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난 오안 후보가 15일 앙카라에서 <로이터> 통신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28일 치러지는 튀르키예 대통령 선거 결선에서 ‘캐스팅 보트’를 쥐게 된 3위 후보 시난 오안(55) 아타(ATA) 동맹 후보가 며칠 내로 누구를 지지할지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인에겐 낯선 이 극우 정치인의 판단에 ‘스트롱맨’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운명과 우크라이나를 사이에 둔 동서 진영 간 치열한 힘겨루기의 향방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오안 후보는 대선 다음날인 15일 튀르키예 방송에 나와 “하루 이틀 뒤 우리는 협의를 끝내고 결정을 발표할 것”이라며 “나는 우리 결정이 결선의 승자를 쉽게 결정하도록 만들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오안 후보는 결선에 진출한 두 후보자와 얼굴을 맞대고 협상하는 방법도 배제하지 않았다. 그는 “회담이 왜 안 되겠나. 우리는 민주주의 나라에 살고 있다”며 “정치 이슈에 대한 만남과 토론은 자연스럽다”고 말했다.
14일 튀르키예 대선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정의개발당)이 49.5%를 득표해 1위, 야권 공동후보 케말 클르츠다로을루 공화인민당 대표가 44.9%로 2위를 기록했다. 3위 오안 후보의 득표율은 5.17%에 불과했지만, 그가 누구에게 힘을 실어주느냐에 따라 최종 승자가 뒤바뀔 수 있게 됐다. 하루아침에 튀르키예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킹메이커’가 된 셈이다.
오안 후보는 극우 성향인 민족주의행동당(MHP)에서 정치를 시작해 2011년 튀르키예 의원이 됐다. 2015년 당대표에 도전했지만 실패했고, 이후 당에 반발한 혐의로 제명됐다. 현재는 반이민 정책을 내세우는 극단적 민족주의 정당들이 모인 아타(ATA) 동맹을 이끌고 있다. 언론은 그를 “극단적 민족주의자”로 표현하고 있다. 또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는 튀르키예 건국 이념을 지지하는 등 이슬람주의와는 거리를 두고 있다. 실제 그는 이날 <로이터> 통신과 한 인터뷰에서 “우린 테러리즘에 맞서 싸우는 것과 피난민들을 (원래 국가에) 돌려보내는 게 우리의 ‘레드 라인’임을 분명히 했다”고 말했다.
이런 성향을 그대로 보여주듯 오안 후보는 클르츠다로을루 대표에 대해 튀르키예에서 독립하려는 소수 민족인 쿠르드족과 명백히 선을 그어야만 손을 잡을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15일 <로이터> 통신에 “28일 결선에서 클르츠다로을루 후보가 친쿠르드족 정당을 인정하지 않을 때만 그를 지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그가 이끄는 국민연합과 함께 쿠르드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걸 명확히 하는 서류에 서명할 수 있다. 그것은 간단하다”고 말했다. 쿠르드계 주민을 지지 기반으로 하는 인민민주당(HDP)은 이번 대선에서 6개 야당 연합에는 속하지 않았지만 클르츠다로을루 후보를 지지했다. 튀르키예 내 쿠르드족 유권자는 15~20%로 상당한 규모를 차지한다. 그는 쿠르드족 정당을 튀르키예의 정치에서 제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14일 튀르키예 대선에서 이스탄불의 한 유권자가 투표 용지를 내보이고 있다. AFP 연합뉴스
무라트 소메르 이스탄불 코츠 대학 교수(정치학)는 <로이터> 통신에 “오안 후보는 에르도안, 클르츠다로을루 모두에게 비판적이지만 그의 지지층은 주로 에르도안에게 더 친화적”이라고 분석했다. 또 같은 날 치러진 의회 선거에서 여당인 정의개발당이 전체 600석 가운데 과반이 넘는 322석을 확보한 상태다. 오안 후보가 자신과 사상적으로 가깝고 이미 의회 다수를 확보한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힘을 몰아줄 가능성이 더 높다. 그렇게 되면,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서구와 러시아 사이에서 ‘묘한 중립’을 지키고 있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외교 노선이 유지된다. 미국 <시엔엔>(CNN)은 “투표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오안은 튀르키예 밖에선 거의 알려지지 않은 변두리의 극단적 민족주의 정치인이었지만 앞으로 2주 동안 그는 튀르키예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 됐다”며 “그가 에르도안의 정치적 운명을 결정할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김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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