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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홍콩⑧] 비판목소리 사라진 홍콩, 방역실패는 예정됐다

등록 2022-03-23 04:59수정 2022-03-23 09:21

18일 홍콩의 한 남자가 관을 옮기고 있다. 홍콩/EPA 연합뉴스
18일 홍콩의 한 남자가 관을 옮기고 있다. 홍콩/EPA 연합뉴스

홍콩 <핑궈일보> 퇴직 기자가 급변하는 홍콩 사회의 현주소와 이를 지켜보는 시민사회의 고민을 담은 기사를 <한겨레>에 연재한다. 여덟 번째로 중국에 의존하는 홍콩의 혼란스러운 코로나19 상황을 정리했다.

홍콩의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지 않으면서 확진 및 사망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이달 20일까지 확진자 수가 104만명에 달하고 누적 사망자는 5896명에 이른다. 홍콩 의료진과 시민들이 코로나19 방역에 총력을 기울이는 가운데 캐리 람 행정장관은 지난달 말 “바이러스 확산 속도가 홍콩 정부 스스로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훨씬 넘어섰다”며 중국의 지원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홍콩 정부의 전문가 자문역인 위안궈융 홍콩대 미생물학과 교수는 18일 “홍콩의 다섯 번째 코로나19 정점이 왔을 수 있지만 한동안 (증가세가) 계속될 것”이라며 “수주일 정도는 지나야 일일 확진자 수가 수천 건으로 천천히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홍콩 의료진들은 수많은 환자를 치료하느라 지쳐있고, 시민들은 식량과 방역물자를 사재기하는 등 전염될 것을 우려해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

홍콩의 의료체계는 한계 상황을 맞고 있다. 코로나19로 사망한 환자의 주검이 병실에 방치돼 있는 사진이 유포되기도 했다. 국제적으로 인정받던 홍콩의 의료 시스템이 무너져, 이곳의 확진자 사망률은 다른 나라보다 현저히 높다. 지난달 초 확진자가 급증하자 홍콩 당국자들은 “조기 발견, 조기 격리, 조기 치료”라고 되뇌었지만, 검사·격리·치료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며 현재의 혼란스러운 상황으로 발전했다.

지난해 정부의 탄압으로 민주파 언론이 사라지며,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그러자 홍콩 정부를 지지해 온 친중국 인사들이 최근 잇따라 홍콩 정부의 ‘방역 실력’을 공개 비판하고 있다. 홍콩의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위원인 장즈강은 ‘16가지 죄’를 열거하며, 홍콩 행정장관 케리 람이 사상자가 폭증하는 상황에서 매일 아침 기자회견을 연 것을 비판했다. 전직 정부 고위관료인 프레데릭 마도 각종 부실행정으로 정부에 대한 신뢰가 약해졌다고 비판했다.

11일 홍콩의 록마차우에 중국 건설사가 세운 코로나19 임시 병원이 들어서 있다. 다리 건너 중국 광둥성 선전이 보인다. 홍콩/AP 연합뉴스
11일 홍콩의 록마차우에 중국 건설사가 세운 코로나19 임시 병원이 들어서 있다. 다리 건너 중국 광둥성 선전이 보인다. 홍콩/AP 연합뉴스

그러나 홍콩 정부는 이런 비판 목소리를 무시한 채, ‘베이징’을 향해 자신들이 현 상황을 수습할 능력이 없다면서 의료진과 전문가를 파견해 달라고 요청했다. 현재 중국 국영 건설사는 홍콩 여러 곳에 임시 병원을 짓고 있다. 베이징은 이미 지난달 말 여러 명의 전문가를 파견해 홍콩 정부의 방역 업무를 도왔고, 방역 권위자인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 최고위급 간부인 량완녠 칭화대 교수도 보냈다. 량완녠 교수는 홍콩에 온 뒤 전문가단이 “홍콩 정부를 보조한다”고 했지만, 홍콩 정부가 이들의 말을 따를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중국 본토의 방역 정책은 ‘역동적인 제로 코로나’ 정책이다. 큰 도시에서 감염의 원인을 찾기 위해 전 주민을 대상으로 코로나19 검사를 강제적으로 하고 있다. 광둥성 선전에서는 지난 14일부터 일주일 동안 시 전체 인구 2천만명을 대상으로 세 번의 검사를 받도록 했고, 이 기간 주민들의 집 밖 출입을 금지했다.

홍콩 정부 역시 이달 말께 선전과 같은 활동을 계획했다. 베이징은 이미 1만명 가까운 인원을 보내 표본 채취와 화학 실험 등을 준비했다. 홍콩에서 검사 요원은 전문 자격이 있어야 하지만, 홍콩 정부는 지난달 말 긴급법을 통과시켜 ‘외부 용병’들에게 이런 자격 조건을 면제했다. 마음이 급한 케리 람 행정장관은 “전쟁터에서 절차를 이야기하고 있을 수 없다”며 “현행 법령에 구애받아서는 안 된다. 전쟁에 임하는 태도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결국 긴급법은 홍콩 정부의 방역 정책에서 중국 의료진을 위한 ‘특별 통행증’이 됐다.

홍콩 정부의 중국 의존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홍콩의 여러 간호사가 감염돼 일손이 부족해지자, 홍콩 정부는 이곳에서 대안을 찾는 대신, 대륙에서 천 명이 넘는 간호사를 직접 고용할 수 있도록 절차를 완화했다. 또 홍콩의 정육사들이 대거 코로나19에 감염돼, 돼지고기 공급이 줄자 중국에서 대체 인원을 불러왔다.

20일 홍콩에서 한 여성이 코로나19로 폐쇄된 놀이터의 의자에 앉아있다. 홍콩/AP 연합뉴스
20일 홍콩에서 한 여성이 코로나19로 폐쇄된 놀이터의 의자에 앉아있다. 홍콩/AP 연합뉴스

홍콩 정부가 법적으로 면제 조치를 했지만 법적 책임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는 않았다. 의료인의 경우, 치료 과정에서 잘못이 생길 경우 조사를 받고, 자격을 취소당할 수도 있다. 중국에서 온 의료인은 이 제도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인명 피해가 발생할 경우 누구에게, 어떤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 불확실하다.

홍콩 매체들은 이와 관련해 정부 부처에 질문을 던지지만, 의구심이 풀릴 만한 답변은 아직 없다. 한 기자가 케리 람 행정장관에게 이를 물었지만, 친중파와 일부 중국 누리꾼들로부터 ‘국가보안법 위반’이라고 공격당했다. 결국 해당 기자가 소속된 언론사는 공개 사과를 해야 했다. 케리 람 행정장관은 “왜 중국과 홍콩을 구분하는지 의문이 든다”며 “중국 의료진이 본업을 그만두고 가족들을 떠나 멀리 홍콩에 와서 봉사하는 것을 홍콩인들이 감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홍콩의 방역에 대해 중국이 과도하게 개입하면서 초래된 제도적 허점과 의문들은 정치적으로만 접근해서는 이해하고 해결하기 어렵다.

홍콩 핑궈일보 퇴직기자 천줴밍.
홍콩 핑궈일보 퇴직기자 천줴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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