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와 탄소를 결합한 합성연료인 이-퓨얼을 원료로 하는 선박이 연료 보충을 위해 독일 로스토크 항구로 들어오고 있다. 유럽연합이 2035년 내연기관 자동차 퇴출 이후에도 이-퓨얼을 쓰는 내연기관 차 판매를 허용하는 안을 마련했다. 로스토크/dpa 연합뉴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2035년 내연기관 자동차 퇴출 방침에 반발하고 있는 독일 정부를 의식해 ‘전기 기반 합성연료’(이-퓨얼)를 쓰는 내연기관 자동차를 허용하는 타협안을 마련했다. 이-퓨얼은 제조 과정에서 탄소를 소모하기 때문에 저탄소 또는 탄소 중립 연료로 평가받는다.
<로이터> 통신은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가 금지되는 2035년 이후에도 이-퓨얼을 사용하는 자동차 판매를 허용하는 방안을 마련했다고 21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이 방안은 23~24일 열리는 유럽연합 정상회의에서 논의될 예정이다. 집행위원회의 초안은 2035년 이후에도 이-퓨얼을 사용하는 내연기관 자동차를 허용하되, 휘발유·경유 같은 기존 화석연료를 넣을 경우 작동이 중단되는 기술을 장착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이-퓨얼은 전기를 이용해 물을 수소와 산소로 분해한 뒤 수소를 이산화탄소와 결합해 만들어내는 합성연료다. 이렇게 만들어진 연료는 정제 과정을 통해 가솔린, 경유, 난방유 등의 형태로 가공할 수 있기 때문에 기존 화석연료를 대체할 수 있다. 이 연료를 사용하면 화석연료와 마찬가지로 탄소가 배출되지만, 제조 과정에서 탄소를 소모했기 때문에 순탄소 배출량은 거의 늘지 않는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이-퓨얼 내연기관 자동차 사용을 제안한 것은 2035년까지 내연기관 자동차 퇴출에 동의했던 독일이 이 방침의 최종 법제화 직전인 이달 초 갑자기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독일은 폴크스바겐, 메르세데스벤츠, 베엠베(BMW) 등 세계 최고 수준의 내연기관 기술을 보유한 자동차 업체들이 있는 나라다. 내연기관이 퇴출될 경우, 독일 자동차 업계의 경쟁력 약화는 불가피하다. 독일이 문제를 제기한 이후 이탈리아, 체코, 폴란드 등 일부 국가들도 이에 동조하고 나섰다.
유럽연합 회원국들과 유럽의회는 몇달에 걸친 협의 끝에 지난해 10월27일 유럽연합 회원국 내 자동차 제조업체들에게 2035년부터 탄소 배출량을 100% 줄이게 함으로써 내연기관 자동차를 퇴출시키는 방안에 합의했었다.
독일 정부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새로운 제안 수용 여부를 확실히 밝히지 않았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독일 교통부 대변인은 “우리는 신속하게 사안을 정리하는 데 관심이 있지만, 탄력 있고 법적 구속력이 있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며 “현재 이 문제를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퓨얼은 아직 생산 초기 단계여서 조만간 화석연료를 대체할 만큼 충분히 생산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독일 국책 연구기관인 ‘포츠담 기후영향연구소’는 이날 내놓은 보고서에서 현재 전세계의 이-퓨얼 계획이 모두 진행되어도 앞으로 몇년 안에 항공·운송·화학 산업의 수요를 10%밖에 충족시키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연구소는 앞서 지난 2021년 내놓은 보고서에서 수소와 탄소로 만드는 합성연료 생산 효율이 너무 떨어지기 때문에, 이를 원료로 하는 내연기관을 계속 사용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었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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