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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여왕 추모 열기, 식민 정서 반영? 현 체제 불만?

등록 2022-10-03 17:38수정 2022-10-03 17:55

[오마이홍콩⑭]
12일(현지시각) 홍콩 주재 영국 총영사관 앞에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을 추모하려는 홍콩인들이 길게 줄서 있다. 홍콩/로이터 연합뉴스
12일(현지시각) 홍콩 주재 영국 총영사관 앞에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을 추모하려는 홍콩인들이 길게 줄서 있다. 홍콩/로이터 연합뉴스

홍콩 <핑궈일보> 퇴직 기자가 급변하는 홍콩 사회의 현주소와 이를 지켜보는 시민사회의 고민을 담은 기사를 <한겨레>에 연재한다. 열네번째로 뜨거웠던 엘리자베스 여왕 추모 열기와 그 속에 담긴 이유를 정리했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지난 9일 96살의 나이로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서거했다. 영국의 식민 지배 150년을 거친 홍콩에서는 지난 며칠간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주홍콩 영국 총영사관에 꽃을 들고 찾아와 불평하지 않고 몇 시간 동안 기다렸다. 홍콩 친중 언론과 중국의 평론가들은 홍콩인들이 식민 시대를 그리워한다고 비판했지만, 추모식에 참석한 이들은 홍콩의 좋았던 시절을 기억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일부에서는 2020년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시행 이후 ‘정치적 발언’을 할 기회가 드물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여왕의 국장은 지난 19일 거행됐다. 여왕의 관은 웨스트민스터 사원으로 옮겨진 뒤 런던의 거리를 돌아 윈저성으로 갔다가 성 조지 성당으로 옮겨졌다. 영국에서 국가 장례가 치러지는 동안 홍콩에서도 많은 시민들이 애도에 참여했다. 한 시민은 하모니카로 영국 국가인 ‘신이여, 여왕을 보호하소서’와 ‘홍콩에 영광이 다시 오길’ 등의 노래를 불러 많은 이들의 호응을 받았다. 홍콩 경찰은 모인 이들을 해산시켰고 “공공의 안전과 질서를 지킨다”며 하모니카를 연주한 남성을 체포했다.

무더운 날씨에도 질서 있게 여왕을 추모하는 모습은 친중 진영의 신경을 건드렸다. 이들은 홍콩인들이 여전히 식민 시대를 그리워하고 있다며 베이징이 이를 불편하게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홍콩에서 다시 ‘탈식민’ 운동을 펼쳐 이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친중 매체 <대공보>는 ‘반중국 세력’과 ‘반중 언론’이 식민 시대의 경험을 날조하고 홍콩보안법 시행 이후 새로운 국면을 공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식민 통치에 대한 향수는 외세의 강력한 권력을 바탕으로 한 고압적 지배에 대한 것으로,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다. 홍콩의 실제 상황은 다르다. 홍콩은 영국 식민 통치 아래에서 경제가 도약해, 동양의 작은 어촌에서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 됐고, 생활 환경과 사회 제도가 개선됐다. 이 때문에 영국의 식민 행정은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왔다.

홍콩 시민들의 추모 열기는 대안적인 정치 행동일 가능성도 크다. 최근 몇 년 동안 홍콩의 자유가 사라졌고, 홍콩보안법 도입으로 많은 이들이 해외로 떠나는 상황이다. 현재를 과거와 비교하는 것은 불가피한데, 식민지 홍콩의 마지막 총독이었던 크리스토퍼 패튼은 홍콩인들에게 친근했고 방문하는 지역에서 환영받았다. 하지만 현재 홍콩의 최고지도자 존 리 행정장관은 지역을 방문할 때 경찰이 출동해 항의와 반대의 목소리를 틀어막아야 한다.

홍콩여론연구소의 지지도 조사 결과를 보면, 패튼 총독은 임기 초 60 이상을 기록했고, 임기 마지막 해에도 58~60을 기록했다. 홍콩 전직 최고지도자들의 점수는 다르다. 초대 행정장관 둥젠화는 연임 이후 지지도가 50 아래로 내려갔고 최저 36.1까지 떨어졌다. 셋째 행정장관 렁춘잉은 임기 내내 50 미만이었고 캐리 람 전 행정장관도 취임 2년 뒤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반대 운동으로 지지도가 급락해 최저 19.3을 기록했다. 유일한 예외는 두 번째 행장장관 도널드 창으로 첫 3년 동안 패튼 총독보다 지지도가 높았지만 마지막 1년은 50 미만으로 떨어졌다.

홍콩인의 정체성에 대한 조사에서는 도널드 창 전 행정장관의 지지가 높았을 때인 2007~2008년 스스로 ‘중국인’이라고 여기는 홍콩인 비율이 38.6%로 가장 높았고, 2019년 송환법 반대 운동이 일어났을 때 10.8%까지 떨어졌다. 자신을 ‘중국인 겸 홍콩인’으로 보는 비율도 과거 51.9%에 달했지만, 송환법 반대 운동 기간 20.8%에 그쳤다. 식민 시절에 대한 향수가 홍콩에 있다면 정치인에 대한 지지도나 중국에 대한 정체성이 이렇게 크게 변하거나 시간이 지날수록 하락하지는 않을 것이다. 홍콩인들이 영국 여왕의 서거를 계기로 현 정치 상황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는 것일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이유다.

홍콩 핑궈일보 퇴직기자 천줴밍.
홍콩 핑궈일보 퇴직기자 천줴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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