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장례식 국장이 거행될 19일 하루 전날, 영국 시민들이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 앞에서 텐트를 치고 줄을 서 대기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우리는 인생 중 단 하루 낮과 밤을 들여 여기에 서 있을 뿐이지만,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우리에게 70년을 주었습니다.”
기다란 장대에 두개의 유니언잭 깃발을 꽂고 긴 조문 행렬의 한가운데 선 52살 영국 시민 프레드 스위니는 장례식 하루 전인 18일(현지시각) <에이피>(AP) 통신에 이렇게 말했다. 여왕의 관을 보기 위해 하트퍼드셔에서 런던까지 왔다는 영국 시민 트레이시 돕슨도 통신에 “우리 여왕께 마지막 경의를 표하러 와야 할 것 같았다. 여왕은 우리를 위해 많은 것을 해주셨다”고 말하며 긴 조문 행렬의 가장 마지막 줄에 기꺼이 섰다.
여왕의 주검을 실은 관이 19일 오전 11시 장례식이 열리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으로 들어서자 18세기 이후 영국의 국장에서 불리어온 찬송가 ‘나는 곧 부활이요 생명이니’가 예배당에 울려 퍼졌다. 장엄한 찬송 소리는 스피커를 타고 여왕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기 위해 버킹엄궁 앞 연도에 늘어선 시민들에게도 전해져 왔다.
여왕의 주검이 런던 웨스트민스터 홀에 안치된 14일 이후 템스강 인근은 외투로 몸을 꽁꽁 싸맨 채 긴 조문 행렬에 몸을 맡긴 영국 시민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18일엔 비까지 내리자, 일부 시민들은 길가에 작은 텐트와 간이 의자를 설치하고 이튿날 장례식을 위해 노숙할 준비를 했다. 영국 전역에서 모여든 구름 같은 인파는 거리에 삼삼오오 진을 치고 앉아 영국 국기 유니언잭을 담요 삼아 추위를 달랬다. 근처 상점들은 여왕의 생전 모습을 담은 사진을 내걸거나 추모 펼침막을 내걸었다.
유명 영국 축구 선수 데이비드 베컴도 이날 시민들과 함께 13시간 대기 줄을 선 끝에 여왕의 관에 참배했다. 여왕의 장례식 전날 런던 템스강을 따라 웨스트민스터 홀까지 이어지는 대규모 조문 행렬은 다시 보기 힘든 역사의 한 장면으로 평가됐다. ‘큐’(The Queue, 대기 행렬)라는 단어는 이번 장례 기간을 거치며 여왕 조문 행렬을 뜻하는 고유명사로 굳어졌다.
영국 정부는 지난 70년간 영국 군주로 재임했던 여왕의 국장이 거행된 19일 장례식을 보기 위해 런던 중심가로 모여든 인파가 약 100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스튜어트 컨디 런던경찰청 부청장은 <에이피>에 “런던 경찰 역사상 최대 규모의 치안 작전이었다. 2012년 런던올림픽을 능가한다”고 말했다. 영국 정부는 장례식 당일인 19일을 공휴일로 선포했다. 대다수 학교와 기업 등도 문을 닫았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장례식 국장이 거행될 19일 하루 전날, 영국 시민들이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 앞에서 줄을 서 기다리며 장례식 전야를 보내고 있다. EPA 연합뉴스
여왕의 마지막 길을 조문하기 위해 먼 거리도 마다하지 않고 모여든 국민들은 마치 자신이 역사에 참여하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자신의 고향 노퍽에서 런던까지 왔다는 시민 앨리스터 캠벨 비닝스(64)는 18일 <로이터> 통신에 “우리는 위기의 시기에 항상 여왕을 필요로 했다. 여왕의 장례식만큼은 와야 한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이전에 결혼식이나 장례식 등 왕실 행사에 가본 적 없지만 여왕의 장례식만큼은 지나칠 수 없어 수도 런던까지 왔다고 했다.
영국 공영방송 <비비시>(BBC)는 이번 장례 기간에 수십억명이 런던을 지켜봤다며, 여왕의 장례식은 21세기 어떤 행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국제적 이벤트라고 보도했다. 한 영국 시민은 방송에 “이것은 모든 이들이 보고 싶어 하는 세기의 장례식”이라고 말했다.
새 국왕이 된 찰스 3세도 18일 성명을 내어 “여왕에게 경의를 표한 이들에게 감동했다. 지난 10일 동안 제 아내와 저는 이 나라와 전세계에서 보내준 애도와 성원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슬픔의 시기에 우리 가족과 나 자신에게 많은 지지와 위로가 되어준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김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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