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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홍콩⑨] 베이징은 친중파 내부 경쟁도 허용치 않는다

등록 2022-04-28 14:40수정 2022-04-28 14:51

홍콩 행정장관 선거에 단독 출마한 존 리 전 정무부총리. EPA 연합뉴스
홍콩 행정장관 선거에 단독 출마한 존 리 전 정무부총리. EPA 연합뉴스

홍콩 <핑궈일보> 퇴직 기자가 급변하는 홍콩 사회의 현주소와 이를 지켜보는 시민사회의 고민을 담은 기사를 매달 <한겨레>에 연재한다. 아홉 번째로 베이징의 선택을 받은 경찰 출신의 차기 지도자를 맞는 홍콩 시민들의 복잡한 심경을 담았다.

다음 달 8일 홍콩 차기지도자를 뽑는 행정장관 선거가 5년 만에 치러진다. 결과는 사실상 이미 나왔다. 지난달 초까지 홍콩 특별행정구 정부의 2인자였던 존 리(리쟈차오) 전 홍콩 정무사 사장(정무부총리)이 지난 18일 행정장관 후보자격심사위원회에서 ‘출마 유효’ 판정을 받으면서 홍콩의 차기 행정장관을 예약했다.

그는 경찰로 오래 일한 강경 ‘무관’ 출신이다. 수십 년 동안 공직에 있었지만, 경찰 외의 경력은 보안국장(장관)과 정무부총리를 잠시 맡은 게 전부다. 선거 공약도 내놓지 않은 채 ‘베이징’으로부터 ‘축복’을 받았다는 이유로, 친중국 세력인 건제파 등의 강력한 지지를 얻었다. 베이징이 이런 인물을 선택해 중책을 맡기는 것은 향후 중국이 홍콩의 안정을 최우선시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존 리 전 부총리는 이미 분명하게 국가안전과 관련된 ‘기본법’ 제23조를 최우선으로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존 리 전 부총리는 행정장관 선거 후보 등록 완료를 하루 앞둔 지난 13일 786명의 동의표를 확보해 후보로 등록했다.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가 지난해 3월 통과시킨 ‘개선된 홍콩 선거제도 결정’을 보면, 선거 출마자는 1500명으로 구성된 선거위원회 위원들의 투표로 선출되며, 후보 등록을 위해서는 188명의 사전 지지가 필요하다. 선거위원 1500명은 ‘재계·금융권’, ‘전문가’, ‘노동·종교계’, ‘입법회의원 및 지역조직 대표’, ‘홍콩 특구 전인대 대표 및 정협 위원 등’ 5개 분야의 300명씩으로 꾸려진다.

당선을 위해서는 과반을 얻어야 한다. 1997년 홍콩 반환 뒤 두 번째 행정장관 선거 때 둥젠화 전 행정장관이 단독 출마해 선거 없이 당선돼 연임했지만, 현재는 선거법이 개정돼 1명만 출마해도 투표를 해야 한다. 현재 존 리 전 부총리는 당선에 필요한 표보다 더 많은 지지표를 이미 확보했기 때문에 매우 높은 득표율로 당선될 것이 확실시된다.

일반 선거에서는 다득표자가 자연스럽게 더 큰 민의를 대변하게 되지만 홍콩의 선거는 다르다. 1500명의 선거위원회는 친중 성향의 건제파 인사들로 채워져 있고, 민주파 인사들은 전무하다. 과거 홍콩의 여러 선거를 보면, 민주파를 지지하는 홍콩 시민이 전체의 50~60%가 되는데, 선거위원회 구성에는 이런 상황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결국 행정장관 선거에서 아무리 많은 표를 얻어도 민의를 대표한다고 볼 수 없다.

25일 홍콩 거리의 한 잡화 가판대에 점원이 앉아있다. 홍콩/AP 연합뉴스
25일 홍콩 거리의 한 잡화 가판대에 점원이 앉아있다. 홍콩/AP 연합뉴스

존 리 전 부총리는 40년 넘게 홍콩 정부에서 일해왔지만, 홍콩 사람들이 좋아하거나 지지하는 정치인이 아니다. 그는 지난 5년 동안 보안장관과 정무부총리를 지냈는데, 2019년 범죄인 인도법(송환법) 반대 시위 과정에서 6개월 넘게 발생한 민관 충돌 사건의 책임이 크다. 경찰청 차장으로 일할 때도 논란이 있는 법 집행으로 민심을 잃었다. 공신력 있는 여론조사 기관인 홍콩 민의연구소의 조사 결과를 보면, 존 리 전 부총리는 2019년 선호도가 마이너스 63.4%로 현 정부 전체 장관 중 가장 낮았고, 그를 해임해야 한다는 비율은 70% 이상이었다. 선호도가 마이너스 23.9%로 다소 회복되긴 했지만 그는 오히려 홍콩 정부 2인자인 정무부총리에 임명됐다.

베이징이 여론과 상반된 선택을 하는 경우는 이전에도 있었다. 2017년 행정장관 선거 때 세 명의 후보 중 여론조사에서 반수 이상의 지지를 받은 존 창 전 재정국장(장관)이 낮은 득표율로 낙선했고, 베이징의 선택을 받은 캐리 람 현 행정장관이 777표를 얻어 당선됐다. 당선의 절대 조건인 베이징의 ‘축복’을 얻었기 때문인지, 존 리는 과거 출마자들과 달리 대중을 상대로 한 선거 캠페인을 하지 않고 있다. 과거 선거 때는 6개월 전부터 사실상 선거전이 시작됐지만, 존 리 전 부총리는 지난달 후보 등록이 시작된 뒤 갑자기 출마를 선언했고, 아직 어떤 공약도 내놓지 않고 있다. 그는 ‘결과를 중시하고, 경쟁력을 높이며, 홍콩 발전의 기반을 확고히 하겠다’는 3대 방향과 ‘함께 홍콩의 새 시대를 위하여’라는 슬로건을 내놓았을 뿐이다. 이는 구체성이 떨어지고, 의미도 불명확하다.

25일 홍콩 시민들이 코로나19 검사를 받기 위해 검사소로 들어가고 있다. 홍콩/신화 연합뉴스
25일 홍콩 시민들이 코로나19 검사를 받기 위해 검사소로 들어가고 있다. 홍콩/신화 연합뉴스

홍콩 주권이 중국에 반환된 지 올해 25년째다. 중국이 50년 동안 보장하기로 한 ‘한 국가, 두 제도’ 즉 일국양제의 약속이 절반 정도 지났다. 그러나 많은 홍콩 시민들은 50년의 약속이 이미 깨진 것으로 보고 있다. 홍콩 반환 뒤 경제인과 고위 관료, 엘리트 출신들이 행정장관에 올랐지만, 베이징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결국 베이징은 직접 통치권을 단단히 손에 쥐기로 했다. 최근 홍콩의 사회·정치적 상황이 완전히 후퇴해서 심지어 친중 세력인 건제파도 예상치 못한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이번 행정장관 1인 출마는 베이징이 건제파 내부의 경쟁조차 더이상 허락하지 않겠다는 것을 보여준다.

경찰 출신으로 안보 분야에서만 일해 온 존 리 전 부총리가 행정장관이 되는 것은 베이징이 여전히 홍콩에서 폭동과 혼란을 막는 데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중 갈등이 풀리지 않는 가운데 국가와 정권의 안전을 압도적으로 중시하는 것이다. 2019년 반송법 파동 이후, 베이징은 홍콩의 주권을 전면 통제하기로 결심했고, 경찰 출신 행정장관을 통해 베이징의 지시가 효율적이고 안정적으로 이행되기를 바라고 있다.

문제는 존 리 전 부총리가 치안이나 안전 등에 대한 경험만 있을 뿐, 공공행정과 경제 분야 등에 대한 경험이 전무하다는 것이다. 향후 홍콩의 경제 회복이나 금융·경제 문제 등 주요 문제에 대처할 능력이 있는지 의심된다. 홍콩의 빈부 격차와 노동, 복지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시민 사회와 보조를 맞춰야 하지만 존 리 전 부총리는 보안국장 등을 하면서 시민사회를 본인 손으로 직접 와해시켰다. 아이러니하게도 존 리 전 부총리는 선거 홍보에서 지역 사회의 역량을 키우겠다고 밝히고 있다.

최근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홍콩 시민들은 중국의 통치가 간접적인 방식에서 직접적인 방식으로 바뀌고 있는 것을 느끼고 있다. 베이징의 힘이 권력자를 통해 수직적으로 전달되고 있는 것이다. 비록 공식적으로는 언론 매체를 통해 ‘혼란에서 안정, 안정에서 부흥으로’라는 구호를 내세우지만, 권력이 민의와 더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은 시민들의 마음 깊숙한 곳에서 점점 커지고 있다.

천줴밍 홍콩 핑궈일보 퇴직 기자.
천줴밍 홍콩 핑궈일보 퇴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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