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사망한 가자지구 주민의 친척들이 21일(현지시간) 남부 라파의 한 병원에서 슬픔에 잠겨 있다. 라파 AP=연합뉴스
가자 전쟁이 시작된 지 74일 만에 이스라엘방위군(IDF)의 무차별 공격으로 숨진 팔레스타인 사람이 2만명을 넘었다. 사망자 가운데 여성·어린이·노인의 비율이 70%를 넘어 이스라엘을 향한 국제사회의 비난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다행이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협상이 시작된 것으로 보이지만, 휴전 방식에 대한 이견 차가 너무 커 빠르게 합의가 이뤄지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팔레스타인중앙통계청(PCBS)은 20일(현지시각) 지난 10월7일 가자지구에서 전쟁이 시작된 뒤 숨진 이들이 2만명을 넘었다고 밝혔다. 가자지구 전체 인구 230만명 가운데 1%가 이번 전쟁으로 인해 숨진 셈이다.
더구나 사망자의 74%는 어린이(8000명)·여성(6200명)·노인(682명) 등 약자들이었다. 또 실종자가 여성·어린이 4700명 등 6700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가 이스라엘군의 무차별 공격으로 인해 무너진 건물 잔해에 깔려 있을 것으로 보여 실제 사망자 수는 이날 집계보다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부상자는 사망자보다 2.6배 많은 5만2586명이었다.
21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남부 라파에서 여성들이 이스라엘의 폭격 이후 친척이 깔린 것으로 추정되는 잔해 근처에서 울고 있다. 라파 AFP=연합뉴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도 이날 공개한 ‘가자지구와 이스라엘 내의 적대행위 74일째 보고서’에서 “가자지구 전역에서 이스라엘군이 육·해·공 삼면으로 포격과 격렬한 지상전이 벌어지고 있으며 하마스의 로켓 발사도 계속되고 있다”며 “하루 전 가자시티 5층 건물이 피격돼 100명 이상이 사망하고 50명이 잔해에 깔려 실종됐다”고 밝혔다. 실제 가자지구 보건부가 이날 집계한 지역 내 일일 사망자 수에 따르면, 19일 하루에만 300명 넘는 주민이 숨졌다.
이스라엘은 2007년 하마스가 가자지구를 점령한 뒤 지속적인 무력 분쟁을 벌여왔지만, 단기간에 이렇게 많은 이들이 희생되진 않았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 통계를 보면, 2008년부터 이번 전쟁 직전까지 양쪽의 분쟁 과정에서 15년간 숨진 이는 6589명이었다. 두달 반 정도 이어진 전쟁으로 숨진 이들의 수가 15년 동안 숨진 이들의 3배에 이른 셈이다.
지난 19일(현지시각)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남부 라파흐에서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무너진 주택 인근에서 구호대원과 주민들이 사상자를 수색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지난해 2월부터 1년10개월째 전면전을 벌이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과 비교해도 가자지구 내 인명 피해는 심각한 수준이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는 지난 9월 현재까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민간인 사망자는 9701명, 부상자는 1만7748명 발생했다고 집계했다.
국제사회는 가자지구의 비극을 멈추지 못하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10월16일 러시아가 낸 결의안을 시작으로 여섯차례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즉시 휴전 혹은 일시적 전투 중지를 뼈대로 한 결의안을 제출했다.
하지만 미국이 이스라엘의 자위권을 인정해야 한다며 거부권을 남발해 이사회를 통과한 것은 지난달 15일 몰타가 낸 일시적 전투 중지를 요구한 안건 하나뿐이었다. 이 결의안이 나온 뒤 이스라엘은 11월24일부터 12월1일까지 이어진 7일간의 일시적 전투 중지에 합의한 바 있다. 반대로 미국이 낸 결의안에는 중국과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했다.
국제사회는 현재 진행 중인 ‘2차 휴전’ 협상에 기대를 걸고 있지만, 전망은 밝지 않다. 하마스의 지도자인 이스마일 하니야는 20일 하마스 고위급 대표단을 이끌고 이집트에 도착해 압바스 카멜 이집트 국가정보국(GIS) 국장 등과 휴전 협상에 나섰다. 카타르에 근거지를 두고 활동하는 하니야가 직접 이집트로 이동해 협상에 나설 만큼 전황이 악화된 상황이다.
이스라엘 역시 민간인 희생을 멈춰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압력이 높은데다, 130여명에 이르는 인질(20여명은 사망 추정)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국내 비판에 직면해 있다. 이츠하크 헤르초그 이스라엘 대통령은 19일 이스라엘 주재 80여개국 대사들을 초청해 “인질 석방을 위해 두번째 인도주의적 (교전) 중단과 (가자지구에) 추가적인 구호 지원을 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양쪽 사이 이견이 너무 커 이른 시일 내에 합의가 나올지 분명하지 않다. 이스라엘은 지난 1차와 같은 ‘일시적인 전투 중지’엔 응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하마스는 ‘영구 휴전’을 희망하고 있다. 게다가 최종 결정권을 가진 강경파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하마스의 모든 테러리스트는 항복과 죽음, 두가지 선택지밖에 없다”며 “하마스 제거, 인질 석방, 가자지구의 위협 종식 등 목표 달성 때까지 전투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20일 휴전 전망을 묻는 기자들에게 “(협상을) 추진하고 있지만, 현재 지점에서 타결될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지 매체 ‘타임스 오브 이스라엘’은 21일 이스라엘이 40명 정도를 석방하면 일주일간 휴전이 가능하다는 제안을 내놨지만 하마스가 이를 거절했다고 전했다.
홍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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