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이공대 안에서 점거농성을 벌이던 학생들이 19일 저녁(현지시각) 경찰의 눈을 피해 탈출을 시도하고 있다. 이 학생들은 모두 경찰에 붙잡혀 연행됐다. 홍콩/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20일 이른 아침, 홍콩 최대 관광지인 카오룽반도 침사추이와 지근거리에 있는 홍콩이공대 주변에선 중장비가 바삐 움직였다. 시위대와 경찰의 격렬한 공방전이 남긴 잔해를 제거하기 위해서다. 지난 17일부터 경찰에 봉쇄된 채 나흘째 이어지고 있는 이공대 점거시위가 막바지에 이르렀음을 상징한다.
이공대로 통하는 길은 하루 새 접근이 더욱 어려워졌다. 밤사이 시위대 10여명이 탈출을 시도하다 경찰에 체포됐고, 이제 안에 남은 시위대는 줄잡아 60~100명에 그친다. 막판까지 남아 있던 응급의료진도 전날 밤 전원 교정을 빠져나왔다. 경찰은 진압작전 대신에 봉쇄만 유지한 채 고립된 시위대가 스스로 꺾이길 기다리고 있다. 이공대 시위대는 고립무원이다.
한 경찰 소식통은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에 “18일 밤 체포된 모든 시위대에 대해 석방을 허용하지 않고, 모두 폭동 혐의로 기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18일 밤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대탈출’ 과정에서 체포된 시위대는 213명에 이른다. 폭동죄로 유죄 판결을 받으면 최고 10년 징역형에 처할 수 있는데, 시위대의 기세를 완전히 꺾어놓겠다는 뜻이다.
이날 낮 12시께 홍콩을 대표하는 금융산업의 심장부, 센트럴 중심가 오거리에선 경찰 미니버스들이 경광등을 반짝이며 대기하고 있다. 지난 6월 반송중(중국 송환 반대) 시위 개시 이후 센트럴 금융가는 사무직 노동자들이 주중 점심시간을 이용해 시위를 벌이는 ‘성지’가 됐다. 경찰의 ‘원천봉쇄’ 의도가 보였다.
낮 12시40분을 넘겨서도 집회는 시작되지 않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무거운 침묵을 뚫고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함성이 터져나왔다. 인도에서 숨죽이고 있던 이들이 한꺼번에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자유를 위한 투쟁, 홍콩과 함께 싸운다.” 푸른빛 마스크를 한 채 구호를 외치던 코니 펑(39)은 “홍콩이 무너지고 있다. 일국양제(한 국가 두 체제)를 망가뜨린 건 정부”라고 말했다. 그는 “경찰은 법을 어겨도 누구 하나 책임을 묻지 않지만, 시민이 이에 저항하면 폭도가 된다.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다. 너무 어렵고, 서글픈 상황”이라며 울먹였다.
삽시간에 불어난 시위대는 오거리 한귀퉁이마다 200~300명씩 몰려 있다. 어림잡아 모두 2천명은 돼 보인다. “살인경찰, 해산하라.” 고층건물로 둘러싸인 일대에서 구호 소리가 메아리로 울려 퍼졌다. 대기하고 있던 경찰이 득달같이 달려나왔다. 진압장비를 갖춘 경찰이 곤봉으로 방패를 두들기며 도로로 나선 시민들을 인도로 밀어댄다. 금융회사에 일하면서 점심 집회에 빠짐없이 참석한다는 라이(가명·28)는 “이공대에 갇혀 있는 학생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우리가 여기 있다고, 아직 여기서 버티고 있다고. 그러니 힘을 내라고”라며 고립된 이공대 시위대한테 힘을 보탰다.
캐리 람 행정장관은 오는 24일로 예정된 구의회 선거에 대해 “정상적으로 치르고 싶다. 시위대에 달렸다”고 말했다. 시위가 계속되면 지방선거를 연기할 수 있음을 내비친 것이다. 이미 지방선거 연기론은 물론 “정부가 기표 용구의 잉크를 일부러 번지게 만들어 무효표를 대량 양산할 것”이란 흉흉한 소문까지 떠돌고 있다.
그동안 홍콩 구의회 선거의 투표율은 30~40%에 그쳤다. 알렉스(40)는 “이번엔 전혀 다를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구의회의 주요 관심사는 사회복지 문제다. 하지만 이번 선거는 철저히 정치적인 선거가 될 것이다. 투표를 통해 우리의 의지를 보여줄 차례”라고 강조했다.
홍콩/정인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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