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판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22조 위반 혐의(체제전복)로 기소된 47명 중 한명인 샘 청 구의원이 지난해 3월1일 호송차를 타고 웨스트카오룽 법원에 도착하고 있다. 홍콩/로이터 연합뉴스
홍콩 <핑궈일보> 퇴직 기자가 급변하는 홍콩 사회의 현주소와 이를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시민사회의 고뇌를 담은 기사를 <한겨레>에 연재한다. 열세 번째로 홍콩 보안법에 의해 체포되고 기소되는 홍콩 민주파의 안타까운 상황을 전한다.
2020년 6월30일 ‘홍콩 국가보안법’(홍콩 보안법)이 발효된 뒤, 홍콩 경찰은 8월 현재까지 이 법을 적용해 200여명을 체포했고 이 중 100여명을 기소했다. 주목받는 사건은 넥스트 미디어 창업자인 지미 라이가 연루된 <핑궈일보> 사건과 47명의 민주파 인사가 연루된 ‘예비경선’ 사건, 홍콩시민지원애국민주운동연합회(지련회) 사건 등 3건이다.
최근 이 세 사건에서 각각 진전이 있었다. 우선 지난해 9월 해산한 지련회 사건과 관련해 피고인들이 제기한 재판부의 보도 제한 결정을 해제해 달라는 요구가 받아들여졌다. 홍콩 법률상 고등법원에 재판이 회부될 경우 하급 법원은 사건 내용과 증거, 증인, 피고인의 유죄 인정 여부 등을 정리하는 예비 조사 절차를 진행한다. 일반인으로 구성된 배심원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해당 내용의 공개가 제한되는데 피고인이 제한을 해제할 것을 요구할 수 있다. 지련회 사건의 주임 재판관은 해제를 거절했다. 결국 지련회 사건의 피고인이자 스스로 변호사이기도 한 초우항텅 전 지련회 부주석이 ‘사법 심사’를 청구했다.
지난 17일 홍콩 웨스트 카오룽 법원 재판부는 고등법원의 보도 제한 해제 명령에 따라 사건 기록을 공개하도록 했다. 이날 재판이 끝나자 법정에 있던 이들은 큰 소리로 “민주주의가 승리하고 돌아올 것”이라고 외쳤다. 피고인 초우 전 부주석도 방청객들에게 손가락으로 승리의 브이(V) 사인을 그렸다.
지련회 사건은 또다른 홍콩 보안법 위반 사건인 ‘예비경선’ 사건에 직접적인 영향을 줬다. 같은 재판부에 회부된 예비경선 사건에서도 피고인이 보도제한 해제 신청을 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전례에 따라 이 사건에서도 보도제한 해제를 결정해야 했다.
그러나 지련회 사건과 달리 예비경선 사건은 이미 지난 7월 초 고등법원에 송치됐다. 보도를 보면, 홍콩 율정사 사장(법무부 장관) 폴 램은 이 사건이 외국과 관련이 있다는 이유로 고등법원 재판 때 배심원을 두지 말도록 결정했다. 홍콩에서는 형사 사건을 처리할 때 피고인의 유죄 여부를 배심원들이 상의해 결정하도록 하고 있지만 홍콩 보안법은 예외를 뒀다. 홍콩 보안법 제46조는 율정사 사장이 국가비밀을 보호해야 하거나, 사건이 외국과 관련이 있을 때, 혹은 배심원과 그 가족의 신변안전 등이 필요할 때 배심원 없이 재판을 하도록 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앞서 지난해 6월 첫 홍콩 보안법 사건인 홍콩 청년 퉁잉킷 재판도 배심원 없이 진행됐다. 퉁잉킷은 2020년 7월1일 홍콩 보안법 반대 시위 현장에서 ‘광복홍콩, 시대혁명’이라고 적힌 깃발이 달린 오토바이를 타고 돌진해 경찰관 3명에게 부상을 입힌 혐의로 재판을 받았고 9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올해 초 당국이 선임한 변호사를 신뢰할 수 없다며 항소를 포기했다.
예비경선 사건에서도 보도제한이 풀린 뒤 하급 법원의 예비 조사 내용이 드러났다. 지난 6~7월 예비 조사에서 사건 전체 피고인의 약 60%에 해당하는 29명이 유죄를 인정했다. 이 중 24명은 사건을 전부 인정했고, 5명은 일부 유죄를 인정했다. 당시 한 피고의 변호인은 법정에서 검찰 측이 주장한 사건 내용에 대해 “소금을 넣고 식초를 첨가한 것”이라며 일부 사건의 내용이 부풀려졌다고 비판했다. 나머지 18명은 유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날 피고인들이 각각의 방식으로 죄를 시인한 정황이 드러났다. 어떤 이는 표준어로 “나는 유죄를 인정한다,내가 틀렸다는 것을 안다”고 했고, 영어로 “나는 조국을 사랑한다. 유죄를 인정한다”고 답한 이도 있었다. 당시 검찰은 총 414문단, 139쪽의 범죄 사실 관계를 법원에서 며칠 동안 낭독하며 피고인들이 홍콩 의석 절반 이상을 차지하기 위해 예비 경선을 치르려 했다고 비판했다.
예비경선에서 5명의 ‘주최자’ 중 한 명으로 기소된 고든 응은 다른 사람을 통해 본인 소셜 미디어에 글을 올려, 죄를 부인해야 하는 요소가 너무 많다고 주장했다. 그는 재판의 승산과 형기, 사회적 관심, 개인의 심리 등을 들며 “나는 결코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물러서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 다른 사건인 <핑궈일보> 사건은 보도제한 해제를 신청한 피고인이 없어 구체적인 예비조사 내용을 알 수 없지만, 22일 고등법원에서 사건 관련 심리를 했다. 이 사건 역시 배심원 없이 재판이 진행된다. 홍콩 법무부는 3명의 법관으로 구성된 재판부가 공정한 재판을 보장하고, 사법정의를 실현하며, 피고인의 어떠한 합법적 권익도 훼손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홍콩 보안법이 시행된 지 이미 2년이 넘었다. 통계를 보면, 올 8월 현재 적어도 200여명이 국가안보를 해치는 활동을 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이 가운데 127명, 5개 회사가 기소됐다. 현재 적어도 84명이 감옥에 있고, 절반 가까이는 이미 1년이 넘었다. 700일 가까이 갇힌 이도 있다. 유죄 판결률은 100%에 이른다. 최근 처음으로 미성년 피고인이 유죄 판결을 받았는데, 중학생 5명을 포함해 ‘광성자’를 조직한 7명의 구성원이 여러 차례 거리에서 시위하고 무력으로 정권을 전복시키자고 선동한 ‘정권 전복 담합’ 혐의로 기소됐다. 이들 중 6명은 유죄를 인정했고, 이 중 4명은 15살, 16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