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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한한령에 ‘천송이’ 잊은 중국…‘오! 문희’ 개봉이 틈새 열까

등록 2021-12-30 04:59수정 2021-12-30 12:31

[최현준의 DB―deep]
국내 한류 전문가들에 물어보니
중국에서 6년 만에 공식 상영된 한국 영화 ‘오! 문희’ 포스터. 웨이보 갈무리
중국에서 6년 만에 공식 상영된 한국 영화 ‘오! 문희’ 포스터. 웨이보 갈무리

한국 영화 ‘오! 문희’가 6년 만에 중국에서 상영되면서 2016년 사드 배치 이후 암묵적으로 취해진 중국의 한류 제한령(한한령)이 풀릴지 주목된다. 특히 한국과 중국 정부가 내년 수교 30주년을 ‘한·중 문화교류의 해’로 정하고 여러 행사를 함께 진행하기로 하면서 한한령 해제 기대는 배가되고 있다. 국내 한류 관련 연구자와 실무자 등에게 이번 상황을 어떻게 보는지, 한한령 해제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지 물었다.

영화 ‘오! 문희’ 6년만에 개봉…이동욱은 표지 모델

한한령 해제에 대한 기대는 이달 들어 구체화됐다. 배우 나문희와 이희준 등이 출연한 영화 ‘오! 문희’가 지난 3일 중국에서 공식 상영된 게 계기였다. 중국 정부는 2015년 9월 배우 전지현, 이정재가 주연한 영화 ‘암살’ 이후 한국 영화 상영 허가를 내주지 않다가 이번에 6년 만에 정식으로 허가를 내줬다. 때마침 배우 이동욱도 남성 잡지 지큐(GQ) 중국판의 12월호 표지 모델로 등장했다. 2018년, 2020년 공유와 아이유 등이 중국판 글로벌 잡지의 표지 모델로 등장한 적이 있지만, 이동욱의 경우 ‘오 문희’ 상영과 겹치면서 주목받았다.

반대 신호도 있었다. 중국 최대 규모의 음악 시상식인 ‘텐센트 뮤직 어워드’에 출연할 것으로 예고됐던 아이돌 그룹 엑소의 멤버 카이와 세훈의 출연이 무산된 것이다. 이들은 이달 초부터 중국 주최 쪽에 의해 온라인을 통한 화상 출연이 예고됐지만, 결국 참석하지 못했다.

상반되는 신호에도 불구하고, 한한령 해제 가능성이 거론되는 것은 한·중 양국 정부가 내년을 ‘한·중 문화교류의 해’로 정하고 문화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자극적이지 않은 오락 영화 ‘오 문희’ 상영을 시작으로 내년 초부터 양국 정부가 본격적으로 협력을 확대하고 차츰 한한령을 풀어가지 않겠느냐는 기대다. 내년 2월 베이징에서 겨울 올림픽이 열리는 것도 좋은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됐다.

배우 이동욱이 12월 중국 남성 패션잡지 지큐(GQ)의 표지모델로 등장했다. 웨이보 갈무리
배우 이동욱이 12월 중국 남성 패션잡지 지큐(GQ)의 표지모델로 등장했다. 웨이보 갈무리

전문가들 “큰 변화 기대 힘들 듯” 낙관적 반응 드물어

전문가들은 대체로 아직 한한령이 본격적으로 해제될 것으로 기대하기에는 이르다는 입장이다. 문화콘텐츠진흥원의 베이징 사무소장을 지낸 권기영 인천대 교수(중어중국학)는 “애매한 상황인 것 같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한한령은 중국 정부가 명시적으로 내린 게 아니지만 이를 단번에 푸는 것도 체면상 쉽지 않을 것”이라며 “중국은 ‘문화 안보’를 지키겠다는 전반적인 기조를 유지하되, 베이징 겨울올림픽을 앞두고 약간의 태도 변화를 보이는 정도인 것 같다”고 말했다.

‘한류노믹스’라는 책을 공동 집필한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의 남상현 팀장도 비슷한 입장이다. 남 팀장은 “중국 정부가 한국 영화에 대해 6년 만에 상영 허가를 내준 것은 베이징 올림픽과 한·중 문화교류의 해 등을 의식한 일종의 ‘액션’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는 “(케이팝) 기획사 등 업계와 얘기해봐도, 중국이 이번에 한한령을 풀 것이라고 크게 기대하지 않는 분위기”라며 “우리 진흥원도 중국과 교류 사업을 진행해 보면,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느껴지지 않는 거 같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도 신중한 입장이다. 문화체육관광부 한류지원협력과의 이규원 사무관은 “콘텐츠진흥원 지사 등을 통해 동향을 파악하고 있다”며 “동계올림픽과 문화교류의 해 행사 등을 통해 우호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한한령 해제 등) 추후 상황은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한·중 정부 다른 온도 차…중국, 연예계 단속중

한한령에 대한 한·중 양국의 태도도 온도 차이가 난다. 한국 정부가 한한령 해제를 바란다는 신호를 종종 보내는 반면, 중국 정부는 언급 자체를 하지 않는다. 예컨대, 서훈 국가안보실장은 이달 초 양제츠 중국공산당 정치국 위원과의 회담 결과를 설명하면서, 엑소의 텐센트 뮤직 어워드 출연 예정 등을 언급하며 “우리의 지속적인 요청에 따른 것”이라며 “한·중 문화 콘텐츠 교류가 다시 확대될 수 있도록 더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정부는 이와 관련해 어떤 언급도 하지 않았다.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9월15일 ‘2021-2022 한중 문화교류의 해’ 개막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문체부 제공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9월15일 ‘2021-2022 한중 문화교류의 해’ 개막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문체부 제공

지난 9월15일 열린 한·중 문화교류의 해 개막식에서도 양국의 서로 다른 분위기가 감지된다. 당시 황희 문체부 장관은 축사에서 “같은 음악을 듣고 같은 영화를 보고, 함께 게임을 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중략) 양국 국민들의 이해와 공감은 한층 깊어질 거라 믿는다”며 “한중 문화 교류의 시작을 알리는 오늘, 한중의 문화동맹을 다시 힘차게 시작할 것을 제한한다”고 말했다. 반면, 중국 문화여행부 후허핑 부장(장관)은 영상 축사에서 “양국 간 문화교류 및 관광협력을 강화하고 인적교류를 확대하여 협력의 아름다운 미래를 열어나갈 것”이라며 “이로써 (중략) 한중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 발전에 새로운 협력을 불어넣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정부가 음악, 영화, 게임 등 구체적인 예를 들며 문화 동맹을 ‘다시 시작하자’고 제안한 반면, 중국 정부는 추상적이고 정치적인 언어로 협력 강화를 되내일 뿐이었다.

최근 중국 정부가 자국 연예계를 대하는 태도도 한한령 해제 예상을 긍정적으로 보기 어렵게 만든다. 관례를 깨고 내년 시진핑 국가주석의 3연임을 추진하는 중국공산당은 최근 사회·경제 전반의 기강을 세우려 노력하고 있다. 성장보다 분배를 우선하는 ‘공동부유론’을 내건 채, 알리바바와 텐센트 등 거대 정보통신 플랫폼 기업의 독주를 막고 초·중·고 사교육을 제한하는 조처 등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연예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중국 당국은 건전한 문화를 만든다는 기조로 인기 연예인에 대한 세무조사를 강화하고, 텔레비전 등의 출연자 관리도 엄격하게 진행하고 있다. 지난 8월엔 팬덤 문화를 바로 잡는다며, 미성년자가 연예계에 돈을 쓰는 것을 금지하고, 연예인 인기차트 발표 등을 금지했다. 그 일환으로 중국에서 인기가 많은 방탄소년단, 엑소 등 국내 아이돌 팬클럽들의 웨이보 계정이 대거 정지되기도 했다.

시진핑 주석은 지난 14일 중국문학예술계연합회 행사에 참석해 “문화예술은 통속적이어야 하지만 저속하거나 세속에 영합해서는 안 되고, 실생활에 밀착해야 하지만 나쁜 기풍을 만들거나 부추겨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최고 지도자의 이런 발언은 중국 문화계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 사실상의 검열기준이 될 수 있다.

권기영 인천대 교수는 “중국은 2004년 중국공산당 16기 4중전회에서 국가 4대 안보 전략을 수립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문화 안보”라며 “중국은 한한령 이전부터 이런 기조 아래 외국 문화 상품에 대해 강력한 규제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해 왔다”고 말했다.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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