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4일 저녁 홍콩 빅토리아 공원에서 열린 톈안문(천안문) 6·4 항쟁 30주년 추모집회에 참석한 홍콩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 홍콩/AP 연합뉴스
홍콩 <핑궈일보> 퇴직 기자가 급변하는 홍콩 사회의 현주소와 이를 지켜보는 시민사회의 고민을 담은 기사를 매달 <한겨레>에 연재한다. 열 번째로 33주년을 맞는 톈안먼 6·4 항쟁 추모 집회가 올해는 신청조차 이뤄지지 못한 상황을 전한다.
홍콩 자유의 상징이었던 ‘톈안먼(천안문) 6·4 항쟁 추모’ 행사가 올해는 개최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1989년 이후 매년 홍콩에서 추모 행사를 열었던 홍콩시민지원애국민주운동연합회(지련회)가 지난해 공식 해산했고, 단체의 주요 간부들이 체포되거나 수감됐기 때문이다. 홍콩엔 6·4 항쟁 추모 집회를 개최할 수 있는 조직이 남아있지 않다. 1990년부터 32년 동안 이어져온 추모 행사가 올해 종지부를 찍는다는 것을 뜻한다.
올해는 6·4 항쟁 33주년이 되는 해다. 과거 32년 동안 지련회는 매년 홍콩 빅토리아 공원에서 6·4 항쟁 희생자를 추모하는 촛불 집회를 열었다. 집회가 열리는 빅토리아 공원은 중국 영토 내에서 유일하게 이 사건에 대한 추모 집회를 열 수 있는 공간이었다. 과거 홍콩 정부는 이런 점을 들어 홍콩 시민이 집회와 언론의 자유를 누린다고 말해 왔다. 이 집회가 홍콩의 자유와 고도의 자치권을 보여주는 중요 지표였던 것이다. 만약 이 집회가 엄격히 금지된다면 홍콩의 일국양제(한 국가 두 체제)와 고도의 자치권이 엄중한 타격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현재 홍콩에서 6·4 항쟁을 추모하는 것은 ‘금기’가 됐고, 심지어 법률 위반이 돼 버렸다. 지난 2년 간 전조가 있었다. 2020년 홍콩 정부는 코로나19 사태를 이유로 시민들의 집회를 제한하는 법률을 발표했다. 이는 간접적으로 6·4 항쟁 추모 집회에 영향을 미쳤다. 홍콩 경찰은 코로나19 사태를 이유로 지련회에 집회를 불허한다는 통지서를 보냈다. 결국 그해 집회는 1997년 홍콩 반환 이후 처음으로 불법적인 상황에서 진행됐다. 하지만 많은 시민들이 빅토리아 공원에 모였고, 홍콩 전역에서 추모 집회가 열렸다.
지난해에도 지련회는 홍콩 경찰에 집회 신고서를 냈다. 2020년 7월 홍콩 보안법이 발효된 뒤 처음이었다. 경찰은 다시 코로나19 사태를 이유로 집회를 불허했다. 홍콩 정부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홍콩 전역에 7천여명의 경찰을 배치했고, 검은 옷을 입은 추모객들이 모이는 것을 막았다. 지난해 6월4일 오전 홍콩 경찰은 집회를 열겠다고 한 초우항텅 지련회 부주석을 체포했다.
2020년 집회에 참여했던 민주진영 인사들은 자신들이 불법 집회에 참여하고, 다른 이들을 선동해 불법 집회에 참여하게 한 혐의로 고발됐다. 많은 이들이 6개월에서 1년 이상의 형을 받았다. 초우항텅 부주석은 2년 연속 행사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구금 기간이 가장 길었다.
지난해 9월9일 홍콩에서 경찰이 6·4 톈안먼 6·4 항쟁 희생자 추모 기념관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민주의 여신상’ 일부를 가져가고 있다. 이 기념관은 지난해 6월 문을 닫은 상태였다. 홍콩/로이터 연합뉴스
지련회는 줄곧 베이징의 눈엣가시였다. 이 조직의 5대 강령, 즉 △민주 인사 석방 △천안문 6·4 항쟁 재평가 △학살 책임 추궁 △일당 독재 종식 △민주중국 건설 등은 중국 공산당 정권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으로 간주됐다. 홍콩 보안법이 발효된 뒤 홍콩 정부는 지련회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고, 외국 세력과 결탁한 혐의가 있다며 자료 등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많은 구성원들이 홍콩 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됐다 이 가운데 주석인 리척옌, 전 부주석 앨버트 호, 초우항텅은 지난해 9월 불법으로 대중을 선동하고 중국의 근본 제도와 정권을 전복하려 한 혐의로 고발됐다. 이 혐의가 유죄로 확정되면 5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진다. 지린회는 결국 지난해 9월25일 총회를 열어 해산 결정을 내렸다.
지련회의 6·4 항쟁 집회는 일찍부터 홍콩인들의 머릿 속에 자리잡았지만 매년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은 것은 아니다. 1989년 6·4 항쟁이 발생하자, 홍콩에선 1백만여 명의 시민들이 거리에 나와 지지를 표시했다. 다음해 추모 행사에 참여한 인원은 15만명이었고, 그 뒤로 점점 줄었다.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뒤로는 수만 명이 참여하는데 그쳤다. 그러나 20주년이 됐을 때부터 점점 반전이 생겼다. 이후 참가자 수는 매년 15만명에서 18만명에 이른다. 현재 이 행사에 참석하는 이들은 6·4 항쟁을 추모하는데 그치지 않고 홍콩 정부와 ‘베이징’을 향해 점점 줄어드는 홍콩의 자유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1989년 6월 중국 톈안먼 민주화운동의 상징이 된 탱크맨. AP 연합뉴스
현재 홍콩에서 6·4 항쟁을 추모하는 것은 여전히 합법인가? 자유는 여전히 보장되고 있는가? 초우항텅 전 지련회 부주석의 재판에서 천훼이민 홍콩법원 판사는 초우 부주석이 인터넷 상에서 추모를 호소했다면 법률상 언론의 자유가 전면적으로 보장됐을 것이라고만 말했다. 6·4 항쟁 추모가 홍콩 보안법에 저촉되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않은 것이다.
홍콩 정부 역시 한 번도 6·4 항쟁 추모 행사가 홍콩 보안법에 위배되는지에 대해 공식 견해를 밝힌 바 없다. 하지만 수십 년 동안 평화적인 방법으로 6·4 항쟁을 추모해온 지련회가 고발되고 해산하면서 시민들은 말할 수 없는 공포에 떨고 있다. 이미 많은 민주파 조직들이 올해 6·4 항쟁 추모 활동을 신청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고, 결국 홍콩의 6·4 항쟁 추모의 촛불은 켜지지 않게 됐다.
시진핑(오른쪽) 중국 국가주석이 30일 베이징에서 존 리(왼쪽) 홍콩 행정장관 당선자를 만나고 있다. 베이징/신화 연합뉴스
지난해 홍콩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는 6·4 항쟁을 추모해 7일 동안 추모 미사를 열었으나, 올해는 추모 미사를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홍콩 천주교 쪽 설명을 보면, 일부 위원들이 추모 미사가 홍콩 보안법에 저촉되지 않을지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천주교 홍콩교구는 신앙에 따라 희생자를 기리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고 미사는 그 중 하나라며, 각자 혹은 작은 단체를 꾸려 기도를 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천주교 홍콩교구 현 주교인 저우쇼우런 신부는 지난해 5월 교황의 임명을 받으면서 6·4 항쟁 추모에 대한 언론들의 질문에 ‘합법성 여부를 포함해 상황을 볼 것이며, 불법 행위를 권장하지 않고 내 자신도 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올해 6·4 추모 미사가 열리지 않는 것과 관련해 지난해 미사에 참여했던 류후이징 전 홍콩 입법회 의원 겸 홍콩민주당 주석은 여러 해 동안 행사를 진행했지만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다며 실망감을 토로했다. 류 전 의원은 존 리 홍콩 행정장관 당선자가 ‘언론의 자유는 이미 우리 주머니 속에 있다’며 홍콩의 언론 자유를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 데 대해 “누군가 (자유가) 당신 주머니 속에 있다고 하는데, 내 주머니는 구멍이 뚫린 것 같다. 물건이 다 도망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