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이란 여성들이 테헤란 시장에서 물건을 구매하고 있다. APF 연합뉴스
이란 내 히잡 반대 시위가 2주째로 접어드는 가운데, 시대 변화에 역행하는 에브라임 라이시 대통령의 히잡법과 모욕적 단속을 벌인 이란 종교경찰이 이번 사태의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여성 인권을 억압하는 제도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8일 미국 일간지 <월스트리트 저널>은 “2주째 이어지는 이란 시위는 종교경찰에 대한 분노에 근원하고 있다”며 “경찰에 구금되던 중 사망한 마흐샤 아미니의 죽음은 비슷한 모욕적인 경험을 가진 많은 이란인들의 신경을 건드렸다”고 말했다. 이란 종교경찰에 체포된 여성들을 대변해온 이란 인권변호사 사이드 데한은 이 신문에 “히잡 착용에 대한 이란 이슬람법이 모호하다. 경찰이 대중을 학대할 수 있도록 광범위한 재량권을 준다”고 말했다. 또 라이시 대통령의 히잡법이 ‘이슬람 율법에 의한 베일’ 같은 법 적용이 모호한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신문 인터뷰에 응한 여성들은 이란 종교경찰이 여성 수감자들을 수색해 옷을 벗기고 남성 수감자들과 같은 건물의 감방에 가두고 있다고 말했다. 데한 변호사는 “여성들이 구치소 안에서 끊임없이 몸부림치며 정서적 고통을 받는다. 때때로 자살로 이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란은 모든 여성에게 히잡 착용을 의무화할 뿐 아니라 진한 화장이나 자전거와 오토바이를 타는 것조차 금지하고 있다. 많은 이슬람 국가들에서 히잡 착용은 관행일 뿐 의무가 아니지만, 이란은 다르다. 그래도 이전엔 단속이 심하지 않았지만 지난해 8월 강경 보수 성향의 성직자 출신인 라이시 대통령이 집권하며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라이시 대통령은 세속 교육을 받지 않은 이슬람 신학자 출신이다. 대부분의 경력을 이슬람 사법부 안에서 쌓았다.
인남식 국립연구원 아중동 연구부장이 28일 내놓은 보고서 ‘이란 히잡 거부 시위 확산의 배경과 정치적 함의’을 보면, 라이시 대통령은 7월 초 ‘히잡과 순결 칙령’을 반포하며 대대적 캠페인에 나섰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에 나온 ‘가리지 않으면 처벌받는다’는 구호가 다시 선명해졌다. 히잡을 착용하지 않은 여성을 10일에서 2개월 동안 감옥에 수감하고 벌금을 물리고 채찍으로 때릴 수 있게 한 법이 엄격하게 집행되기 시작한 것이다. 2005년부터 8년 재임한 마흐무드 아마디네자드 전 대통령이 히잡법 집행을 강화해 종교경찰의 단속에 힘을 실어줬던 것을 재현한 조처다.
이후 8월께부터 이란을 감시하는 미국 관료들과 인권 단체들은 이란 여성들이 새 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체포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분노한 일부 여성들은 강력한 법 집행에 반발해 시위 발발 전부터 국외로 떠났다.
온건한 하산 로하니(2013~2021) 대통령 재임 시기엔 여성들이 테헤란에서 꽉 끼는 청바지를 입고 히잡을 쓰지 않은 채 오토바이를 타는 게 흔한 광경이었다. 불과 1년여 사이에 이란 사회가 크게 달라졌다. 분노한 여성들은 이제 거리에 나와 우릴 모욕하지 말라고 외치고 있다.
김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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