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에서 밭을 갈고 있는 당나귀. AP 연합뉴스
인도 농촌에서 운송 수단으로 활용되는 당나귀가 최근 7년 새 절반 이상 급감했다. 인도 언론과 시민단체는 당나귀 가죽을 활용해 만든 약재 ‘아교’가 중국에서 인기를 끌며 불법 도축이 급증한 탓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앞서 아프리카 국가들도 중국의 당나귀 ‘싹쓸이’에 골머리를 앓다 수출을 금지한 바 있다.
동물복지단체 ‘브룩’의 인도 지부인 ‘브룩 인디아’는 지난해 인도의 당나귀 불법 거래 현황을 두 달 동안 조사해 그 결과를 인도 정부 부처인 축산낙농부에 보고했다. <감춰진 가죽>(the hidden hide)라는 제목의 보고서엔 불법 도축된 당나귀 가죽이 중국으로 수출되거나 당나귀가 산채로 중국으로 보내지는 정황 등이 담겼다. 조사를 진행한 샤랏 K 베르마 선임기자는 “불법 당나귀 거래로 인해 인도에서 당나귀가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며 “멸종 시나리오는 2019년 이후 더욱 악화했다”고 인도 탐사 매체 <테헬카>에 말했다. 인도는 2011년 식품안전표준국(FSSAI)이 당나귀 고기를 ‘식용 동물’에서 제외해 당나귀를 도축하거나 먹는 것을 불법화했다.
그런데도 당나귀 수가 줄어드는 핵심 이유는 중국에서 당나귀 가죽을 활용한 약재가 인기를 끌고 있기 때문이라고 브룩 인디아는 밝혔다. 브룩 보고서에 따르면, 마하라슈트라주의 한 당나귀 상인은 “한 중국인이 매달 최소 200마리의 당나귀를 사기 위해 접근해 왔다”며 “고기는 필요 없고, 값을 높게 쳐줄 테니 가죽만 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인도 축산낙농부가 2019년 진행한 가축 조사를 보면, 당나귀 개체 수는 2012년 32만 마리에서 2019년 12만 마리로 60% 이상 줄었다. 특히 우타르 프라데시주 등 중국 국경과 가까운 북부 지역의 경우 당나귀 개체 수는 70% 이상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인도 축산낙농부는 당나귀 밀수와 관련한 브룩의 보고서를 제출받고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인도 축산낙농부 축산국장인 프라빈 말릭은 “밀수에 대한 정보가 정확한 것으로 판명되면 인도 당국은 국경 통제를 담당하는 보안군에게 넘길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온라인에서 판매되는 아교 제품. 바이두 갈무리
한국에 홍삼이 건강 보조식품으로 인기라면, 중국에서는 아교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당나귀 가죽을 끓여 만든 아교는 중국에서 최고의 전통 약재로 꼽힌다. 기침, 정력 증진, 여성 건강 등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0년대 들어 중국인들의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비교적 비싼 가격의 아교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중국 매체인 <산동재경보도>에 따르면, 2020년 중국 약국에서 팔린 중의약 제품 상위 20위개 제품 가운데 1위가 아교(동아아교)로, 한해 매출액이 25억3천만위안(4860억원)에 이른다. 이 제품은 수년째 상위권을 지키고 있다고 한다. 특히 상위 20위권 안에 아교 제품이 3개(1위, 5위, 15위)나 들었고, 3개의 매출을 합하면 46억2천만위안(8870억원)이다. 이는 온라인 판매를 제외한 것이어서 실제 판매량은 훨씬 클 것으로 보인다.
아교가 주력 제품인 의약기업 동아아교는 28일 기준 시가총액이 224억 위안(4조2900억원)에 이르는 등 중국 주요 의약 기업 중 하나로 꼽힌다. 이 회사의 동아아교라는 제품은 250g짜리로 1~2달 섭취가 가능한데, 온라인 쇼핑몰에서 1000위안(19만원) 정도에 팔리고 있다.
중국 전통 약재 아교의 효과를 소개하는 중국 중앙텔레비전(CCTV) 프로그램. CCTV 유튜브 갈무리
아프리카, 2010년대 중반부터 중국 수출 금지
아프리카는 인도에 앞서 중국의 당나귀 수요 증가로 혼란을 겪었다.
중국은 2010년대 들어 자국 내에서 당나귀 확보가 힘들자 상대적으로 물가가 싼 아프리카 등 외국으로 눈을 돌렸다. 케
냐·니제르 등이 당나귀 도살장을 허가하고 수출에 나섰다. 중국 당국도 관세를 낮추는 등 화답했다. 하지만 당나귀 수요가 급증하면서 도난이 늘고, 당나귀를 주요 운송수단으로 쓰던 아프리카 농민들의 불만이 커지는 등 문제가 발생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당나귀 가죽을 쉽게 얻기 위해 당나귀를 굶어 죽게 하는 등 동물 학대 사례도 나타났다. 영국 <비비시>(BBC) 등 유럽 언론들의 보도가 잇따랐고, 유럽의 동물복지 단체 등이 비판 성명을 냈다.
결국, 2016년 니제르가 중국으로의 당나귀 수출을 금지했다. 우간다·탄자니아·보츠와나·부르키나파소 등도 같은 조처를 했다. 영국 동물단체 ‘당나귀 보호소’는 중국의 아교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해마다 480만 마리 이상의 당나귀가 필요한 것으로 추정한다.
아프리카 케냐에서 짐을 나르는 당나귀. 로이터 연합뉴스
베이징/최현준 특파원
haojun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