반대하고 홍콩을 혼란스럽게 하는 세력과 외부의 반중 세력이 홍콩 공직 사회에 발을 붙일 수 없어야 한다”며 “중앙정부는 선거제도의 법적 허점을 메우기 위한 개혁에 나설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샤 주임은 △중국 중앙정부 공격 △홍콩 독립 주장 △제재 등 외부세력 개입 요구 △홍콩보안법 위반 등을 ’비애국적 행위’로 규정했다. 이어 그는 “인민의 민주적 권리는 전면 존중돼야 하지만, 국가의 주권과 안전 개발이익도 지켜야 한다. 법적 허점을 막아 선거제도를 개선시키는 것은 중요하고도 시급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홍콩 <빈과(핑궈)일보> 등의 보도를 종합하면, 중국 중앙정부가 추진할 선거법 개정 방향은 △공직 후보자 자격 요건 강화를 통한 범민주파 배제 △직능별 비례대표 선출 절차 개정 통한 친중파 지원 △범민주파 강세 지역 선거구 재획정 등 크게 3가지다. 이같은 방안은 홍콩 몫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대표단이 오는 3월5일 개막하는 13기 전인대 4차회의에 제출해 통과시킬 전망이다.
<빈과일보>는 전문가의 말을 따 “선거법 개정안의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지난해 정부가 입법회 선거를 연기한 이유는 당시 주장했던 것처럼 코로나19 방역이 아니라 범민주파가 입법회를 장악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는 점이 분명해졌다”고 전했다.
실제 지난 1월6일 홍콩 공안당국이 범민주파 정치인과 시민사회 활동가 등 55명을 홍콩보안법 위반 혐의로 무더기로 체포한 것도 이를 위한 사전 포석이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당시 이들에겐 지난해 7월 범민주파 진영이 자체 실시한 입법의원 후보자 경선과 관련해 홍콩보안법 위반(체제전복) 혐의가 적용됐다. 체포된 이들 가운데 베니 타이 전 홍콩대 교수 등 경선을 조직한 시민사회 활동가 7명을 제외한 나머지 48명은 경선에 참여한 공직 후보자다.
반면 범민주파 의원의 집단 사퇴로 친중파만 남은 입법회 쪽에선 중앙정부의 선거법 개정 움직임을 환영하고 나섰다. <홍콩방송>(RTHK)은 “일부 입법의원은 선거법 개정과 관련해 홍콩인은 발언권이 없다고 주장했다”며 “다른 의원은 중앙정부의 결정은 무조건 지지한다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유럽연합 쪽은 선거법 개정이 실제 이뤄지면 홍콩에 대한 제재의 고삐를 더욱 죌 것임을 예고했다. 주제프 보렐 유럽연합 외교·안보 담당 고위대표는 22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연합 외교장관 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홍콩의 정치상황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며 “선거법을 공격적으로 바꾸거나, 사법부의 독립을 침해하는 상황이 이어지면 추가적인 제재조치에 나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베이징/정인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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